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부 혁명 전야
합동작전회의
해병대는 거사 준비를 모범적으로 하고 있었다. 김포 해병여단장 김윤근 준장은 출동부대로 내정한 오정근(국세청장 역임)중령의 대대 를 강화하기 위해서 5월초에 보전포 협동훈련을 실시했다. 무슨 일인 지도 모르는 작전참모는 '보전포 훈련을 할 만한 장소가 없다'고 반 대했다. 김윤근은 '군단장과 인접 사단장을 모시고 훈련시범을 가지 려는 것이니 비좁더라도 여단 지역내에서 장소를 물색해보라'고 지시했다.
보전포 훈련이 오정근 대대 중심으로 끝나자 김윤근 여단장은 이 대대에 대해서 야간 기동훈련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다른 장교들은 훈련이 오정근 대대에 집중되는 걸 보고는 기합을 받고 있다고 생각 했다. 오정근 대대는 중대 단위의 도보훈련만 해오다가 대대 규모의 차량 이동훈련을 받게 되었다.
김윤근 여단장은 김포 가도를 현지시 찰했다. 비포장에다가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웅덩이도 있어 야간 기동 에 장애가 될 것 같았다. 그는 해안 중대와 공병 중대를 동원하여 길 을 보수했다. 해병대가 5월16일에 모범적으로 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5월14일은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이날 아침, 영천에서 상경한 한 웅진 육군 정보학교장이 신당동 박정희 집에 들렸다. 한 준장의 임무 는 거사 당일 박정희의 경호와 수행이었다. 이때 이틀 전에 경찰에 연행, 구속된뒤 박정희의 쿠데타 모의에 대해 추궁을 받고 있던 김덕승의 처가 찾아왔다. 남편을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한웅진은 '며칠 참으면 절로 해결될 터이니 기다려주세요'라고 달래보냈 다. 박정희, 한웅진 두 사람은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한 웅진은 박정희의 호위병으로 데리고 올라온 부하들이 묵고 있는 화신 옆 미화 호텔로 돌아갔다. 박정희는 집을 나와 약수동으로 향했다.
서울 약수동 김종락(김종필의 형)의 집에 아침부터 평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 색 안경을 낀 이들이 많아 장교들임 을 짐작케 했다. 은행 간부이던 김종락은 집안의 아이들을 모두 학교 운동장으로 보냈다. 김포 해병여단장 김윤근 준장은 처음 찾아가는 길이라 늦을까봐 일찍 출발했는데 회의 시간 10시보다 15분 일찍 도 착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한꺼번에 오면 이웃에서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근처 다방에서 3, 4명씩 모였다가 들어오곤 했다. 참석자들은 박 정희 소장과 김동하 예비역 해병소장, 김종필을 비롯하여 25명.
공수단: 단장 박치옥 대령, 대대장 김제민 중령.
30사단: 작전참모 이백일 중령, 33사단 작전참모 오학진 중령.
6군단 포병단: 6군단 작전참모 홍종철 대령, 대대장 신윤창 중령, 대대장 구자춘 중령, 대대장 백태하 중령, 대대장 정오경 중령, 대대 장 김인화 중령.
6관구 사령부: 참모장 김재춘 대령, 작전참모 박원빈 중령.
김포 해병여단: 여단장 김윤근 준장, 대대장 오정근 중령, 부연 대장 조남철 중령, 인사참모 최용관 소령.
특수임무 담당자: 오치성 대령, 옥창호 중령, 김형욱 중령, 이석 제 중령, 유승원 중령, 박종규 소령.
박정희가 간단한 인사를 했다. 이어서 쿠데타군 출동계획의 입안 자인 박원빈 중령이 각 부대의 임무와 출동시간을 설명했다. 그 요지 는 이러했다.
선두부대 공수단. 점령목표는 반도 호텔과 총리실.
제2대 해병여단. 목표는 내무부, 치안국, 서울시경.
제3대 33사단. 시청앞, 덕수궁에 집결. 점령 목표는 KBS제1-제 2방송국과 기독교 방송국, 국제전신국, 중앙전화국.
제4대 30사단. 점령 목표는 중앙청, 청와대, 시경 탄약고, 서대 문 및 마포 형무소, 연희 송신소.
제5대 6군단 포병단. D데이 H아워인 5월16일 새벽 3시보다 40분 뒤까지 육본 광장에 집결하여 예비대의 역할을 한다.
요인 체포 등 특수임무를 맡은 장교들은 16일 새벽 2시30분에 영 등포-김포 삼거리에서 대기하다가 공수부대의 병력들을 인수받아 임 무를 수행한다.
제1 지휘소는 6관구 사령부, 제2 지휘소는 남산, 제3 지휘소는 육군본부.>.
원래 박원빈은 한강 서쪽에 위치한 부대가 한강 인도교를 건너는 순서를 해병여단, 공수단, 33사단으로 제의했으나 김윤근 해병여단장이 반대했다.
그는 해병여단이 가장 먼 곳에 있으니 공수단 뒤로 해달라고 했 다. 공수단 김제민 중령은 공수단에 차량이 부족하다면서 스리쿼터 수송대의 지원을 요청했다. 스리쿼터 한 대에 공수단 1개 팀이 타도록 하기위해서였다. 박원빈 중령은 6관구의 차량들을 15일 밤 10시까 지 공수단 연병장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김종필이 신문지에 싼 돈을 돌렸다. '집에 양 식이라도 사주자'는 취지였다. 해병대 몫은 30만환이었다. 이 합동작 전회의가 끝난 뒤 해병대의 네 사람은 따로 모였다. 오정근 대대장 등 세 영관 장교들은 여단장에게 불평했다.
'왜 한강인도교 통과의 선봉을 양보했습니까.'.
김윤근 준장은 찬찬히 설명했다.
'거사가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보았소? 우리가 선봉이 되었다가 실패했을 경우, 해병대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소. 또 성공한다 하더라도 해병대가 선봉이었다고 하면 누가 집권해도 해병대를 경계 하고 푸대접하게 될것이고, 육군측의 시기와 중상이 첨가되면 해병대 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으니 피해야지요.'.
합동 작전회의를 마친 뒤 김종필과 이석제, 민간인 김용태는 남 아서 문안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혁명공약, 포고문은 김종필이 작성했다.유승원 대령과 이석제 중령은 국민, 학생, 재향군인, 국군,유엔 군장병 및 사령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작성했다. 이런 문건들을 검토한 뒤 김종필 중령이 박정희에게 가져가 최종 검토를 받기로 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