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우려
1961년 봄 미국 정부도 장면 정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를 갖기 시작 한다. 서울에 와 있던 미국 원조기관 유솜(USOM)의 부원장 휴 D 팔리는 한국의 부패와 유솜의 정책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사표를 제출한 뒤 워 싱턴으로 돌아갔다.유솜의 상급기관인 국제개발처(ICA=International Coop eration Agency)는 팔리의 사표 수리를 보류하고 '당신의 의견을 보고서 로 만들어 국무부 관리들과 토의해보자'고 했다.
팔리는 '1961년 2월 현 재 한국의 상황'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3월6일 케 네디 대통령의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대리인 로스토 박사에게 전달되었다. 보고서는 '장면 정부의 독직, 부패, 무능이 한국을 위기로 몰고 가고 있 는데도 미국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면서 '오는 4월19일 혁명기념일 에 대중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팔리 부원장은 또 '대통령의 특사를 한국에 급파하고 친서를 전달하는 등 긴급대책이 필요 하다'고 건의했다. 팔리의 이 보고서는 워싱턴 관가에 경보를 울렸다. 3 월15일 대통령 직속인 국가안보회의 요원 로버트 W 코머는 로스토 박사 앞으로 이런 요지의 메모를 보낸다.
<한국 문제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a.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빈곤한 나라.
b. 견뎌내기 힘들 정도의 군 사비지출.
c. 민주정부의 경험 부족에 기인한 부패의 확산.
d. 민족주의 적 열정의 부상과 좌절감.
한국 문제의 본질은 경제난이다. 다음 10년간 미국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로써 한국군의 상당한 감축도 검토해볼 만하다. 감군으로 남은 미국 예산을 한국 경제발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로스토 박사는 케네디 대통령 앞으로 짤막한 보고서를 올려 한 국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이 보고서의 결론 부문에서 로스토는 이런 건의를 했다.
<한국에 대한 우리의 많은 원조는 한국이 세번째로 추락하는 것을 막 는 데 쓰여져야 할 뿐 아니라 한국을 전진시키도록 하는 데 쓰여져야 한 다. 이승만 정권이 퇴진한 다음 한국 사회에는 이런 전진에 우리와 함께 동참할 만한 세력이 생겨났다. 이 세력은 그러나 우리의 반대세력으로 변할 수도 있다. 각하께서는 이 문제로 러스크 국무장관과 한번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됨.>.
한국의 위기상황에 대한 워싱턴 관가의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것을 반영하여 정보기관들도 움직였다. 미국 CIA(중앙정보부)의 주관하에 국 무부, 국방부, 육해공군, 그리고 합참의 각 정보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상황에 대한 종합정보판단서가 3월21일에 작성되었다. 특별국가정보 판단서(Special 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라고 불리는 이런 보고 서는 장기적인 정책수립에 참고가 되는 중요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다 가 오는 4·19혁명 기념일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력시위에 대한 우려를 깔고 장면 정부의 대처 능력을 검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장면 정부가 정치적으로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몰려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의 내분 과 그에 따른 분당, 민주당 내의 분열, 무책임한 언론의 가혹한 정부비 판, 공산당의 선동, 학생-노동자-제대군인들의 개혁부진에 대한 불만 등 으로 해서 집단시위와 대중집회가 한국사회의 일상적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또 '경찰과 공안기관은 계속되는 숙청과 조직개편 때문에 능력과 사기면에서 크게 약화되어 폭력시위가 일어났을 때 효과 적으로 대처할지 의심스럽다.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시위군중에게 발포하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부정부패는 한국사회의 모든 계층 에 보편화되어 있으며 민주화되었다고 해서 옛날에 비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현재의 공무원 봉급으로는 아무리 부패 추방운동을 벌여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정치적 위기의 뿌리에는 경제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연례적인 식량부족에다가 1월에만 물가가 10%나 오르고 실업률은 약 20%에 이르렀다. 올해 대학과 전문학교를 졸업한 4만5천명의 취업문제가 사회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인화물질은 많다. 계획되거나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이 인화물질을 폭발시키면 파괴적인 폭력시위가 일어나 중대한 위기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보고서는 그러나 확률상으로는 그런 폭력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한해 전의 4·19혁명 때에 비교하면 낮다고 했다. 지난 해처럼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킬 만한 주제가 없고 정부가 공개적으로 그런 사태에 대처하겠다 고 선언했으므로 이번 4·19기념일은 무사히 지나갈 것 같다고 예상했다.
4월1일 러스크 국무장관은 국무부의 극동담당 차관보로 내정된 매카 나기 주한 미국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한국사태에 대한 보다 원초적인 문 제를 제기한다. 러스크는 이런 요지의 분석을 했다.
<20세기 후반 아시아 나라들의 젊은 층과 지식인들은 지금까지는 그 냥 아시아적인 병폐로 넘어갔던 독직, 부패, 권력자의 친인척 발호를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에 실망한 이들은 공산주의의 독재성과 인명 경시 풍조까지도 애써 무시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엄격성과 집념을 높 게 평가하고 그들의 유혹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한국정부는 언론의 비판에 너무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 정부는 젊은 층에게 희망을 줄 만한 생활수준 향상부문에서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근시 안적인 세력이 집권하고 이들이 다시 쫓겨나고 하는 혼란이 일어난다면 통일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져 한국을 공산주의자들의 함정에 빠뜨릴 가능성도 있다.>.
4월11일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는 러스크 장관에게 보낸 한국정세에 대한 보고문에서 장면 총리의 지도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면 총리의 박력없는 지도력은 그의 인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바꾸기가 힘들다. 장면 총리와 측근들은 준비상사태 하에선 상투적인 정 치로써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장면 총리와 장관들은 기근으로 고생하고 있는 지역을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차례 장면 총리에게 충고했다.
자신의 패거리나 서울의 정치판으로부터 벗어나 국민들의 문제를 동감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도자로 바뀌어야 한다고. 장면 총리는 젊은 층을 많이 등용해야 하는데 동양적인 서열의식 때문에 이것이 어렵다.한 국의 30대층은 그 위의 세대와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다. 이들 젊은 층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등장하면 독직과 부패를 척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