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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관념
 강박관념
 
 김안일 육본 작전참모차장은 미군이 최경록 총장을 통해 박정희 작 전참모부장을 예편시키라는 압력을 넣고 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어 느날 퇴근 무렵 박정희 소장이 총장실로 불려들어가더니 오랫동안 나오 지 않았다. 김 준장도 퇴근을 미루고 직속상관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두워진 뒤 박정희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총장과 의견충돌이 있었 던듯 얼굴이 벌개져 있었다. 한참 있더니 박정희는 김안일에게 말했다.
 
 '내 문제는 김형이 좀 설명해줄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 말은 박정희가 소령 시절 좌익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육본 정보국 특무과장으로서 박정희의 생명을 구해주는 데 기여했던 김 안일이 8군사령관에게 가서 '박정희는 지금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해명을 해달라는 뜻이었다. 김안일은 그런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영 어를 잘 할 줄 모르고, 그렇다고 통역을 데려갈 처지가 아니었다. 김안 일은 '박정희 장군은 그때 쫓기는 입장이었다. 군에서 추방당하기 전에 거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사단장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민주당 소장파의 지도자 이 철승 의원에게도 구명을 부탁했다. 박정희와는 육사2기로서 동기인 한 웅진 준장은 이철승과도 친구였다. 한 준장이 찾아와서 대신 부탁을 하 더니 나중엔 박정희가 직접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러 왔다.
 
 '6·25 때 실컷 고생했는데 이런 식으로 쫓아내도 되는 겁니까.'.
 
 국회 국방위원장이던 이철승 의원은 한때는 국방장관이 되고 싶어 했다. 군대를 잘 아는 그가 장관이 되었더라면 5·16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철승은 장면 총리에게 박정희를 위한 변 호를 해주었다고 한다.
 
 '지금 내보내면 반발이 커집니다. 내보낼 때는 훈장이라도 주어 내 보내야 합니다.'.
 
 당시 이철승 의원의 당내 영향력은 장면 총리도 위협을 느낄 정도 였다. 이철승은 '장면 총리가 내 말을 듣고 박정희 장군의 옷을 벗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5·16 뒤엔 그들의 탄압을 받아 최장기 간 정치규제에 묶여 있게 되었지만'이라고 했다.
 
 이 무렵 육사교장 이한림 중장이 장면 총리의 부름을 받고 반도호 텔의 총리실로 갔다.
 
 '이 장군, 항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군인들이 혁명을 한다는 이 야기가있는 것 같은데 그 내막을 알고 있소? 안다면 나에게 알려주시오.'.
 
 이한림도 박정희 소장과 족청계 출신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설을 듣 고 있었다. 이한림은 '바싹 긴장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를 속히 회전시켰다.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조용히 입을 열었다.'(회고록 '세기의 격랑') '저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육사에 있고보 니 정보가 어두워 확실한 보고를 드리지 못하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 각합니다. 총리께서는 총장 이하 고위 장성들, 그리고 정보기관을 통해 서잘 단속해야 하실 것입니다.'.
 
 이한림은 문약한 장면이 선비처럼 정치를 하고 있는데 크나큰 파도 가 몰려오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떤 위기의식 같은 그런 불길한 감이 방안을 가득 메우는 것 같 았다. 정말 답답한 순간이었다.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육사 교장인 나 에게 사정하듯 물어보니 난들 어떻게 하랴 싶었다. 그의 주변 인물들 중에는 문민통제를 앞세워 군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매우 심했다. 나는 정치인의 그런 풍조를 매우 염려했다. '정치는 힘인데 정치인이 군 장 성을 무시한다면 군의 힘이 정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 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이 사람들이 정치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기의 격랑') 육군 방첩대도 끊임없이 쿠데타 모의설의 중심으로 떠 오르고 있는 박정희를 근접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낙선 소령이 쓴'정의 의 수난'이란 기록을 인용한다.
 
 <하루는 난데없는 군고구마 장수가 박정희 장군의 신당동 집 앞에 자리잡았다. 조그마한 골목길에다가, 더욱 고참장수가 버티고 있는 곳 에 격에 맞지 않는 풋내기 장수가 대담하게도 들어 앉았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을수 없었다. 돈 백환을 든 박 소장은 아기(박지만)를 데리 고 고구마를 흥정하는 척하면서 고구마 통을 굽어보았다. 불 없는 통 위에는 익은 고구마가 몇 개 뒹군 채 서글프게 놓여 있었다.
 
 '이것 수 상하구나'라고 박 소장은 판단했다. 마침 그때 박 장군 댁을 방문했던 나는 사진기를 들고 나가 풍경을 찍는 척하고 돌려보다간 틈을 타서 초 점을 장수에게 맞추었으나 슬쩍 고개를 숙이거나 전주 뒤에 허리를 굽 히거나 해서 통 찍을 순간을 주지 않았다. 나는 박 장군의 어린 딸(박 근영을 가리키는듯)을 데리고 나가 고구마 장수 옆에 세워두고 그자의 사진을 찍었다. 박 장군은육사2기 동기생인 헌병감 심흥선에게 연락하 여 고구마 장수를 연행하도록 했다. 취조를 시작하자마자 506방첩대장 의 지시를 받아 잠복근무중임이 밝혀졌다. 서울지구를 관할하는 506방 첩대 이행주 중령이 빼앗다시피 가짜 군고구마 장수를 인수해갔다.>.
 
 1960년 가을에 김종필 중령을 중심으로 한 육사8기 장교들과 박정 희의 마음에서는 쿠데타의 꿈이 다시 태동하고 있었다. 양쪽은 곧 김종 필의 매개로 연결된다. 김종필 그룹은 16인 항명사건으로 군법회의의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박정희는 미군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입장에서 군사혁명이란 하나의 탈출구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시국은 이들의 그러한 생각을 충동질할 만한 상황을 보이고 있 었다.
 
 9월26일 경북도내 교원노동조합 산하의 교사 8천5백여명은 처우 개 선을 요구하면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교원노조 소속 교사 수천 명이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와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무렵 김 선태 무임소 장관으로부터 따귀를 맞았다고 해서 경찰관들이 데모를 하 기도 했다. 9월30일엔 철도태업이 발생했다. 기관사들이 기차를 고의로 서행시켰다. 이날 서울시청으로 천여명의 시민들이 난입하여 서울시경 경비과장을 때리고 밟아댔다. 시가 불하하려는 대지에 무허가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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