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군단 포병단의 당황
해병대와 공수단 병력이 한강인도교의 남단인 노량진에 도착한 시각,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육군본부가 아닌 서울지구 방첩대 사무실(조선 호텔건너편)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취한 조치를 회고록에서 이런 요지로 설명했다.
<나는 김재춘 대령과 15일 저녁부터 16일 새벽까지 여러 차례에 걸 쳐 통화를 나눴다. 그때마다 김 대령은 내 명령대로 6관구 사령부에 집 결한 장교들을 해산시켰으며 관구소속 예비사단들의 출동도 엄금시켰다 고 보고해왔다. 나는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나는 김재춘 대령이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김 대령의 '여기는 조용하다'는 말을 믿고서 안심했다. 그러나 일부 소수 부대라도 서울로 들어오려 하지 않을까 해서 육본에 비상대기시켜 둔헌병 50명을 한강교로 급파, 미군 차량을 제외한 모든 육군차량의 통 과를 엄금시키라고 명령했다. 조금 뒤 충격적인 보고가 올라왔다. 헌병 들이 한강다리 위에서 해병여단과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도영 총장은 새벽3시30분이 넘어서까지도 해병대와 공수단이 몰려 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김재춘의 허위보고에 속았고 자 신이 박정희에게 '집에 돌아가서 잠이나 자시오'라고 지시한 것이 지켜 지고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당시 장도영을 관찰하고 있었던 부하들의 증언은 다르다. 육본 직할 제15범죄수사대(CID)의 방자명 부대장은 자정무렵 수색의 30사단으로 달려가 반란 주모자인 작전참모 이백일 중령을 야반도주하게 하고 상황 을 평정한 뒤 장도영한테 돌아와 대기중이었다. 이때 해병대가 공수단 과 함께 한강교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장도영 은 직접 전화통을 들고는 육본직할 헌병중대장 김석률 대위를 부르더란 것이다.
'병력50명을 카빈으로 무장하고 GMC트럭 여덟 대를 동원하여 한강다 리를 봉쇄하라.'.
장도영은 곁에 있던 방자명 중령에게 지시했다.
'귀관도 육본에 가서 헌병대의 배치를 지휘, 감독하고 중간보고하라.'.
방자명은 소수 병력으로 대병력을 상대한다는 것이 불안하여 이렇게 건의했다고 한다.
'각하, 남산엔 1개 공병단이 주둔하고 있고 각 헌병대는 중화기를 갖 고 있습니다.'.
장도영은 '아니 됐어, 우선 그것으로 될 거야'라고 말한 뒤 다른 일 에 관심을 돌리더라고 한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이희영 서울방첩대 대 장도 방자명이 그런 건의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확인해주었다. 장도 영 총장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제대로 쓰지 않고 일부러 소수 병력 을 투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때 공병단 병력과 기관총을 동원하 여 한강다리위에 몰려 있는 해병대와 공수단을 공격했더라면 서울 진입 을 저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방자명 중령은 한강 다리에 트럭을 팔자로 놓는 차량 바리케이드를 3중으로 쳤다. 방 중령과 김 대위는 김포가도쪽을 바라보았으나 근접물 체는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방 중령은 '김 대위, 필요하면 발포하시오' 라고 명령한 뒤 서울방첩부대로 돌아와 장도영 총장에게 보고했다. 이 때 장도영은 전투복차림으로 갈아입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있었다. 현석호 국방장관과 육본의 주요 참모들도 나와 있었다. 방자명은 다시 육본으로 갔다. 연병장에 병력이 꽉 차 있는 게 아닌가. 장병들의 부대 표시를 보니 6군단 포병단이었다. 방자명은 '진압군이 들어왔구나'하고 안심했다.
5·16혁명사를 자세히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날 서울시내로 처 음 들어온 부대가 해병대와 공수단이라고 오해한다. 사실은 그들이 한 강다리를 넘기도 전인 새벽 3시30분에 문재준 대령이 지휘하는 6군단 포병단의 전 병력이 육본에 진주했던 것이다. 포병단장(문재준) 이하 5개 대대장 전원이 쿠데타에 가담하고 있었으므로 이 부대는 차질없이 의정부-미아리를 거쳐 새벽에 점령 목표지에 도착했다. 장교 68명, 사 병 1천2백83명이 무장한 부대였다. 문재준 사령관은 이틀 전 확정된 계 획대로 서울 시내가 혁명군에 의하여 이미 점령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왔는데 너무나도 조용한 데 경악했다.
'새벽 3시에 서울시내로 들어와서 주요 목표물을 점령하기로 했는데 이거 우리가 박정희 장군한테 속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 다. 문재준 대령은 6군단 작전참모 홍종철 대령과 참모들을 데리고 혁 명군 지휘소로 결정된 남산으로 가 보았다. 거기에도 인적이 없었다.그 런데도 6군단 포병단 병력을 실은 트럭들은 새벽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육본으로 계속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문재준의 담배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담배를 거꾸로 피워 물기도 했다.
'오늘이 확실히 16일이야? 맞어?' '틀림이 없습니다.'.
'뭐가 잘못된 거 아냐?' '그렇다고 도로 물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젠 다 폭로된 겁니다. 이건훈련이었다고 해서 돌아갈 수도 없고요.'.
이런 대책없는 대화를 나누고 육본으로 돌아온 문재준 대령은 작전 참모부장 송석하 소장과 맞딱뜨렸다. 송 소장은 서울지구 방첩대에서 장도영 총장을 만나고 육본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귀관, 어디서 출동한 병력인가.' '육본 지시에 의해서 출동한 6군단 포병단입니다.'.
'잘 됐다. 지금 해병대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한강으로 가서 진압하라.' '알겠습니다.'.
문재준은 기겁을 하고 돌아와서 참모들과 상의했다. 신윤창 대대장은 '당장 잡아넣어버리자'고 했으나 문재준은 '좀 두고보자'고 했다. 작 전참모부장이 주번사령을 보내 병력 배치상황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신 윤창은 주번사령에게 쏘아붙였다.
'여보, 우리가 왜 출동했는지 아오? 군사혁명하러 왔소. 여러 말 말고 가시오.'.
이때 한강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6군단 포병단 지휘부의 초조와 불안 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