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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공약 인쇄 이학수사장
 혁명공약 인쇄 이학수사장
 
 5월14일 오후 신당동의 박정희 소장 집에선 이상한 풍경이 벌어졌다. 육군 방첩대 산하 서울지구대(506부대) 대장인 이희영 대령과 육군본부 직할 제15범죄수사대(CID) 방자명 중령이 박정희의 집을 방문한것이다. 서울지역의 두 군수사기관장은 박정희의 혁명 모의를 알고 있었다. 이 희영은 전날 밤엔 박정희 소장을 구속하느냐 마느냐로 검찰총장과 논의 까지 한 사람이다. 방첩대는 그 순간에도 박정희의 전화를 감청하고 있 었고 미행조를 붙여놓고 있었다.
 
 그런 판에 박정희는 두 사람을 앉혀 놓고는 동석한 혁명파 김동하를 태연히 소개시키고 쿠데타 이야기를 하 는 것이었다. 한해 전 이희영 대령이 2군 방첩부대장이었을 때 하던 그 이야기였다.
 
 '군이 한번 나서서 깨끗이 쓸어버린 뒤 병영으로 돌아간 다음에 정치를 감시하다가 마음에 안들면 또 나오면 되는 거야. 이게 버마 네윈 식이지.'.
 
 박정희는 날짜만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지 거사가 임박했다는 냄새 를 풍겼다.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는 암시도 주었다. 방자명이 들으니 박정희는 자신과 이희영을 혁명동지로 생각하는 듯했다. 방자명은 속으로 '무슨 배짱으로 저러나'하는 반발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날 이희영은 박정희에게 전임 506부대장인 이행주 중령의 선처를 부탁하려고 박정희와 잘 아는 방자명을 데리고 갔었다고 한다.
 
 이 중령은 박정희의 집 앞에 군고구마 장수로 위장한 정보원을 배치, 감시하다가 박정희에게 발각되었던 사람이다. 박정희는 '다 지난 일을 가지고 뭘…' 하면서 부탁을 받아주었다. 쿠데타 음모 분쇄의 책임을 지고 있던 이희 영은 이 때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막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미리 이중 령의 구명을 부탁해놓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5월14일 오후 박정희는 바빴다. 이낙선 소령에게 친서를 지참시켜 1군사령부의 장교들에게 전달하도록 보냈다. 대구에 있는 이주일 2군 참모장에겐 '모레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못내려간다'고 전화로 연락을 했다. 모레, 즉 16일에 거사한다는 뜻이었다.
 
 14일 밤 박정희는 신당동 자택에 머물면서 늦도록 김종필이 가져온 혁명공약, 각계에 보내는 호소문, 포고령 따위의 문안을 검토했다. 자 정을 넘겨도 끝나지 않아 다음날 다시 하기로 했다. 밤늦게 문재준 6군 단 포병사령관이 방문했다. 지방에 내려갔다가 오전에 있었던 작전회의 에 참석하지 못해 뒤늦게 들러 박정희로부터 지침을 받으러 온 것이다.
 
 이날 밤 공수단 대대장 김제민 중령 집에는 박종규 소령, 차지철 대 위등 11명의 팀장(대위)이 모여 장면 총리의 집무실이 있는 반도호텔점 령계획을 논의했다. 엘리베이터조, 비상구조, 층계조, 정문조를 편성, 약 70명의 병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다음날(15일) 오전에 김제민, 박종규, 차지철, 그리고 다른 세 대위 는 반도 호텔 건너편 중국음식점 아서원으로 갔다. 박종규가 비스듬히 옆면이 보이는 반도호텔의 외부 구조에 대해서 설명했다. 건물 양쪽 면 에난 철제 비상계단의 하단은 접혀져 있었다. 위에서 비상탈출할 때 펼 칠 수 있게 된 것인데 밑에서 오르려면 로프가 필요할 듯했다.
 
 이들은 이어 반도호텔의 내부를 정찰키로 했다. 먼저 1층에 있는 바로 들어가 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맥주잔이 떨어져 깨졌다. 긴장된 분위기에서 나는 파열음은 그들을 더욱 긴장시켰다. 누군가가 '장면 정권이 깨지는 소리야'라고 했다.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 래 위를 오가면서 8층에 있는장면 총리의 집무실과 숙소를 공격할 행동 계획을 짰다.
 
 5월15일은 월요일이었다. 청파동 숙명여대 앞에 살던 김종필은 아침 에 군복으로 갈아입고 신당동 처삼촌 집으로 향하면서 만삭의 아내 박 영옥을 향해서 한 마디 했다.
 
 '하느님이 도우시면 당신과 또 만날 수 있겠지. 자고로 유복자는 대개 아들이라고 하니까 설령 내가 이 거사에서 죽더라도 그놈만은 잘 키워주시오.'.
 
 김종필은 언덕배기에서 내려오다가 뒤돌아보았다. 박영옥은 문 앞에 서 있었다.
 
 5월15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안국동 광명인쇄공사 이학수 사장 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검은 안경을 쓴 김종필이었다. 이 사장은 일본에 주문한 인쇄기 구입건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 다. 김종필은 안경을 벗더니 '내일 미명을 기해서 거사하기로하였소'라 고 했다. 이학수는 '제가 맡은 일은 완수하리다. 염려마시오'라고 했다.
 
 '이형, 제가 안내할테니 박 장군한테 갑시다. 이형을 만나자고 합디 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아탔다. 신당동으로 달리는 차중 에서 김종필은 이 사장의 손을 잡더니 귀엣말로 '오늘처럼 시간이 안가 는 날도 처음이오'라고 했다. 신당동 박정희 장군집에 들어가니 키가 큰 한웅진 육군 정보학교장이 먼저 와 있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있는 데 박정희가 안방에서 나왔다.
 
 '이형, 잘 오셨소.'.
 
 인사를 나누는데 노란 스커트를 입은 육영수가 들어왔다.
 
 '여보, 인사하시오. 이분이 이주일 장군의 친척되시는 이학수씨요.'.
 
 박정희는 이학수를 안방으로 데려갔다. 옷장 깊숙이 넣어둔 공책 한 권과 서류를 꺼냈다. 혁명공약과 혁명취지문 포고문 초안이었다. 박정 희는 이 서류들을 내놓고 이학수의 의견을 구했다. 이학수는 32절지 크 기로하여 35만∼50만장을 인쇄하면 자정부터 시작할 경우, 다음날 아침 6시에 끝날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는 '포고문의 인쇄는 혁명군이 서울 시내로 진입한 뒤에 시작하라'고 했다. 확정된 혁명공약과 포고문의 인 쇄원고는 김종필이 밤에 전해주기로 했다. 박정희는 이렇게 당부했다.
 
 '이 사장, 사전이나 작업중에 경찰이나 수사기관에 붙들려가는 일이 있더라도 15시간 만은 입을 열지 마시오. 공장 직원들이 작업하는 동안에 기밀이 누설되지 않게 잘해주시오.'.
 
 박정희는 옆에 앉아 있던 김종필에게도 지시했다.
 
 '경호원 3, 4명을 데리고 가서 직접 작업을 감독하게. 그리고 순찰 경관이 오거든 입을 막고 잡아둬.'.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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