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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2군 부사령관에게 자금을 얻으려 대구로 내려갔다가 4월27일 빈 손으로 올라온 박종규 소령은 상경 즉시, 명동의 자유중국 대사관 앞 에있던 왕실 다방으로 갔다. 김종필과 김용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딱한 이야기를 듣고는 김용태가 나서서 돈을 구해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박종규는 신당동의 박정희 장군 집으로 갔다. 상경한 박정희가 혹시 돈을 만들어 가져왔는지 싶어 갔더니 해병대의 김동하 예비역 소장이 와 있었다. 세 사람은 장면 총리 체포계획을 의논했다.
 
 다음날 김종필은 박종규 소 령을 데리고 김동하 장군 집을 찾아갔다. 반도호텔 안에다가 무역회사 사무실을 하나 내고서 자연스럽게 총리를 감시하기로 했다. 무역회사 사장으로는 김동하가, 전무로는 박종규가 위장하기로 했다.
 
 반도 호텔 내에 사무실로 위장한 거점을 마련하여 장면 총리의 거동 을 감시한다는 계획은 결국 돈을 구하지 못해 그만두었다. 박종규는 그 대신 호텔 내부의 정밀정찰에 들어갔다. 당시 그는 가짜 사진기자 신분증을 소지한 채 카메라까지 메고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호텔의 엘리베이터, 비상계단을 이용하면서 지형정찰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장 면 총리가 쓰는 808호실로 올라가려면 승강기와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7층에서 8층으로 통하는 문은 잠겨져 있으나 쉽게 돌파할 수 있다는 판 단을 내렸다. 건물양쪽에 붙은 철제로 된 비상 사다리는 밤에는 지상에 서 2m쯤 들려 있었다.
 
 박종규는 808호실 부근의 복도를 배회하다가 사복 경찰관에게 두번이나 검문을 당했다. 박 소령은 그때마다 기자를 사칭했다.
 
 총리는 방 4개를 쓰고 있었다. 그 옆방을 무턱대고 두드려보았다. 일 본 기자가 투숙하고 있었다. 박종규는 '전화 좀 씁시다'라고 말한 뒤 방 에 들어가 내부 구조를 살펴보았다. 호텔 2층 모퉁이엔 통신실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5월3일, 대구 박정희 소장의 관사에서는 중요한 모임이 있었다. 5·16 쿠데타 작전의 작전참모역을 하던 박원빈 6관구 작전참모,수도권에 위치 한 33사단 작전참모 오학진 중령, 30사단 작전참모 이백일 중령이 박정 희와 머리를 맞대었다. 4월말부터 2군 사령부에서 있었던 비상훈련에 참 가했던 세 장교들은 자연스럽게 박정희를 찾아본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 원빈은 '거사일을 5월12일에서 5월16일로 연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하 고 건의했다. 그는 '제가 5월13일부터 16일까지 주번사령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출동명령을 내리기가 좋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박정희는 '생각해 보자'고 했다.
 
 5월6일, 박정희는 안동 주둔 36사단장 윤태일(서울시장 역임)과 송찬 호준장을 대구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윤태일이 '지금 결행하는 것은 다 소빠른 느낌이 든다'고 했더니 박정희는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박정 희와 거의 일심동체처럼 움직이던 이주일 2군참모장은 통신참모 박승규 대령에게 '5월 중순에서 늦어도 하순 사이엔 거사한다'고 암시를 주었다.
 
 5월8일, 박정희는 부산으로 내려가 군수기지사령부 참모장 김용순준 장을 만났다. 거사날짜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부산 지역을 책임져라. 방송이 나가면 부대를 동원하여 상황을 장악하라'고 지시했다.
 
 5월9일, 박정희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 오전에 김종필은 이종태대령의 발설로 방첩대가 5월12일 거사계획을 알게 되었다는 판단을 했다. 이날 밤 10시 아스토리아 호텔 객실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박정희 장군을 비롯, 김종필, 오치성 대령, 김동환 중령, 김형욱중령,신 윤창 중령, 이낙선 소령이 모였다. 이 모임에서 박정희는 일단 5월12일 거사를 중지하기로 결정하고 대구로 내려갔다.
 
 5월12일, 박정희는 다시 대구에서 상경했다. 이 무렵 최경록 2군 사 령관은 미국으로 장기간 출장중이었으므로 박정희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대구를 떠나기 전, 박정희는 광주의 육군항공학교장 이원엽 대령에게 전 화를 걸었다. '대구로 와서 이주일 참모장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박정희를 태운 경비행기는 고향인 선산과 금오산 위를 날았다. 박정 희는 이것이 고향을 마지막으로 보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박정희는 서울에 도착한 뒤 주체장교들과 잇따라 만났다. 일본음식점 남 강으로 김재춘 6관구 참모장, 박치옥 공수단장, 송찬호 준장을 불렀다. 김재춘은 이날 오전까지도 이날 밤으로 예정된 거사일이 연기된 줄은 모 르고 박정희 장군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쯤 박정희의 전화가 왔다.
 
 '오늘은 틀렸어. 최종적으로 날짜를 잡고 의논도 할 겸 남강으로 나와요.'.
 
 김재춘이 남강으로 들어가는데 방첩부대장 이철희 준장과 서울지구대 장이희영 대령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게 목격되었다. 김재춘은 '이들이 벌 써 낌새를 차렸군'하고 박정희에게 귀띔했다.
 
 '별 것 아닐 거야. 저희들끼리 식사하러 왔겠지.'.
 
 박정희는 장도영 총장을 지도자로 모시려고 공작한 것이 잘 안되고 있 다고 걱정했다. 송찬호는 '장도영 총장에게 다녀왔는데 도무지 이야기가 안되던데요'라고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런 말로 결론을 내더라고 한 다.
 
 '장도영 장군이 동의하든 안하든 계획대로 한다. 그러나 장도영 장군 명의로 혁명한다.'.
 
 이런 증언으로 미루어 장도영 총장은 박정희의 쿠데타 모의를 잘 알 고 있었지만 지도자가 되어달라는 권유엔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자기를 쿠데타 지도자로 모시겠다면서 일을 꾸미고 있는 박정 희를 잡아넣을 만한 결단력도 없었다. 박정희는 이 자리에서 5월16일 새 벽 3시를 'D데이 H아워'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혁명 주체 장교들은 15일 밤11시까지 6관구 참모장실에 모여 박 장군의 지시를 받기로 했다. 박정 희는 12일 밤에 김동하 장군 집으로 갔다. 해병여단장 김윤근 준장이 와 있었다.
 
 박정희는 5월16일로 거사일이 확정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박정희 소장은 이날 육사8기 중심의 영관급 장교들을 불러모아 5·12 거사의 연기와 새로운 거사일에 대해 의논했다. 이석제 중령이 말했다.
 
 '각하, 거사일이 늦어지니 정보가 누설될까 걱정입니다. 동지들도 불 안해져 잠을 못자는 형편인데 언제 혁명하실 작정입니까.'.
 
 박정희는 씩 웃으면서 이석제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손바닥에다가 손가락으로 5·16이라고 썼다.
 
 (조갑에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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