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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총리의 수도원행
 장면총리의 수도원행
 
 한강 인도교를 저지하던 트럭 바리케이드가 최종적으로 뚫린 것은 5월 16일 4시15분경이었다. 카빈으로만 무장한 헌병 50명을 지휘하고 있던 김 석률 대위는 서울방첩대에 위치하고 있던 장도영 총장에게 수시로 보고를 올렸다. 장도영은 '가능한 한 도강을 저지할 것이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한강의 북쪽 언덕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김 대위는 한강인도 교 북단, 즉 용산쪽의 저지선에서 철수한 뒤 장도영에게 '해병대에 이어 공수단도 다리를 건너 육본쪽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장도영은 이때 비로소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피 신을 권한다. 장면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맨 처음 장도영의 전화를 받은 것은 새벽 2시쯤이었다. 장면은 반도호텔 809호실을 숙소로 쓰고 있었 다.옆방인 808호실은 경호실이었다. 경호대장 조인원 경감이 총리를 깨워 장도영의 전화를 바꾸어주었다. '30사단에서 장난을 치려는 것을 막아놓 았고 해병대와 공수부대를 한강에서 저지시키고 있다'는 요지의 보고였다 고한다. 장도영은 '아무 염려마시고 그저 그런 일이 있다는 것만 알고 계 십시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한 주일 전에 내가 말한 그것 아닌가.' '아니, 별것 아닙니다. 염려마시고 제게 맡겨두십시오.'.
 
 '염려말라는 말만 하지 말고 내게 와줘. 와서 직접 자세히 보고해. 매 그루더 사령관에게도 보고했나?' '예, 했습니다.'.
 
 '그래, 좀 왔다 가게.' '예, 가겠습니다.'.
 
 장도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방첩부대에서 장도영의 지휘를 지켜보고 있던 현석호 국방장관은 군의 작전에 간여할 입장이 아니었으나 총장이 영 못미더웠다고 한다. '윤보선 대통령에게 보고 드렸느냐'고 물 으니 장 총장은 '아직 안 드렸다'고 해서 '즉각 전화를 걸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매그루더 사령관에겐 자신이 직접 보고하고 싶었으나 영어가 서 툴러 장도영에게 시켰다. 옆에서 들으니 매그루더한테도 '대수롭지 않은 소요'정도로 보고하는 듯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새벽4시쯤 곤한 잠 속에서 일어났다. 이재항 비서실 장이 깨운 것이다. 대통령이 전화기를 드니 장도영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각하, 지금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헌병을 동원하여 한강다리 에서 저지선을 쳐보았으나 중과부적으로 저지선이 무너지고 이미 서울로 들어왔는데 쉽게 진압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정부 인사들이 은신하고 있는 중이오니 대통령 각하께서도 신변의 안전을 배려해주십시오.'.
 
 윤보선 대통령은 노모와 처자들만 일단 일가집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청와대를 지키기로 했다. 현석호는 서울방첩대를 나와서 소공로를 건너 반도호텔로 갔다. 8층 총리방에서는 이태희 검찰총장과 조인원 경호대장 등 몇 사람들이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 현 장관이로구만.'.
 
 장면 총리는 반가운 표정이었다.
 
 '장 박사님, 사태가 여의치 않으니 일단 피하셔야겠습니다. 어디로 가 시겠습니까.'.
 
 이태희 총장이 '제 집으로 모시겠습니다'고 나섰다. 한강쪽에서 총성 이 들려오고 있었다. 호텔 아래로 내려가 이태희 총장의 승용차를 타려고 했는데 운전사가 보이지 않았다. 총성에 놀라 달아난 듯했다. 한 경호원 이길 건너편에 있는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가 철문을 두드렸다. 아무 응답 이 없었다. 이때 망을 보던 경호원이 '군인들이 온다'고 소리쳤다. 장면 총리 부부는 서둘러 전용차에 몸을 실었다. 이때 총리의 안경이 떨어져 깨어졌다. 차는 청진동 뒷골목으로 해서 중학동 한국일보 건너편의 미국 대사관 직원 사택지 앞에 머물렀다. 장면은 문을 두드렸다.
 
 <어떤 엄명이 내려졌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길에서 방황할 수도 없어 일단 안전한 곳에서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몸을 피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작정은 없었다. 잠시 피신 해 정세를 보기 위해서 아무도 짐작 못할 혜화동의 수도원으로 가보았다. 내자가 전부터 친교가 있던 원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허락을 받아 방하나 를 얻었다.(회고록)> 목격자에 의하면 혜화동 로터리에 있던 카르멜 수녀 원으로 들어온 장면 총리 부부는 몹시 지친 표정이었다. 안경을 끼지 않 은 얼굴이었기에 더욱 고통스럽게 보였으리라. 원장수녀인 마리 클레(프 랑스인)가 황급히 총리 부부를 부속건물내 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장면 총리는 기도를 드리더라고 한다.
 
 장도영 총장이 이날 밤의 사태발전을 장면 총리에게 정직하게 보고했 더라면 장면 총리는 미8군 영내나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하여 신변의 안전 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쿠데타군에 대한 진압을 지 휘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장도영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고했다가, 또 장면 총리에게 '가서 보고하겠다'고 해놓고 나타나지 않 았다.
 
 그 동안 총리를 기다리게 해두었다가 결국 총리가 경황없이 수녀원으 로 피신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장면 총리가 한국일보 건너편 미국대사관 사택지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 미국CIA 서울지부장 피어 드 실버의 집이 있었다. 장면 총리는 2년 전 부통령 시절부터 자주 이 집에 초청을 받아 와서 식 사를 하고 가곤 했다. 그러나 이 운명의 새벽, 절친한 사이인 실버와 장면의 길은 서로 엇갈렸다. 실버는 새벽에 미국 대사관의 CIA 당직요원으 로부터 '한강에서 총성이 들린다'는 보고를 받고 집을 나와서 대사관으로 달렸다.
 
 이미 무장한 쿠데타군이 거리를 통제하면서 신분을 확인하고 있었다. 광화문 거리엔 기관총이 설치되고 있었다. 실버는 세단을 몰고 있었는데 여러 번 검문을 받았다. 그 사이 장면 총리가 사택지의 문을 두드 린 것이었다. 실버는 회고록에서 '그는 정문이 닫힌 뒤에 도착했으며 아 무렇게나 옷을 주워 입은 모습으로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 지못했다'고 썼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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