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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기념일 시위 불발
 4·19기념일 시위 불발
 
 박정희 소장이 거사일로 결정한 1961년 4월19일이 다가오자 주체세력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4월12일: 종로 4가 술집에서 박정희,박치옥 공수단장, 문재준 6군 단포병단장, 홍종철 6군단 작전참모, 김종필 등이 만나 6군단 포병단을 출동부대로 삼기로 결정했다.
 
 ▲4월13일: 공수단 차지철 대위는 전날 미도파 백화점 앞길에서 우 연히 만나 시국이야기를 나누었던 박종규 소령과 다시 만났다.
 
 에어 코리아사 앞에 있는 화식당에서 두 사람은 사회의 혼란상에 대 한 울분을 토로했다. 박종규와 차지철은 미국에서 공수훈련을 함께 받은 사이였다. 박 소령은 차지철을 포섭하기로 결심하고 이날 저녁7시에 명동 사보이호텔 지하 다방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여기서 박종 규는 사복을 입고 나온 김종필을 차지철에 소개해주었다. 박종규는 다 방 한구석에 앉아 있는 키 작은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 분이 박정희 장 군이다'고 했다. 잠시 후 박종규와 차지철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육사 9기 강상욱 중령 집으로 옮겼다. 거기에는 20여명의 혁명주체 장교들이 모여 있었다. 놀랍게도 직속상관인 공수단 대대장 김제민 중령이와 있 었다.
 
 차지철은 별실로 불려들어갔다. 박정희 소장 옆에는 김종필, 오치성 중령이 배석했다. 박정희는 차지철에 대한 일종의 면접시험을 실시한 것이다. 박정희는 '장면 정권은 지금 4월 위기설에 대비하여 학생들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매수작전까지 펴고 있다. 이런 무능하고 부패한 정 권은 넘어뜨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날 차지철 대위는 공수단의 영 내다방에서 동료 장교들을 불러모아 혁명동지로 포섭했다고 한다.
 
 ▲4월15일: 2군 사령부가 있는 대구에서는 이주일 참모장 중심으로 혁명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밤 참모장 관사에 공병참모 박기석 대령, 통신참모 박승규 대령이 불려왔다. 세 사람은 4·19혁명 1주년 기념일 시위로 인해 전국에 계엄령이 펴질 때 2군이 취할 조치를 확정 했다. 대구에 있는 3개 공병대대와 3개 통신중대를 동원하여 경북도청, 경찰국, KBS 대구방송국, 도지사 관사, 대구역을 점령하기로 했다.
 
 동시에 대구전신전화국의 전화선을 절단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 시키기로 했다.
 
 ▲4월16일: 박정희의 쿠데타 계획에 반대하는 이한림 1군사령관예하 의 참모부서에선 작전처의 육사8기 장교들 중심으로 혁명주체 조직이 형성되었다. 11명의 장교들은 이날 박용기 중령 집에 모였다. 이들은 서울에서 거사가 이루어지면 군사첩보대와 235수송중대 병력을 동원하 여 이한림 장군의 숙소와 사무실을 포위하고 특공대를 편성, 그를 체포 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4월17일: 월요일인 이날 박정희는 군용기편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오후 명동 입구 아스토리아호텔 객실에서 박정희는 행정반과 작전반의 대표들인 김종필, 오치성, 이석제, 박원빈, 강상욱을 만나 이틀 뒤로 다가온 거사준비 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박정희는 '복잡한 계획보 다는 간단하면서도 실천이 가능한 방법을 선택하라'고 강조했다. 박정 희는 명동 강상욱 중령 집으로 옮겨 출동부대 대표들을 접견했다. 박정 희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불러내어 악수를 하면서 '잘 해봅시다'고 말 했다.
 
 다음날 박정희는 대구로 내려갔다.
 
 ▲4월18일: 박정희는 대구에서 광주 육군항공학교 교장인 이원엽 대령을 불렀다. 이 대령은 강풍이 불어 다음 날 가기로 했다.
 
 ▲4월19일:박정희는 2군 부사령관실에서, 서울의 주체세력 장교들은 종로 부근 은성이란 음식점을 통째로 빌려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4·19혁명 1주년 기념식이 대규모 유혈폭동으로 발전하여 장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면 출동하게 되어 있는 폭동 진압부대를 그대로 쿠데타 부대로 전환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시나리오는 이날 대규모 시 위가 벌어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김종필, 박종 규가 공작한 비밀학생 조직원들이 시위를 선동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 었다. 이날 아침에 배달된 조간신문엔 '경찰은 민통계 학생들이 4·19 기념행진 때 반정부 시위를 선동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 특별경비태세 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박종규 소령은 이날 국제호텔내의 '정글'이란 바, 서울시청 앞 한일 다방을 연락처로 정했다. 포섭한 학생들이 시위를 일으킨 뒤 박 소령에 게 연락을 주면 박 소령은 김종필에게 보고하는 연락망을 만들었다. 이 날기념식은 화창한 봄날씨에 약 3만명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오전10시 부터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4·19기념행사학생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가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학생대표 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민족분열의 책임은 김일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가슴속에서 그 책임을 느껴야 한다. 동족상잔을 극복할 한국적 이념을 만들어내야 한다. 경제적 자유가 없는 곳에 정치적 자유가 있을 수 없 다. 우리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에 의존하는 조건부 자유를 누리고 있다. 현정부는 정권유지에만 급급하고 있다.>.
 
 기념식을 마친 학생들은 광화문을 향해서 시가행진을 했다.'이 이상 못살겠다, 장 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시위 행렬은질서 있게 행진했다. 이 군중 속에는 약 2천명의 사복경찰관들이 박혀 있었다. 비공개자료 '5·16혁명실기'는 이렇게 묘사했다.
 
 <광화문에 도착한 행진대열 속에서는 데모를 하려는 세력과 만류하 는 세력 사이에서 트러블이 발생했다. 데모를 극력 방해하려는 학생들 의 포위와 그 외곽을 포위한 사복경찰관들의 물샐틈 없는 포위 속에서 학생들의 행동은 제약되었고 봉쇄되고 말았다. 당시 정부는 4월 위기설 을 극복하기 위하여 2억환의 돈을 뿌렸다. 매수된 학생간부들의 데모 방해는 광화문에 이르러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 사전에 인쇄하여 놓았 던 2만장의 삐라는 한 장도뿌리지 못하고 말았다. 오후 5시가 지날 무 렵 경찰이 비밀 조직의 학생간부들을 체포하려 한다는 보고가 박종규에게 들어왔다. 지난 한 달 동안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학생훈 련 공작을 맡았던 박 소령은 크게 실망하고 학생들의 무기력을 한탄했다.
 
 하루종일 거사본부로 삼은 은성을 들락날락하던 장교들은 허전한 마 음에 어디 비할 곳 없는 표정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들은 '이제는 학생 들을 믿을 수 없으니 우리 힘으로 초지를 관철시키자'고 다짐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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