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정보
박정희 소장이 장도영 총장에게 혁명계획서를 건네주었느냐의 여부에 대해서 두 사람의 증언은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반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김종필 총리서리의 최근 증언은 이렇다.
4월 중순에 처삼촌인 박 소장이 부르더니 '혁명계획서 좀 가져와'라 고 하더란 것이다.
'뭐 하시게요.' '장도영 총장에게 이것 좀 보여야겠어. 여러 가지 이유로 장 총장이 선두에 서 주었으면 좋겠는데 설득을 좀 했으면 해.'.
'뭘 믿으시고 이걸 내보여줍니까. 재고하실 수 없겠습니까.' '장도영 총장하고 나는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야. 나한테 맡겨. 날 믿고 줘.'.
김종필은 내키지 않았지만 부대동원 계획, 혁명공약, 취지문 등 서류 를 꺼내드렸다고 한다.
'되받아오시는 겁니다. 그냥 놓고 오시는 게 아니라 보고 달라고 하셔서 갖고 오셔야 합니다. 원본인데 사본은 없습니다.'.
김종필은 혁명계획서를 건네주면서 원본은 천장 위에 숨겨놓고 사본을 박정희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이 '염려마'하시면서 가져가셨는데 나중에 올 때는 이 걸 놓고 오신 겁니다. 가슴이 덜컥 했지요. '대체 뭘 믿고 그걸 놓고 오 셨습니까'하고 따졌어요. '그걸 좀 보고 충분히 생각한 뒤에 답할 테니까 내일까지 좀 달라는데 안 줄 수 있나. 그리고 그렇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 라면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하셔요. 박 장군께선 '장도영 총 장이 그걸 읽어보고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 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 지 않나'는 취지로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나는 그날 저녁에 잠을 못잤 어요. 그 계획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김종필 총리서리는 이렇게 덧붙였다.
'장도영 총장은 그때 박정희 장군이 추진하는 혁명계획 이외에 미국 측이 추진하던 정권전복 계획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미국측은 그 때 공작원들을 불러와서 장도영 총장을 내세워 장면 정부를 쓰러뜨리는 공작을 하고 있었어요. 장도영 총장은 우리와 미국측 양쪽에 다리를 걸치 고 있었으니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이지요. 미국측의 공작 사실은 혁명이 성공한 뒤에야 정보부에서 밝혀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 공작원들 을 추방해버리고는 없었던 일로 하기로 당시 미국 대사와 합의했어요.'.
당시 육사8기 그룹의 핵심인 오치성 대령은 김종필에게 '박정희 장군 에게 녹음기를 드려 장도영 총장과의 대화를 녹음해오도록 하는 것이 어 떻겠느냐'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박정희는 김재춘(6관구사령부 참모 장) 대령 등 측근들에게도 장도영 총장에게 혁명계획서를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따라서 박정희의 측근들은 장도영이 '그 문건을 받아보지 않았다'고 한 해명을 믿지 않고 있다.
장도영은 1988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필치로 보니 내가받은 것 은 박정희가 쓴 '비둘기작전계획서'였지 김종필씨의 글씨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이 자신을 미는 쿠데타 공작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부인했다. 장도영의 해명 중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장도영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통상적인 비둘기 작전계획을 왜 박정희가 직접 가져 와 교회로 나가는 총장을 굳이 붙들어두고 보고했을까'하는 의문이 남는 것이다. 이 쟁점은 장도영이 박정희의 모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 가 를 판단하게 해주는 문제다. 혁명 전후의 흐름 속에서 사실관계를 종합적 으로 판단할 때 장도영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부분이 너무 많다.
당시 서울지구 방첩대장은 이희영 대령이었다. 그는 2군사령부 방첩 대장으로 있을 때 박정희로부터 '버마식 쿠데타를 하자'는 제의를 받은적 도 있었으니 서울로 올라온 뒤에는 박정희 소장을 더욱 예의주시하고 있 었다. 그는 군내의 족청계 장교들도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첩보,족청 계로 지목된 박병권 소장(본인은 이범석 국방장관의 부관이었지 이범석이 만든 족청, 즉 민족청년단에 가입한 적은 없다고 한다)과 박정희가 비밀 회동했다는 첩보도 들어와 이를 확인한다고 바빴다.
이희영은 '4월 중순부터는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쿠데 타 계획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여 이철희 방첩부대장에게 보고했다' 고 말했다. 장면 총리와 친한 한창우 경향신문 사장이 선물한 독일제 녹 음기로써 육사8기 장교들의 모의를 녹음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들이 무 교동의 한 호텔에서 비밀리에 만나는 것을 주체세력내에 박아둔 프락치로 부터 미리 통보받아 그 방에 녹음장치를 했다고 한다. 이희영 대령도 리 시버를 끼고 녹음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모의에 관한 정보를 방첩대 에 제공해준 장교는 5·16거사 뒤에 고위직으로 출세했다고 하는데 이희 영은 그의 이름을 밝히길 거부했다.
이희영의 서울지구방첩대는 박정희가 4월19일을 거사일로 잡고 있다는 첩보까지 입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런 보고를 상부로 올려도 '박정희 일당을 잡아넣어라'는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연히 장도영 총장이 박정희 소장 그룹과 짜고 쿠데타 를 추진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총장이 비호하고 박정희 소장이 지휘하는 쿠데타 모의'란 정보로 해서 방첩대는 과감한 수사를 할 수 없 었고 일부 장교들은 안심하고 모의에 참여했다.
정보를 활용할 줄 아는 박정희는 이때 장태화(서울신문 사장 역임)를 통해서 장면 정부측에 대한 정보공작을 하고 있었다. 장태화는 1949년에 박정희와 함께 육본 정보국 이용문 국장 아래서 문관으로 근무한적이 있 었다. 장태화의 형은 박정희와는 대구사범 동기였다. 장태화는 정치정보 수집이 전문이었고 정계에 발이 넓었으며 뛰어난 시국감각을 갖고 있었다.
1952년 부산 정치파동 때는 이용문-박정희가 이종찬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업고서 추진하던 이승만 정권 전복계획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박정희는 5·16혁명을 준비하면서 장태화로부터 시국관련 정보를 정기적으로 보고 받고 있었다. 비공개 '혁명실기'에 따르면 1961년 3월 박정희는 장태화에 게 두 가지 임무를 부여했다고 한다.
이쪽의 활동이 정보기관에 노출되지 않도록 역정보를 흘리는 일과 정보기관이 어느 정도로 이쪽 사정을 파악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서 보고해달라는 것이었다. 장태화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치안국 특정과 정보분실장 최난수를 만나 족청계 쿠데타설을 흘렸 다. 장면 총리와 가까운 신부와 국회의원을 만나서도 같은 역정보를 띄웠 다. 당시 장면 총리, 경찰, 군 정보기관에 들어간 족청계 쿠데타 첩보는 많았지만 실체가 없는 과장된 것이었다. 족청계 쿠데타설로 박정희 측에 대한 당국의 정보수집 활동 노력은 분산되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