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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인쇄소
 광명인쇄소
 
 5월16일 새벽, 한강에서 총성이 울리자 신응균 국방차관보는 단신으 로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김동하 예비역 해병소장을 만나 그의 지프를 타고 박정희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박정희가 혁명의 당위성을 설명하자 신응균 예비역 중장은 '혁명은 시기상조지 않소'라고 했다고 한다('5·16 혁명실기'). 박정희는 쌀쌀하게 그 자리를 떠나면서 동행하는 한웅진 준장에게 '시기상조래. 처치해버릴까'하고 농담을 했다.
 
 박정희는 한강 다리를 건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자 작전계획을 변경했다. 33사단병 력으로 남산의 중앙방송국 건물을 점령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 부대는 정보누설로 출동이 늦어졌다. 박정희는 공수단으로 하여금 방송국을 점령하도록 시켰다. 해병대와 공수단은 한강다리를 건너 용산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용산역전에서 해병대 선두부대는 맞은 편에서 오는 6군단 포병단 병력과 만났다. 포병들은 육본을 점령한 뒤였다. 박정희 차는 육본으로 가지 않고 바로 남산으로 달렸다.
 
 이날 새벽 중앙방송국 숙직실에선 박종세 아나운서가 때묻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고 있었다. 새벽 3시를 넘은 시각, 숙직하던 수위가 오더니 깨웠다.
 
 '아까부터 총소리가 들리는데요.'.
 
 박종세와 수위가 옷을 갈아 입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헌병 장교와 맞닥뜨렸다. 육본으로부터 방송국을 경비하라는 명령을 받고 배 치된 헌병이었다.
 
 '김포방면에서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빨갱이인 듯합니다. 제1 점령목표가 방송국이란 정보가 있어서 우리가 지키고 있습니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그 헌병장교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른 부서의 숙직원들이 모여 앉아 불안에 떨고 있었다. 새벽 4시20분쯤, 갑 자기 헌병들이 트럭에 올라타더니 사라져버렸다. 조금 있으니 총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현관을 통해서 안으 로 몰려들었다. 숙직원들은 이 방, 저 방의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다.박 정희 소장이 도착한것은 이때였다. 한웅진 준장은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공수부대원들에게 말했다.
 
 '빨리 아나운서와 직원들을 찾아서 데리고 와!'.
 
 한웅진은 박정희를 향해서 '각하, 방송문을 가지고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종필이가 가지고 오게 되어 있는데….'.
 
 박정희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때 이석제 중령 일행이 들어오 면서 박정희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장교들이 박정희 주변으로 모여들 었다. 윤태일 준장이 팔뚝 시계를 보니 오전 5시20분 전이었다. 그는 '이거 안되겠는데요'라고 했고 박정희는 '같이 갑시다. 한 장군, 여기 점령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후 지프를 타고 광명인쇄소가 있는 안국동 으로 달렸다.
 
 이날 밤을 김종필은 광명인쇄소에서 피 말리는 초조 속에 보냈다.밤 12시에 혁명공약 등 문안을 가지고 이낙선 소령과 함께 인쇄소에 도착 하니 이학수 사장과 김용태(공화당 원내총무 역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학수는 문선공들에게 김종필이 가져온원고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 한다.
 
 '놀라지 말고 오자 없도록 침착하게 일하게. 저 사람들은 군인인데 무기를 들고 와서 강제로 시키니 나도 어쩔 수 없어. 부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일 잘하게. 만일의 경우에는 사장이 강제로 시켜서 했다고 하면 괜찮을거야.'.
 
 문안을 읽어본 문선공들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부들부들 떨기 시작 했다.
 
 이학수는 거듭해서 '내가 모든 책임을 질테니 걱정말라'고 달랬다. 김종필도 공장장을 불러 타일렀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가 감금해놓고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일을 시 켰다고 말하시오.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지는 거요.'.
 
 공장장이 문안을 읽어보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올 것이 왔습니다. 합시다.'.
 
 이 말을 들은 김종필은 '아, 이 일은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고 한다. 김종필 총리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층에 올라가서 인쇄공을 감시하면서 한편으로는 바깥을 내 려다보고 있었어요. 이날 밤은 무사히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밤 두시쯤 문제가 생긴 거예요. 내가 내려다보니 순찰하던 경찰관 두 명이 공장 문앞에 서는 겁니다. 여태껏 야간 인쇄를 안하다가 덜커덕거리니까 순 경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집은 밤에 인쇄하지는 않는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 니 한 사람이 문에 손을 대는겁니다. 나는 권총을 빼들었습니다. 그리 고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습니다.
 
 '제발 안으로 들어오지 말아라. 들어오면 내가 쏠 수밖에 없다. 제 발 들어오지 말아라'. 그 순간 문을 잡았던 순경이 손을 스르르 내리더 니 발길을 돌리는 겁니다. '잔업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 다. 얼마나 고마운지….'.
 
 인쇄소에서 김종필은 6관구 사령부와 육본으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고 있었다. 박정희를 6관구로 떠나보낼 때 거사비밀이 탄로난 것 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뒷일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밤 2시까지는 그럭저럭 통화가 되었는데 그 뒤로는 장교들과 영 이어지지 않았다. 신 당동 박정희 집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니 더욱 불안해졌다. 이학 수사장은 '어떻게 된 일이오'하면서 같이 걱정을 했다. 김종필은 '안심 하고 기다려봅시다'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3시를 넘어서 통금중인 거리에서 차소리가 들려왔다. 한 대가 아니고 여러 대의 차량 들이 굴러가는 소리였다.
 
 김종필이 뛰어나갔다. 조금 있다가 뛰어들어온 김종필은 싱글벙글했 다.
 
 '6군단 포병단이 1초도 틀리지 않게 정시에 출동했소. 지금 안국동 로터리를 지나가고 있어.'.
 
 새벽5시 직전,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윤태일 준장과 박순권 중령을 데리고 박정희 소장이 나타났다. 김종필이 2층에서 뛰어내려갔 다. 이낙선은 '각하…'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글썽했다. 박정희는 덤덤하게 인쇄된 네댓 장의 혁명공약문을 받아 훑어보더니 '방송국으로 가 자'고 했다. 김종필은 이낙선에게 인쇄 일을 맡기고 처삼촌의 지프에 동승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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