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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중령의 로비
 김종필 중령의 로비
 
 1960년8월19일 장면 신임 총리가 국회에서 인준되고 내각 구성을 위 한 준비에 착수하자 정군파 장교들의 대표격인 김종필 중령은 군복을 입은 채로 중앙청에 있던 국무총리실을 찾아갔다. 국방장관 인선에 대 한 건의를 할 참이었다. 경향신문 정치부장 출신인 송원영 비서관이 나 오더니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군 관계 일로 건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지금 조각 때문에 바쁜데 여기를 군복 입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소.'.
 
 '군인이니까 군복 입고 오지요. 조각은 군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입니 다. 조각을 결심하시기 전에 총리 각하에게 건의를 드리려고 합니다.'.
 
 송 비서관은 김종필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어, 당신이 그 하극상 사 건의 주동자요?'라고 했다.
 
 '충정으로 왔습니다. 꼭 뵙게 해주십시오.'.
 
 송원영은 총리실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도저히 말씀드릴 상황이 아닌데, 이러면 어떻겠소. 내일 아침에 사복으로 갈아 입고 명륜동 자 택으로 오시요'라고 했다.
 
 총리실에선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민주당 구파 보스인 유진산 의원이 씩 씩 거리면서 나왔다. 그가 옆방으로 들어가니 기다리 던 기자들이 몰려들어갔다. 김종필도 슬그머니 다가갔다. 유진산이 기 자들에게 말했다.
 
 '도저히 안되겠어. 내가 뭐 무리한 요구를 하느냐 말이야. 저 사람 인식이 그렇게 되어 있질 않아.'.
 
 보아 하니 조각의 신, 구파 배분 문제로 총리와 격론을 벌이다가 합 의를 보지 못한 듯했다.
 
 김종필은 다음날 새벽 일찍 명륜동 총리 사택으로 갔다. 현관에 들 어서니 벗어놓은 구두가 수십 켤레나 되었다. 안은 찾아온 사람들로 바 글바글했다. 조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금 기다 리니 장면 총리가 나왔다. 김종필이 다가가는데 주위에서 밀어붙여 접 근이 되질 않았다.
 
 장면은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송원영 비서관이 장면 총리뒤를 따라 나왔다. 송 비서관이 김종필을 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짓 더니 '내가 나중에 말씀을 전하고 당신께 알려드릴테니 전화번호를 주 시오'라고 했다.
 
 김종필은 다시 한번 '꼭 이런 말씀을 드려달라'고 다짐했다.
 
 '군을 정화한 뒤 떠날 수 있는 사람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해주십 시오. 그 일을 밀어줄 수 있는 분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해주십시오. 그 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들은 군법회의에 넘겨져 처벌을 받아도 달게 받 겠습니다.'.
 
 김종필이 육본 정보국 기획과장실로 돌아가 있는데 송 비서관으로부 터 전화가 걸려 왔다.
 
 '총리께 그대로 말씀드렸는데 총리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소.'.
 
 민주당 신파와 구파는 조각협상에 실패하여 첫 내각은 신파 의원들 로만 구성되었다. 구파는 별도의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하 여 분당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8월23일 장면 총리는 내각 명단을 발표 했다. 국방장관은 현석호 의원이었다. 행정관료 출신으로서 군대를 잘 모르는 그가 국방장관이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동생 현석주였다. 현준 장은 육사2기 출신으로서 박정희와 동기이고 김재규와 가까웠다. 형이 야당 의원이라고 진급에서 누락되어 4·19 이후에야 준장으로 진급했다. 장면 총리는 동생이 장성으로 있으니 그를 통해서 군대 사정을 잘 알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현석호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고 한다(현석호의 회 고록).
 
 정부는 8월29일 새 육군참모총장으로 최경록 참모차장을 승진시켰 다. 최영희 총장은 연합참모본부 총장으로 옮겼다. 9월3일 정부는 육군 참모차장으로 김형일 군단장을 임명했다. 최경록 중장은 민주당 인사들 과 교분이 두터웠다.
 
 군의 수뇌부가 새로 짜여지고 있을 때 김종필 중령을 주축으로 한 정군파 장교들은 여러 사건들을 일으킨다. 이낙선의 '5·16혁명사증언 록'을 기준으로 하여 날짜별로 살펴보면 이러하다.
 
 <·9월9일: 김종필 등 장교 11명은 한강에서 놀잇배를 타고 '국방장 관에게 3성 장군을 전부 예편시키고 2성 장군을 참모총장과 차장에게 임명할 것을 건의하기로' 합의.
 
 ·9월10일: 이들은 국방장관실을 찾아갔으나 장관은 만나지 못하고 정래혁 총무국장에게 자신들의 뜻을 전달. 정군파 장교들은 충무장이란 일본식 음식점에서 만나 구태의연한 민주당 정부에 더 기대할 것이 없 으니 정군에서 혁명으로 투쟁방법을 바꿀 것을 논의했다. 석정선, 석창 희 중령은 쿠데타를 반대했고 최준명(최준명) 대령은 5사단 참모장으로 나간 뒤여서 행동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남은 아홉명이 혁명추진을 위한 기본임무를 정했다.
 
 김종필: 계획전반, 김형욱: 정보, 정문순: 정보, 오치성: 인사, 김 동환: 경제, 길재호: 사법, 옥창호: 작전, 우형룡: 작전, 신윤창:작전.
 
 ·9월 하순: 연참총장으로 옮긴 최영희 중장이 초청한 미 국방부 군 원국장 파머 대장이 이한성명에서 '군내에 일고 있는 정군움직임은 전 투 경험을 가진 장성들을 잃게 되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최경록 총장은 '이 성명은 주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요지의 반박성명을 냈다.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들도 발칵했다. 일부 장교들이 최영희 연참총장을 찾아가 항의하려다 헌병대에 연행, 훈방되었다. 최 영희는 이들 장교들을 불러 자신의 입장을 해명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16명의 장교들을 하극상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겼다.>.
 
 최영희 당시 연참총장(국방장관, 유정회 의장 역임)은 그해 10월6일 사퇴했는데 최근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실 그때 군에선 육사8기생들에 대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6·25를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으로 치르면서 엄청난 인명손실 (약40%가 전사)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진급도 늦어 중령 계급장을 8, 9년째 달고 있어 상관들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김종필 중령은 그때 나이가 만36세, 2군 사령관 장도영 중장은 37세 였다. 나이는 한살 차이지만 계급은 중령과 중장이었다. 8기생들은 엘 리트 의식이 있어 상관들을 별로 존경하지 않았다. '전투는 우리가 다 했는데 훈장은 저들이 독차지했다' '별을 달고 있으면서도 독도법도 모 르는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불만들을 표현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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