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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혁명모의'
 공공연한 '혁명모의'
 1군사령부 작전처장 이병형 준장은 1961년 4월 초 미국으로 미사일 관 련 교육을 받으러 가기 위해 이한림 사령관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이 준장은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글쎄, 박정희가 군사혁명을 한대.'.
 
 '이런 중대한 시기에 작전참모가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하나'하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이병형 준장의 직속부하로 있던 작전처의 육사8기 출 신네 과장 조창대, 엄병길, 이종근, 심이섭 중령은 몽땅 김종필측에 포섭 이 되어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이병형 준장도 '박정희 장군이 쿠데 타를 꾸미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박정희에 의한 혁명모의'는 장 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문제는 그런 '반란모의'에 대해 들 은 많은 장교들이 신고도 하지 않고 속으로는 '성공해야 할 텐데'라고 생 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2군단장은 민기식 중장. 그는 민주당 구파 서민호의원이 6·25전 쟁중 현역 장교를 사살한 사건의 군사재판장을 맡았던 이였다. 이승만 대 통령으로 부터는 '사형선고를 내려라'는 압력이 왔지만 정의감이 강한 민 장군은 무기징역을 선고하곤 피신해버렸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민기식 군단장에게 인사차 찾아온 서민호 부의장을 환영하는 술자리가 있었다. 2 군단 소속 사단장들과 대령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 있었던 12사단 부사 단장 정승화(육군참모총장 역임) 대령의 기억에 따르면 한 대령이 서민호 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더라고 한다.
 
 '지금 후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태를 보니 머지 않아 우리나라는 공 산화가 될 것 같군요.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인들이 제일 먼저 맞아죽을 테 니 살기 위해서라도 쿠데타를 해야겠습니다.'.
 
 서민호는 이런 요지의 대답을 했다고 한다.
 
 '쿠데타는 원래 최후 수단으로 하는 겁니다. 나라를 구하는 길이 그 것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을 때 하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자유당과 민주당 신파가 다스리면서 망쳐놓았는데 나 같은 구파는 아직 건재하고 있어요. 우리 구파가 정권을 잡고 일하는 것을 보아야지요.구파 까지도 안되겠다 싶으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요.'.
 
 12·12사건 때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장군은 '5·16은 국민과 군인 들의 지지를 업고 당당하게 혁명이라고 선언한 쿠데타였고 12·12는 합법 을 위장한 반란이었다'고 비교했다. 박정희 장군은 모의 단계부터 거사를 혁명이라 성격규정했다. 5·16이 성공한 다음 이한림 장군 등 혁명에 반 대했던 장군들, 즉 불법인 혁명을 합법적으로 진압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반혁명'이란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다.
 
 혁명의 본질이 기존 헌법질서를 무효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기에 이런 '세상 뒤엎기'가 가능 했던 것이다. 반면에 민심과 군심을 업지 못한 12·12사건의 주역들은'우 리는 혁명을 했다'고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우리의 행동은 불법이 아 니었다'는 변명조의 수세적 입장을 취하다가 법률의 해석권을 가진 정치 권력이 바뀌자 감옥으로 가게 되었다.
 
 1961년 봄으로 접어들면 장교들이 부대 내 식당에서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면서 대놓고 '야, 박정희 장군이 쿠데타를 한대'하는 말들을 할 정도였 다. 모의자 가운데서는 이런 분위기에 고무되어 '우리가 박정희 장군을 모시고 혁명을 준비하고 있으니 참여하라'는 식으로 광고를 하고 다니는 이들도 생겼다. 어쨌든 민심과 맞물려 있는 군심은 반정부 쪽으로 크게 선회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박정희의 모의는 여러 번 누설되었 으나 적극적으로 신고하려는 사람이 적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무 렵 김종필과 함께 혁명모의에 핵심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이석제 중령(당 시육본 군수참모부 근무)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민심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 무교동의 술집에 자주 들렸다. 기자 들과 중견 회사원들이 단골인 술집이었다. 내가 군복을 입고 나타나면 술 에 젖은 기자들은 농담을 하곤 했다. '이러다 나라가 망하겠소'로 시작되 는 농담 속에 은근히 군부 거사를 부추기는 언중유골의 메시지가 들어있 었다.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공공연한 포섭공작이 진행되는데 육군 방첩대가 모를 리가 없었다.
 
 박정희 2군 부사령관과 지근거리에 있었던 사람은 2군 사령부 방첩부 대장 이희영 대령이었다. 박정희가 대구로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방첩대 장 박창록 준장으로부터 그에게 '박정희를 엄중 감시하여 1주일에 한번씩 동태를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 대령은 '또 사상문제로 그러는 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다. 이희영은 또 박정희와 인연이 오래였다.
 
 1954년 박정희가 2군단 포병사령관일 때 이희영은 군단 파견 특무대장이었다. 훗날 장도영 일파 반혁명 사건의 주모자로 몰렸던 이회영 대령은 군단 병기참모였다. 두 이씨는 육사5기생으로서 박정희가 육사 중대장일 때 생도였으니 일종의 사제간이었다. 박정희는 이 두 후배 들을 데리고 개고기를 안주로 막걸리 잔을 자주 기울였다. 이희영은 계급 을 떠나 서스럼없이 지냈던 그 박정희를 부사령관으로 다시 모시고 있었 다.
 
 1961년 1월 어느 날 박정희가 이희영을 관사로 부르더니 편지봉투를 내놓으면서 꺼내 보라고 했다.
 
 육영수가 써 보낸 편지와 함께 군고구마 장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박 정희는 '이 자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감시를 붙여놓고 있는 모양인데 이 대령이 방첩대에 이야기를 해서 이런 일 안 하도록 해주시오'라고 간청하 듯 말했다. 이희영은 서울로 올라와서 방첩대장 박창록 준장에게 건의했 다고 한다.
 
 '정 위험한 인물로 보이거든 옷을 벗기시죠. 그러지 않고 장성을 내놓 고 감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박창록 준장은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가.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 지'라고 했다고 한다. 육본 수뇌부를 지목하는 말이었다. 대구로 돌아온 이희영 대령이 박정희를 찾아가 박창록 준장과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하면 서 보고를 올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박정희의 반응은 약간 의 외 였다고 한다.
 
 '흥! 저희들이 내 옷을 벗겨? 아마 저희들이 나보다도 먼저 옷을 벗게 될걸.'.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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