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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본으로 입성
 육본으로 입성
 
 5월16일 새벽 원주 1군 사령부 이한림 사령관의 숙소. 당번병이 문을 두드렸다.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육군 참모차장 장창국 중장이었다.
 
 '아니, 이 꼭두새벽에 웬일이오?' '쿠데타가 일어났소.'.
 
 '무엇이?' '군사쿠데타 말이오.'.
 
 '주모자가 누구요?' '박정희 소장이오.' '기어코 그가 일을 저질렀군.'.
 
 '지금 상황은 어떻소?' '새벽 3시 조금 지나서 쿠데타 부대가 육군본부에 진입했소.'.
 
 이한림은 20년 친구인 박정희가 쿠데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 었으나 군 상층부와 수사기관이 알아서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적극적 인 저지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가 자신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뉴스에 접한 것이었다. 이한림이 '총구로부터의 권력'에 대한 박정희의 집념과 처음 접한 것은 1946년이었다.
 
 육사2기 생도로서 교육을 받고 있던 박정희는 육사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만군 동기인 이한림과 만났 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남산을 산책했다. 박정희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당시는 조선총독부 관저로 쓰이다가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관저로 쓰 이고 있었다)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림이, 이곳에 포를 설치하고 경무대쪽을 포격한다면 나폴레옹이 파 리소요를 진압할 때 야전포를 쏴서 파리를 제압했던 것과 같이 경무대 장 악은 문제가 없겠지?'.
 
 이한림은 '정희야, 그런 농담하지마. 너는 농담이 지나칠 때가 있어' 라고 입을 막았지만 박정희의 그 말은 뇌리에 오랫동안 남았다. 이한림은 전날 1군 창설 기념식에 참석하러 와서 원주에 머물고 있던 군단장과 사 단장들을 사령관 공관으로 소집했다. 그는 서울의 정변 소식을 들려준 뒤 '즉시 부대로 귀임하여 전선방어에 철저를 기하고 추가지시를 대기하라' 고 명령했다. 군단 예비인 1군단의 임부택 군단장에겐 '반란군 토벌을 위 한 출동준비'를 지시했다. 이한림은 장면 총리와 통화를 하려고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교 3명을 서울로 보내 상황을 알아보고 오라 고 시켰다.
 
 이 순간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미8군 사령부로 들어가 매그루더 사령 관과 요담하고 있었다. 이 날 매그루더가 미 합참으로 보고한 전문에 따 르면 장도영은 아침 6시30분에 매그루더를 찾아왔다고 한다. 이 요담은 매그루더의 요청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매그루더는 새벽 3시 장도영의 첫 전화를 받았었다고 한다. 이때 장도영은 '미군 헌병들을 동 원하여 해병대의 서울 진입을 저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매그루더는 거절 했다.
 
 <장도영 자신은 혁명군과는 무관하지만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 그들과 협상을 하려고 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그는 또 예하부대 지휘관들로부터 혁명을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확약을 받아놓겠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진압군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것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장도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자리에서 매그루더에게 '나는 해병대 를 지휘할 수 없고 육본을 점령한 6군단 포병단도 행정상으로는 육본에 속해 있을 뿐이지 적전행동에 관해서는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 하에 있음 을 상기시켰다'고 했다. 그는 또 '군 내외에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육군 참모총장의 책임과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권한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 었다. 후방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선부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유엔군 사령관의 양해와 협조가 있어야 했다'고 썼다.
 
 아침 7시 직전 박정희는 남산을 출발, 김재춘 6관구 참모장의 지프를 타고 앞뒤로 해병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육본으로 들어갔다. 육본 연병장 엔 혁명군으로 가담한 6군단 포병단 병력이 와 있었다. 간밤에 6관구 사 령부로 들어갈 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서 박정희는 육본으로 당당하게 입성하는 길이었다. 육본 현관 앞에 차가 섰다. 김재춘과 박정희가 내리 는데 한 장교가 헌병들을 배치하면서 '너희들은 여기서 경계를 서다가 반 란군이 들어오면 쏴!'라고 하더란 것이다.
 
 박정희는 그 장교를 보고 '뭘 쏴!'라고 한 마디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박정희는 불안했던지 뒤따 르던 김윤근 해병여단장에게 '김 장군, 해병대를 풀어서 이 건물을 포위 하시오'라고 지시했다. 박정희를 동행한 김재춘의 기억에 따르면 이때 2층 참모총장실에서 내려오던 미 고문단장 하우스 장군과 맞딱뜨렸다고 한다. 하우스 장군은 지휘봉으로 박정희쪽을 가리키면서 영어로 말하는데 영어가 짧은 김재춘은 '제너럴 팩?'이라고 하는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강 짐작으로 '네가 반란군 지휘자 박정희냐?'는 뜻인 것 같았다. 박정 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 길은 이 길뿐이다. 너는 간섭하지 말고 비켜!'.
 
 공격적인 말투에 기가 죽은 하우스 장군은 길을 비켰다. 박정희가 2층 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육본 작전참모부장 송석하 소장이 내려 오다가 마주쳤다. 송석하는 박정희로부터 작전참모부장 자리를 인수받았 다. 육사2기로서 박정희와는 동기였지만 나이는 두 살 위였다. 그는 만주 국봉천군관 학교 5기출신으로서 정일권과 동기여서 박정희의 만군선배에 해당한다. 박정희가 말했다.
 
 '아니, 형님, 쏘긴 뭘 쏩니까.'.
 
 송석하는 조금 전에 자신이 헌병들에게 '앞으로는 출입자를 통제하라' 고 명령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는 박정희의 손을 끌면서 '그런 일 없습 니다. 하여간 올라가서 이야기합시다'라면서 그를 총장실로 안내했다. 송 석하는 '권총은 풀지요'라고 권했다. 박정희는 '그러지요'하면서 권총을 풀어 부관실에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재춘도 따라들어갔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두 사람이 복도로 나와 몇 걸음 옮기는데 장도영이 들어왔 다. 박정희, 김재춘 두 사람은 경례를 올려붙였다. 장도영은 경례도 받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고 박, 김 두 사람도 따라들어갔다. 총장실에서 있었 던 대화를 김재춘은 이렇게 기억한다.
 
 박정희: '저희가 이제 방송도 다 하고 준비를 끝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께서 진두 지휘하셔야죠.'.
 
 장도영: '어쩌자고 병력을 동원해서 육본을 점령하는 거요. 나로서는 지금 아무런 결정을 할 수가 없어요.'.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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