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백운상과 CIA 지부장 실버
 백운상과 CIA 지부장 실버
 
 CIA 서울지부장 피어 드 실버는 퇴직한 뒤 쓴 '서브로자'란 제목의 회고록에서 미국이 5·16 전 한국군 안에서 등장하고 있던 새로운 세력에 대해서 무지했었음을 반성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장성들을 부패시켰다. 골프, 테니스, 포커, 칵테일 파티를 통해서 미국은 한국 장성들이 한국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한 국인들의 소망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한국군에선 미국 고위층이 주 최하는 사교모임에 전혀 참석하지 않는, 소외되고 알려지지 않은 일단 의 장교들이 있었다.>.
 
 최근 공개된 CIA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박정희 소장의 모의과정을 늦어도 4월 21일부터 추적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피어드 실 버가 1970년대 초에 쓴 회고록에선 5·16 며칠 전에 정보를 입수했다 고 했다.
 
 <우리는 박정희 직속참모의 일원인 어느 한국군 장교로부터 며칠전 에 군사혁명에 관한 사전 제보를 받았다. 그 장교는 우리 지부의 요원 과 친한 사이였다. 나는 매카나기 대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는 이 보고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당분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 를 취했다. 그는 내가 장 총리에게 통보해주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정보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행동개시 일자만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 라고 알려주었다. 장 총리는 이 보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몇달 전부터 군사혁명에 관한 루머들이 있었다. 군사혁명의 가능성이 짙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사관 사택 제2단지 내에 있는 내 집에 작은 송수신 무전기를 설치하여 대사관 건물 옥상에 있는 전 용 통신실과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통신실에는 2명의 무전사들을 배 치하여 24시간 밤낮없이 근무하도록 조치했다.>.
 
 실버 지부장한테 이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가.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을 실버는 남겼다.
 
 <쿠데타가 성공한 뒤 그 전에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했던 한국군 장 교는 불안해 했다. 그는 미국으로 탈출, 망명처를 구하겠다고 했다.우 리는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를 오키나와로 옮겼다가 미국으로 데리 고 갔다. 가족도 데려다주었다. 얼마 뒤 고향이 그리워진 그는 박대통 령으로부터 면책 보장을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가 지금 평화롭게 살고 있다.>.
 
 실버 같은 냉전의 전사가 정보원을 사실대로 밝혔을 리는 없다. 그 는 5·16 거사 며칠 전에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으나 공개된 CIA 보고서엔 '4월 24일 전에 쿠데타 정보가 자발적으로 들어왔다'고 되어 있다.
 
 그의 기술엔 사실과 각색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혁명주체 세력 가운데 미국으로 망명한 장교는 없다. 5·16 거사가 성공한 뒤 미군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피신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 이다. 장도영 총장을 찾아가 박정희의 쿠데타 모의에 대해서 보고했던 육군방첩부대 부대장 백운상 대령. 5·16 직후 방첩대장으로 부임했던 김재춘(중앙정보부장 역임)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방첩대로 갔더니 백운상 대령이 며칠간이나 보이지 않아요. 미8군정보부대에 문의했더니 자신들이 백 대령을 오키나와를 거쳐 미 국으로 피신시켰다고 실토하더군요.'.
 
 백운상 대령은 육사3기 출신. 키가 크고 미남인 그는 육군방첩대의 전신인 특무대의 대장으로 일하다가 암살되었던 김창룡과 동기였다.백 대령은 1948년 육본 정보국에 특무대의 전신인 특무과가 만들어졌을때 부터 근무한 방첩부대의 터줏대감이었다. 5·16 무렵 방첩부대장이었 던 이철희 준장은 첩보부대에만 오래 근무한 때문에 방첩업무엔 어두 운 편이었다. 이 때문에 발이 넓은 백운상 대령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 고 있었다. 백 대령은 국군 수뇌부, 미군, 정치인들과 관계가 좋았다. 백운상은 장도영 총장에게 두번이나 '박정희의 쿠데타 모의가 확실하 다'고 보고했으나 '증거를 갖고 오라'는 말을 듣고 대구로 다시 내려 갔다.
 
 이 무렵 2군 사령부 인사참모부서에 근무하고 있던 육사8기 전재구 (유정회 국회의원 역임) 중령은 방첩대 출신이었다. 그에게 어느날 백 운상 대령이 '대구에 볼 일이 있어 왔는데 퇴근 길에 호텔에 들려다오' 라는 연락이 왔다. 동인호텔로 찾아가 방첩대 시절의 상관을 모시고 나온 전재구는 저녁을 함께 했다. 백운상은 '박정희 장군이 요즈음 이 상하지 않나'라고 캐물었다. 전재구 중령은 8기 동기생들의 움직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딱 잡아뗐다. 백운상이 '내가 이번에 단단히 결심하고 내려왔다'고 말하는 것이 곧 강제수사에 들어갈 태세 였다. 전재구 중령은 '나도 방첩대 출신이라 좀 아는데 여기는 아무 일도 없으니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하곤 헤어졌다.
 
 1964년 정보부 국장이던 전재구는 미국에서 살고 있던 백운상 대령 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미군 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건너 온 경위를 밝히면서 한국 정부에 협조하 겠다는 뜻을 전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 뒤 백운상 대령의 행방 에 대해선 '홍콩에서 봤다'는 첩보 정도이다. 백운상과 함께 미국으로 갔던 가족은 귀국이 허용되어 왕래가 자유롭게 되었으나 백운상은 끝 내 조국을 밟지 않았다고 한다.
 
 1961년 4월말로 접어들면 박정희는 거사 자금 문제로 골치를 썩인 다. 불어난 모의 장교들의 모임이나 회식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게 필 요했고, 특히 장면 총리의 체포를 책임진 박종규 소령의 공작에 돈이 심심찮게 들게 되어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의 지원을 받기로 한 박 소 령은 장면 총리가 사무실로 쓰던 반도호텔 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박 소령은 거사일에 호텔 안에 무역회사 사무실로 위장한 방을 하나얻어 총리를 감시하려고 했다. 그는 대구로 내려와 박정희 소장에게 돈 문 제를 의논했다. 박정희는 돈을 만드는 재주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5·16혁명실기'는 '이즈음 각각으로 다가오는 시기의 성숙과 이에 대비해서 극도의 자금조달 곤란이 박 소장으로 하여금 밤잠을 못이루 게 하였다'고 했다. 5월 3일 박정희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대구사범 동 기 황용주 부산일보 주필을 송도 덕성관에서 만났다. 군수기지사령부 의 참모장 김용순 준장을 데리고 온 박정희는 황용주를 옆방으로 불러 내더니 거사 계획을 설명하고는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급히 김지태 사장에게 부탁하여 5백만환만 융통해줄 수 없겠나.'.
 
 황 주필은 난감했다. 부산일보 김지태 사장에게 자신이 그런 부탁 을 할 처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김 사장이 과연 성공이 불확실한 쿠데 타 계획에 돈을 댈 것인지 자신을 가질 수도 없었다. 박정희는 대답을 망설이는 황용주에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김 사장에게는 서울의 모 장성이 요청한다고 말하든지 그래도 반응이 없을 때는 쿠데타 계획을 약간만 비쳐주어도 괜찮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어떤 계기를 만들어서 이야기해보지.'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