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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CIA는 알고 있었다
 미CIA는 알고 있었다
 
 비공개자료 '혁명실기'는 4월19일의 데모유치계획이 실패한 데 대하여 아주 감상적인 묘사도 하고 있다.
 
 <광화문 거리에는 낮의 긴장을 풀어주는 듯 봄비가 죽죽 내리고 있 었다. 그때 이 비를 맞으면서 김종필 중령은 혼자서 밤거리를 걷고 있 었다. 박종규 소령도 울분을 발산할 수 없어 광화문을 거닐고 있었다. 두사람은 딱마주쳤다. 두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줄 것은 술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느술집으로 들어갔다. 광상적인 관현악이 귓전을 어지럽게 하는바였다. 술은 비통에 젖은 눈물을 삼켜주었다.
 
 '내일엔 또 새로운 길이 시작될테지.' 술에 흠뻑 젖은 채 김종필은 박 소령과 헤어지고 화신쪽으로 걸어갔다. 희다방에 들어갔다. 장태화가 거기에 있었다. '장 형,정말 울고싶은 심정이오.' '울지 맙시다. 모든 것을 끝마치고 난 다 음에 실컷울어봅시다.' 김종필은 동지들의 연락처 은성으로 가려고했다. 동지들은 술로써 눈물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지금 술 기분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소. 오늘은 이대로 서로 헤어져야 합니다.' 장 태화가 만류했다. 두 사람은 한없이 보도를 거닐었다. 빗방울도 보도를 적시고있었다.>.
 
 한편 박정희는 이날 대구 2군 사령부에 L-19경비행기를 대기시켜 놓 고서 서울로부터 '일이 터졌으니 상경하십시오'란 연락만 오기를 기다 리고 있었다. 점심 때는 이원엽 육군항공학교장과 식사를 함께 했다.그 는 박정희의 부름을 받고 광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대구에 온 것이다. 이자리에서 박정희는 혁명계획을 설명하고 거사한 사실이 방송에 보도 되면항공기로 전단을 뿌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는 '오 늘은 무사히 넘어갈 것이다. 장면 정권이 학생들을 상대로 매수, 무마 공작을 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박정희는 부사령관실에서 혼자 기다 렸다. 오후 3시 이주일 참모장이 박승규 통신참모, 박기석 공병참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박정희가 말했다.
 
 '오늘은 이대로 넘어가는 모양이군. 다음 기회를 만들어 봅시다.'.
 
 4월20일 서울에서 김종필, 이석제, 길재호가 대구로 내려왔다. 박정 희는 이들에게 '폭동진압계획에 편승하려는 소극적 계획을 수정하여 적 극적인 계획으로 돌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박정희 소장은 또 병력동 원계획도 재정비하고 출동부대 지휘관들로 하여금 지형정찰을 해두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거사일은 5월12일로 잠정 결정했다. 김종필은 다음날 형 김종락의 약수동 집에서 행정반, 작전반 연석회의를 소집했 다.4월23일엔 6관구 사령부 작전참모이자 쿠데타 작전반장인 박원빈 중 령 집에서 작전반원들이 모였다. 여기서 거사출동부대를 서울로 진입시 키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6관구 사령부가 먼저 예하부대와 배속부대에 대해서 비상훈련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통보해두기로 했다. 그렇게 해놓 고 12일에 비상을 걸면 야간 비상훈련을 가장한 출동이 가능해질 것이 다. 1단계 비상훈련은 5월4일부터 10일까지 부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실 시한다. 2단계 훈련계획은 5월11일부터 30일 사이에 날을 잡아 실시하 는데 6관구 사령부에서 불시에 비상을 걸면 각 부대는 '출동차량에 기 름을 넣고 출동병력을 차량에 승차시킨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는 것이 다.
 
 이 비상훈련계획으로 위장된 쿠데타군 출동계획은 박원빈 중령이 작 성,서종철 6관구 사령관의 결재를 받아 30사단, 33사단, 공수단에 내려 보내졌다.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모의는 이 무렵 미군 정보기관과 CIA(미국 중 앙정보부)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고 있었다. 당시 매그루더 주한미군사 령관 보좌관은 짐 하우스맨 대령이었다. 국군의 창설 때부터 간여해온 하우스맨은 한국군 수뇌부와 장면 총리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었다. 장 면 총리는 그에게 '군사관계의 자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우스맨은 매그루더에게 이 요청을 전달했는데 매그루더는 그 부탁을 거절하라고 지시했다. 하우스맨은 박정희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알고 지내는 사 이였다. 그는 8군사령관 옆방을 쓰고 있었다. 길만 건너면 육군본부. 박정희 소장이 육본 작전참모부장일 때는 가끔 부장실에 들러 말을 붙여 보려고 했다.
 
 하우스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1961년 3월1일 한국군 내에쿠데타 모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매그루더 대장에게 보고했다고 썼 다. 매그루더 대장은 적어도 한 차례 이상장도영 총장에게 이 정보를 전해주면서 '주의하라'고 충고했다는것이다. 장 총장은 '한국군에 관한 한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라'고 약간 반발적인 태도를 취했다 고 한다.
 
 기자가 문서로써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쿠데타 관련 정보보고는 4월 21일자이다. 이날 미국 CIA 계획국 극동과에서 서울지부로부터 받은 보 고서를 기초로 하여 작성한 정보보고의 요약문은 이러했다.
 
 <4월21일: (비밀이 해제되지 않아 한 문장 삭제) 진행되고 있는 두 갈래의 쿠데타 모의 중 하나는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 의해서 지 도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범석 전 국방장관과 민족청년단(약칭족청) 단원들에 의해서 모의되고 있다. 사단장들을 비롯한 한국 육군 전체에 걸쳐서 쿠데타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 육군 수뇌부 인사들은 현 정치인 들을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으로 경멸하고 있으며 그들이 군대를 집단적 으로나 개인적으로 상처받도록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거나 허용했다고 믿고있다.
 
 4월21일: (비밀이 해제되지 않아 한 문장 삭제) 군사 쿠데타의 가능 성에 대한 요약. 명백한 위협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치의 안정, 폭력과 무질서의 진정, 경찰력의 증강은 쿠데타 기도를 저지시킬 수도 있을 것 이다.>.
 
 4월23일 CIA극동과는 두 가지 보고서를 작성하여 알렌 덜레스 부장 에게 보고했다.
 
 <4월23일: (비밀이 해제되지 않아 한 문장 삭제) 진지하게, 또 활발 하게 쿠데타 모의를 진행하고 있는 무시못할 집단이 존재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었다. 이 집단은 울분에 차 있고 과격하며 목표의식이 확 고하고 전격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4월23일: 이 쿠데타 모의는 육군, 학생 집단, 그리고 개혁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박정희가 지도자인 것으로 추측되며 서종철 6관구사 령관도 가까운 지원자인 것 같다.>.
 
 이상의 CIA 정보보고는 두 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 이범석과 족청계 장교들이 쿠데타 모의를 하고 있다는 첩보는 장태화를 비롯한 박정희소 장측에서 퍼뜨린 역정보에 넘어간 때문으로 추측된다. 서종철 6관구 사 령관은 쿠데타 모의를 모르고 있었다. 6관구 참모장(김재춘)과 작전참 모(박원빈)가 모의과정에 깊숙이 참여한 것을 서종철 사령관의 지지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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