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다리에서
해병여단의 선두인 제2중대가 한강 인도교로 진입했을 때 트럭 두 대를 여덟 팔자로 배치한 헌병들의 제지를 받는다. 중대장 이준섭 대 위는 참모총장도 이번 혁명을 지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헌병들이 총장의 명령을 받아 자신들을 환영하러 나온 줄 알고 헌병 중대장 김석률 중대장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그런데 김 대위는 '우리는 총장님의 명령에 따라 어떤 부대의 통과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이 보고를 전해들은 오정근 대대장은 김윤근 여단 장에게 뛰어갔다. 오 중령도 참모총장이 혁명을 지지하고 있다고 알 고있었으므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고 따지듯 말했다.
김윤근은 박정희 소장한테 들은 대로 설명해준 뒤 '해병대만 가지 고 혁명을 강행하기로 했으니 헌병이 계속해서 막으면 밀어버리시오' 라고 명령했다. 오정근 중령은 '알았습니다. 밀어버리겠습니다'하고 시원하게 복창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오정근 중령은 원래부터 해병대 단독거사를 꾀했던 이였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주저할 이유가 적었다.
그뒤 앞쪽에서 총성이 들려왔고 곧 조용해지더니 오정근 중령이 무전기로 보고했다.
'헌병을 쫓아버리고 지금 저지선을 통과해서 인도교로 들어갑니다.'.
한강인도교 남단에 설치한 트럭 바리케이드를 넘는 총격전에서 헌 병 3명, 이준섭 대위 등 해병 6명이 부상했다. 해병대 후미쪽에 붙어 있던 김윤근 여단장이 탄 지프도 인도교로 들어갔다. 바리케이드로 놓아둔 트럭은 엔진이 꺼져 있어 치우는 데 시간이 걸릴 듯했다. 김 윤근 여단장은 지프에서 내렸다. 중지도쪽에서 또 총성이 들렸다. 오 정근 중령이 달려왔다.
'중지도에 제2 저지선이 있고 헌병이 저항합니다. 혹시 이 다리에 폭파장치를 해두었을지 모르니 병력을 일단 노량진쪽으로 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폭파장치가 그리 쉽게 되겠소. 걱정 말고 밀어붙이시오. 그런데 저 저지선의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에 거슬려요. 저것부터 깨부 숴버려요.'.
오정근 중령은 중지도 지점에 설치된 제2 저지선의 헤드라이트를 겨냥해서 일제 사격을 하게 했다. 불빛이 꺼지자 제2 저지선도 돌파 되었다. 김윤근 준장은 한강 인도교의 반을 지나 이제는 용산쪽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서서히 움직이던 해병대 차량종대는 다시 정지했 다. 오정근 중령이 다시 달려왔다.
'큰 일입니다. 또 다른 저지선이 있습니다.' '큰 일은 무슨 큰 일이오. 저지선이 있으면 돌파해버려야지.' 그러나 김윤근도 앞으로 저지선을 몇 개나 더 돌파해야 할지를 생 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날은 이미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아직 한강다 리에서 우물거리고 있으니…. 실패라면 살아서 욕을 보느니 자결해버 려야지'하는 생각을 하니 아내와 세 아이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 러다가 트럭을 탄 장병들을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다. 내가 살아 있어야 아무것도 모르고 출동한 장병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증언해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때 박정희도 차에서 내려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고 있었다. 그 를 호위하던 장교들 가운데 한웅진 준장과 이석제 중령의 증언을 통 해서 상황을 복원해본다. 박정희 일행은 중지도, 즉 한강다리의 중간 지점을 지나 북쪽으로 걸어갔다. 북단에는 제3의 저지선이 있었다.트 럭 4대를 동원하여 차단벽을 만든 것이다. 트럭들 좌우측에서 헌병들 이 매복하여 총을 쏘고 있었다. 해병들은 상체를 숙이고 뛰어가 저지 선 앞에서 엎드려 응사하고 있었다. 헌병들의 병력이 얼마인지를 알 수가 없었으니 불안감은 더했다. 박정희 소장이 상체를 숙이지도 않 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카빈을 든 이석제 중령이 따랐다. 그는 6·25동란 때 중대장으로 전투한 경험이 생각났다.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 총알이 사람을 피하지, 사람이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경험 칙이 있었다.
전쟁터에서 그런 믿음에 따라 행동하니 부하들이 용감한 중대장이 라고 존경해마지 않았다. 총알을 고개 숙여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이석제와 박정희가 꼿꼿하게 걸어가는데 총알 이 옆으로 쌩쌩거리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김윤근 준장이 박정희에게 뛰어왔다.
'또 다른 저지선이 있습니다. 앞으로 저지선이 몇 개나 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날이 새기 전에 목표 점령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대로 밀어버리시오.'.
박정희의 침착하고 단호한 태도에 김윤근 준장도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해병대가 작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난간에 기대어 담배 를 피워물었다. 이석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각하, 일이 끝내 안되면 각하 바로 옆 말뚝은 제 것입니다.'.
박정희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하나뿐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죽어서 쓰나.'.
잠시 후 박정희는 '이 중령'하고 불렀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제2안대로 합시다.'.
박정희가 생각한 제2안이란 출동한 부대로써 일정한 지역을 점거하 고는 정부와 담판한다는 것이었다. 한웅진은 '박 장군은 총격전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난간을 잡고 물끄러미 강물을 내려다보더니 일본말로 '주사위는 던져졌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나중에 한웅진은 '형님, 그때 강물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박 정희는 '가족들 얼굴이 강물에 떠오르더군'이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이 순간 박정희의 결연한 태도가 흔들리는 장교들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는 증언은 많다. 예기치 않은 저항을 받은 혁명군 장교들 모두가 박정희를 주시하고 있었고 박정희는 그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는 행동을 보였다. 결정적 순간의 이런 결정적 행동이 그 뒤 18년간 단 한 번도 정면도전을 받지 않은 그의 지도력과 권위의 원천이 되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