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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부 혁명아의 24시 : 영시의 암흑
 제10부 혁명아의 24시
 
 영시의 암흑
 
 사람이 긴장하여 불안에 휩싸이면 정상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을 보여준 사례가 5월15일 밤 6관구 사령부 앞에서 벌어졌다. 거사비밀이 누설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혁명장교들은 사령부 정문에 배치된 병력이 자 신들에게 적대적인 쪽에서 동원한 것이라고 오판했다. 아무도 초병들을 통해서 안에 있는 박원빈 작전참모나 김재춘 참모장을 부르려고 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탄 지프를 따르던 뒷차의 장경순 육본 교육처장은 6관구 사령부 정문에서 초병들이 박정희의 지프를 에워싸는 것을 보고는 박 장군이 체포되고 있다는 오판을 했다.
 
 장경순은 이날 자신의 임무가 공수부대의 출동을 도와주는 것임을 깨 닫고 김포의 공수단으로 차를 계속해서 달리게 했다. 차안에서 장경순은 만감이 교차하는 고민을 했다. 공수단 정문에 도착하여 내리려다가 그는 한 2백m쯤 더 가게 한 뒤 차를 세웠다. 먼저 내린 장경순이 뒷자리에 탄 권천식 소령을 보고 말했다.
 
 '너, 내려!'.
 
 장경순은 다짜고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넌 내려서 집에 가!'.
 
 '안됩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를 가는 줄도 모르면서 같이 간다고 해? 빨리 내려!' .
 
 권천식 소령은 기어코 안내리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권 중령은 3사 단의 중대장으로서 6·25 당시 관망산 고지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사람이 었다. 관망산을 공격한 일곱 명의 중대장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다.
 
 장경순은 멱살을 잡고 그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타이르듯이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4대 독자가 아닌가. 죽어선 안돼. 그리고 자네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우리 가족도 돌봐주어야지.'.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권천식 소령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더 니 입을 덜덜 떨었다. 장경순은 '사람이 살고싶어지면 이렇게 무서움을 느끼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경순은 권천식을 어둠 속에 남 겨둔 채공수단 정문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수단 정문에서 초병이 '아무도 못들어갑니다'하고 막았다.
 
 '이 사람아, 장성이 못들어간다니 말이 되는가. 단장을 대.'.
 
 초병이 박치옥 단장을 전화로 연결시켜 주어서 비로소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장경순이 단장실로 들어가보니 육본 특전감 장호진 준장이 와 있었다. 그는 '공수단의 출동을 저지하라'는 장도영 총장의 지시를 받고 감독차 와 있었다. 장호진 장군은 장경순과는 일제시대 학병동기였다. 장 경순은 그를 바깥으로 불러냈다.
 
 '장 장군, 내가 일일이 설명해야 알겠소? 이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 소? 협조하시오.' '알았어. 그런데 성공해야 할 텐데.'.
 
 두 장 장군이 단장실로 돌아가니 박치옥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상대방은 장도영 총장이었다. 박치옥 단장이 '장경순 장군도 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니 장도영이 '바꾸라'고 한 듯했다. 장 경순과 장도영은 동양대학 동창으로서 친밀한 사이였다. 전화기를 드니 장도영이 '귀관, 뭐하러 거기 갔소. 지금도 늦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호 통을 쳤다.
 
 '각하, 지금 어디 계십니까? 만나뵈어야겠습니다.' '돌아가란 말이야!'.
 
 장도영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한편 6관구 사령부의 정문을 통과한 박정희는 본부건물로 들어오다가 육군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연락을 받고 진해에서 올라온 윤필용 중령을 만났다. 박 장군은 '먼 데서 왔군'하며 악수를 했다. 참모장실에서 전화 통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던 김재춘 대령은 박정희에게 '수색(30사단) 과 부평(33사단)이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참모장실에 모 인 혁명파 장교들은 스무 명을 넘었다.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서성대고 있었다. 이 때가 자정을 한 15분쯤 넘긴 시점이었다.
 
 박정희는 6관구에 오기로 약속한 시간인 밤 11시보다 한 시간쯤 늦게 나타난 셈이었다. 달력은 이제 5월16일로 넘어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착착 진행되는 줄 알았던 거사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지휘소여야 할 6관구 사령부는 혼란상태에 빠져있었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박정희는 일생일대의 위기 를 맞고 있었다. 아직 그의 수중엔 일개 대대 규모의 병력도 없었다. 장 도영 총장은이미 쿠데타 저지에 나서고 있었다. 옆 방에는 이광선 헌병차 감이 혁명가담 장교들을 조사하려고 헌병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5월16일 이 시작된 영시의 상황은 암담했다.
 
 이 순간 6관구 사령부엔 피아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김재춘 대령의 활약 때문이었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데다가 기가 센 김재춘은 박정희에게 거사누설 의 급보를 올린 뒤 사령부로 왔었다.
 
 김재춘이 사령부로 들어가자마자 서종철 6관구 사령관이 전화를 걸어 왔다. 서 소장은 육본 헌병감실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김재춘의 기억 에 따르면 그는 대강 이런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참모장, 어떻게 된 거요? 지금 우리 부대내에서 쿠데타 음모가 진행 되고 있다고 하는데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있단 말이오. 헌병 중대 를 보냈으니 곧 도착할 헌병차감과 상의하여 반란군을 색출, 체포하시 오.모두들 참모장의 지휘를 받으라고 명령했소.' '예,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서종철 소장은 반란군의 핵심인 김재춘에게 반란군을 소탕하라는 명 령을 내린 셈이다. 그 때까지도 서종철 소장은 참모장이 박정희 소장 그룹의 중심인물임을 모르고 있었다. 김재춘은 이날 밤 그가 성공적으로 6 관구의 혼란사태를 충돌없이 수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사령관으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데다가 양쪽으로부터 다같이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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