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리 걸치기?
이날(1961년 5월6일) 장면 총리가 장도영 총장을 부른 이유는 민주당 윤병한 의원이 중요한 제보를 했기 때문이다. 공보비서관 송원영이 질린 표정으로 찾아온 윤 의원을 총리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윤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큰일났습니다, 박사님. 제가 잘 아는 오라는 사람이 있는데 김덕승 이라는 사람과 친합니다. 공사가 있다 하여 대구로 갔는데 김덕승이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장군한테 데리고 가더랍니다. 공사는 주지않고 박 장군 은 쿠데타를 하는데 돈 5백만환만 대라고 하더랍니다. 그 자리에서 거절 하기가 곤란해서 돈은 서울에 가서 주마 하고 나왔대요. 만일 돈을 주면 자기도 쿠데타 모의에 관련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다가 어젯밤에 저를 찾아와서 전모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 보고를 들은 장면 총리가 검찰총장과 육군참모총장을 부른 것이 다. 그렇다면 총리는 박정희 장군을 거명하여 조사를 지시했을 것이다.장 도영의 주장대로 장 총리가 족청계만 수사하도록 지시할 리가 없다.
장도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모의에 대한 정보 를 몇 차례 들었다고 기록했다. 5월6일쯤, 즉 장면 총리로부터 쿠데타 모 의설을 조사하란 지시를 받은 무렵 육군 방첩부대 부부대장인 백운상 대 령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이런 보고를 하더란 것이다.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하는 군대 거사설이 박 장군에 대한 모함이 아니라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족청계 쿠데타설은 아직 그 계획이 진척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혹은 역정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박 소장의 계획이 사실이며 그것이 더 많이 진척된 것 같습니다.'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그게 문제입니다. 서울에서는 너무 복잡해서 그 증거를 잡기가 아주 곤란합니다.' '그럼 대구에 직접 내려가서 조사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럴까요.' '여보,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니 내일 당장 당신이 직접 내려가서 조 사하시오.'.
4, 5일 후 백운상 대령이 다급하게 장도영 총장 집 현관으로 들어서 더니좀 흥분된 어조로 수집한 정보를 자세히 보고했다고 한다. 그 보고는 결론적으로 '박정희 소장의 지휘하에 쿠데타를 하려 한다는 것은 확실한 데 그세부 방법과 조직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보, 2군 사령부 참모들은 박정희 소장을 포함하여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그런 음모를 한다면 내가 전혀 모를 리가 없는데.' '조직은 주로 육군본부에 있고 모의는 2군 사령부 밖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육본의 주모자들을 체포하여 조사하면 증거가 나올 것입니다.'.
'무슨 증거를 가져야지, 이 혼란한 시기에 장성들을 쿠데타 음모 혐 의로체포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질질 끌려가면 군의 내외가 어떻게 될 것 같소.' '증거라고는 박 소장이 잘 다니는 중국요리집과 청수장이란 한식집에 서 장교들과 식사를 하는 것뿐인데 어떻게 합니까.'.
'나도 대구에서 근무할 때 그 두 군데서 때때로 장교들과 같이 식사 를 했는데 그것만으로 무슨 증거가 될까. 여하간 실제 모의에 관한 시일 과 장소 내용, 또 조직 등 무엇이든지간에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특 히 장성들을 체포하려면….'.
장도영이 이렇게 말하자 백운상 대령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더라고 한다. 장도영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백 대령, 좀 수고스럽지만 다시 대구에 내려가서 무엇이든 증거가 될 만한 것을 하나만이라도 잡아오시오. 일거에 육본내의 조직을 일망타 진합시다.'.
백운상은 무슨 착상이 생긴 것같이 '알았습니다. 내일 새벽 대구로 다시 내려가겠습니다. 돌아와서 보고하겠습니다'고 하더니 일어서더라는 것이 장도영의 증언이다. 그 2, 3일 후 2군사령부 인사참모 송인률 대령 이 원효로에 있는 장도영 총장의 집으로 찾아왔다. 육사5기 출신인 그는 두번 장 장군의 직속부하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송 대령은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거사모의를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장도영은'그 런 일이 있으면 속히 알려주어야지'라고 나무란 뒤 '빨리 돌아가서 잘 알아보고 속히 보고를 해달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상의 장도영 증언을 읽고 있으면 진행중인 쿠데타 음모에 관해서도 철저하게 증거주의를 요구하는 장도영 총장의 인권의식에 감동하기보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쿠데타 음모의 증거는 관련자들을 일단 연행, 조사 하면 저절로 나오는 것인데 내사단계에서 증거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상한 것이다. 미 CIA보고서에 따르면 장도영 총장은 보름 전인 4월24일에도 미 국정보기관원에게 '박정희를 체포하고 싶어도 증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 다.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정보가 여러 군데서 들어오고 더구나 총리가 직 접 그를 불러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있는 가운데 왜 장도영 총장은 증거론을 주장하면서 수사를 미루고 있었던가. 박정희가 주장했던 대로 4 월 중순 장도영은 박정희로부터 자신을 지도자로 추대한다는 혁명계획서 를 받아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 자리에서 장도영은 '지금은 혁명할 시기 가 아니다'라고말린 뒤 '거사를 하면 혁명지도자가 되고, 안하면 그만'이란 양다리 걸치기의 심정으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박정희 측근의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6관구 사령부의 참모장으로서 쿠데타 모의에 핵심적으로 참여하고 있 던 김재춘 대령은 이런 기억을 갖고 있다.
<박 장군이 장도영 총장에게 혁명계획서를 들고 간 사이 나는 남강이 란 음식점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돌아온 박 장군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면서 서류를 서랍에 넣어버리더군'이라고 해요. 제가 '그러면 우리는 그만둘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박 장군은 '그만두기는 왜 그만 둬'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계속 그 분을 지도자로 모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는데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 이후 장도영 장군은 일종의 이용도구로 전락한 셈이지요.>.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