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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공약 제6항 첨가
 혁명공약 제6항 첨가
 
 광명인쇄소로 돌아온 이학수 사장은 공장장을 불렀다.
 
 『오늘 밤 공보실에서 급한 원고가 나와서 철야작업을 해야 하겠으니 야근할 사람들을 뽑아 대기시키시오. 저녁식사도 모두 공장에서 하도록 이르시오.』.
 
 이학수는 그날 저녁 친구 세 사람을 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곤 정색을 하고 말했다.
 
 『며칠 안으로 내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내가 불행해지 면 자네들 세 사람이 힘을 모아 내 공장을 경영해주고 내 자식들도 클 때까지 돌봐주어야 해.』.
 
 친구들은 『농담이 지나치군』하고 웃어 넘기려 했다.
 
 『진담이다. 절대 흐지부지하게 듣지 마.』
 『혹시 수뢰사건에 걸려든 것 아냐.』
 『아니야.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게 밝혀질 것이니 더 이상 묻지마.』.
 
 이학수는 식사를 끝내고는 집으로 갔다. 잠든 처자식의 얼굴을 바 라보면서 불안한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자정 직전 전화가 울렸다.
 
 공장에서 온 전화였다. 그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일어난 아내에게 『오늘 야간작업이 있어 공장에서 밤샘을 해야겠다』면서 자식들 얼 굴을 한번 더 내려다보고는 공장으로 향했다. 야간작업 인원들을 파 악한 다음 그는 김종필이 오기를 기다렸다.
 
 민간인 참여자 가운데 장태화는 박정희와 직통으로 정보수집, 상 황분석의 일을 하고 있었다. 5월15일 낮에 육영수로부터 전화가 걸 려왔다. 그가 전화를 받으니 육영수는 박정희를 바꾸어주었다. 박 장 군은『집으로 좀 와주시오』라고 했다. 장태화는 점심을 먹고 신당동 으로 갔다. 박정희, 김종필, 장태화, 그리고 좀 늦게 합류한 이낙선 네 사람은 안방에서 어제 끝내지 못한 혁명공약, 포고령, 정부기구표 등의 문안 검토 작업을 계속했다. 김종필이 써온 혁명공약에 박정희 는 나중에 논란의 대상이 되는 제6항을 추가했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 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는 조항은 박 정희의 입버릇이 된 '버마식 군부통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군대 는 병영으로 들어가 대형처럼 정치를 감독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정치에 개입하여 정리를 해주고 들어가는 식의 군부통치 구상은 장구한 문민통치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 먹힐 리가 없었다. 박정희나 김종필이나 국가근대화를 혁명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단순히 구 정치를 청산한다는 한시적 정치참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종필은 이 6항의 첨가에 반대했으나 박정희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박정희는 혁명공약의 발표자 명의를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으로 하도록 지시했다. 김종필은 반발했다. 『그런 사람 을 왜 우리가 모셔야 합니까』하고 대들다시피 했으나 박정희는 자신 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정희, 김종필, 장태화가 문안을 검토하여 수정한 것을 이낙선이 정서했다.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령 1호는 출국금지, 집회금지, 언론검열, 직 장이탈 금지, 통금시간 연장, 영장없는 구금과 극형을 규정한 무시무 시한 내용이었다.
 
 포고령 제 2호는 16일 오후 5시를 기해서 일체의 금융거래를 동결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16일 아침 9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는 것과 맞추어 오전 9시로 수정되었다. 은행의 인출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었 다.
 
 포고령 3호는 공항과 항만 폐쇄.
 
 포고령 4호는 국회(민의원, 참의원)와 지방의회의 해산, 정부 인 수, 정당과 사회단체의 정치활동 금지, 국무위원 체포를 명령하는 내 용이었다.
 
 포고령 5호는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예금인출을 1회에 10만환, 한달 에 50만환으로 제한하는 내용.
 
 포고령 6호는 물가동결과 매점매석자에 대한 극형.
 
 포고령 7호는 외국인 재산에 대한 보호령이었다.
 
 5월16일 이후 김종필은 열건이 넘는 포고령 문안을 호주머니에 넣 고 다니다가 차례로 발표하였다. 포고령 15호부터는 혁명 이후에 작 성한 것이라고 한다. 혁명 이후의 정권안정과 권력구조의 대강을 결 정한 이날의 문건 검토작업이 이뤄진 작은 안방은 새로운 정권을 탄 생시킨 산실이기도 했다.
 
 방안은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장태화는 팔멀, 김종필은 컨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박정희가 말했다.
 
 『이 담배도 오늘이 마지막이군.』.
 
 김종필이 받아서 말했다.
 
 『실컷 피웁시다. 내일이면 세상이 바뀌니 양담배를 장송하는 셈 치고 마음대로 피웁시다.』.
 
 내일 쿠데타에 실패하면 양담배를 피울 수가 없게 될 것이고 성 공해도 지도층의 입장에서 양담배를 피울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어차 피 양담배는 이것이 마지막이란 뜻이었다.
 
 이날 육영수는 몸조심을 하였다. 박정희가 부르지 않으면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육영수가 차려온 저녁을 먹는데 김종필이 이은상 에게 집필을 부탁해 두었던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네 사람은 글을 돌려가며 읽어보았다. 내용이 너무 유약하고 박 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보류하기로 했다.
 
 이날 신당동 자택에는 혁명파 장교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오전엔 진해 육군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육사8기 정문순 중령이 찾아와서 '민주당사 점령'이란 임무를 받아갔다. 광주 항공학교장 이원엽 대 령, 보병학교 참모장 최재명 대령도 찾아왔다. 박정희는 이원엽에게 『전국 주요도시에 혁명의 취지를 알리는 전단을 뿌려라』고 지시했 다. 하루 전 박정희의 친서를 지니고 1군 사령부의 혁명파 장교들을 찾아갔던 이낙선은 전달을 마친 다음 오후 1시쯤 신당동으로 와서 문안 정서에 매달렸다. 혁명이 성공한 다음 장도영에게 전달할 박정 희의 편지초안도 이낙선이 썼다.
 
 점심 무렵엔 박종규 소령이 와서 김종필에게 반도호텔 작전 계획 을 현장에서 점검한 결과를 보고했다. 박정희는 국방대학원에서 공 부하고 있던 윤태일, 송찬호 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 5시까지 와 달라고 했다. 이 두사람이 나타나자 박정희는 이낙선이 작성한, 장 도영 앞으로 보내는 박정희의 편지를 건네주면서 거사가 시작된 이 후 장도영을 찾아가서 편지를 전하고 군사혁명에 가담하든지 아니면 방해는 하지 말도록 설득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정희는 육본 교육처장 장경순 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 6시까지 와 달라고 했다. 장경순은 왜 자기를 불렀는지 모른 채 신당동에 도착했다. 박정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장 장군, 내일 거사야.』.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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