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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뇌부 청와대로
 군수뇌부 청와대로
 
 5월16일 오전 8시30분부터 육본 2층 상황실에선 박정희측 장교들 50여명과 장도영 총장측 참모들 사이에 합동회의가 열렸다. 박정희는 먼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출동할 때는 유서를 쓰고 손톱까지 깎아놓았습니다. 참모총장을 비롯한 여러분께서도 위기에 처한 조국 을 구출하기 위한 우리들의 뜻을 받아들여 혁명완수에 다함께 동참합시다.'.
 
 장도영 총장은 '이번 행동으로 행정부에 충분한 경고를 주었으니 출동부대들은 원위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장교들이 들고 일어났다. 책상을 치고 고함을 지르는 장교들도 있었다. 이미 거기엔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다. 중령이 중장을 윽박지르는 꼴 이었다. 박정희는 장도영에게 '계엄령 선포에 대해선 동의해주십시오' 라고 건의했다. 장도영은 '그 문제는 윤보선 대통령과 상의하여 합법 적인 절차를 밟아서 합시다'라고 했다. 박정희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고 한다('5·16혁명실기').
 
 '혁명 자체가 비법적인 수단인데 무슨 합법적인 절차를 밟는다는 말입니까?'.
 
 장도영 총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혁명파 장교들이 들 고 일어났다.
 
 '처치하자.' '잡아넣어라.'.
 
 6군단 포병단의 대대장 백태하 중령이 권총을 뽑아들고 장도영의 앞을 막았다.
 
 '나가지 못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즉시 태도를 결정하십시오.'.
 
 박정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무질서해 가지고 어떻게 혁명을 하려고 그 래!'.
 
 박정희가 호위하듯이 장도영을 모시고 총장실로 걸어갔다. 문재준 대령은 '총장이 각하를 납치한다'고 소리치면서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빨리 육본을 포위하라.'.
 
 총장실로 들어간 장도영은 박정희에게 '여보, 저런 사람들을 데리 고 무슨 혁명이오?'라고 했다. 이때 박정희를 따라들어온 이석제 중 령이나 섰다. 그는 역사와 법률에 밝은 장교였다.
 
 '각하, 끝내 이 혁명을 반대하신다면 훗날 나라를 지키지 못한 장 군으로 역사적 책임을 지셔야 할 것입니다. 장면 정부는 조선조의 양 반들처럼 주자학에 젖어 공리공론으로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미 혁명군이 서울을 점령했고 장면 총리는 행방불명입니다. 지금 대한민 국은 무정부상태입니다. 혁명군이 혼란을 수습해야 합니다.' '귀관의 생각처럼 문제가 간단하지 않네. 혁명군은 작전 지휘권을 가진 미국의 자존심을 무시했어.'.
 
 장도영은 전혀 납득하지 않았다. 격앙된 이석제는 오른쪽 바지 호 주머니에 넣어둔 권총에 손이 자꾸 가는 것을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장도영이 계엄령 선포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사이 이날 아침 9시 KBS는 군사혁명위원회 장도영 의장 명의로 된 계엄선포문과 포고문 1호를 방송했다. 포고문을 15호까지 작성하여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김종필이 첫 봉투를 개봉한 것이다.
 
 <군사혁명위원회는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단기 4294년 5월 16일 오전 9시 현재로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실시한다. 일 체의 옥내외 집회를 금한다. 국외여행을 금한다. 언론은 사전 검열을 실시한다. 직장포기와 태업을 금한다. 유언비어 날조, 유포를 금한다. 이상의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극형에 처한다. 계엄사령 관 장도영.>.
 
 이 방송이 나간 뒤 한 30분이 흘렀을까, 박정희가 총장실에서 나 오더니 혁명파 장교들에게 '윤보선 대통령을 찾아가서 재가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김재춘과 유원식을 데리고 지프에 올랐다. 장도영 총장은 각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떠났다. 현석호 국방장관은 이때 서울시청 시장실 비서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공수단은 새벽에 현석호 장관과 한통숙 체신부 장관을 붙들어 지금의 플라자 호텔자리 에 있던 체육회 건물 앞에 세워두게 했었다. 장도영 총장이 지나가다 가 이를 보고 박치옥 공수단장에게 '시청안으로 모셔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장도영 총장은 청와대로 올라가면서 박치옥 단장을 다시 찾 아왔다.
 
 <장도영 총장은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서 윤보선 대통령을 만나러 가야겠는데 현석호 장관을 모시고 갈 수 없겠소. 일이 끝나면 다시 보내드리겠소'라며 부탁조로 이야기했다. 혁명의 성공은 장 총장의 위세를 바닥에 떨어뜨려놓았다. 이런 것이 혁명이기도 하다. 미안한 심정이었던 나는 선선히 응했다.>(박치옥 수기).
 
 박치옥은 수개월 전 장도영을 찾아가서 부탁을 해서 공수단장에 임명된 경우이다. 오전 10시 청와대에 국방장관, 3군 참모총장, 그리 고 박정희 소장이 모였다. 윤보선 대통령은 새벽에 장도영의 급보를 받고 일어나선 장면 총리를 찾았으나 연락이 닿질 않았다. 내각책임 제하에서 국군통수권은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에게 있었으나 실제로 일 상적인 지휘는 장관-총장을 통해서 총리가 하고 있었다. 그 국무총리 가 달아나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전혀 준비없이 그 국군통수권을 행사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두 달 전에도 장면 총리에게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해서라도 이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고 권했던 그로서는 '일은 자기들이 벌여놓고 수습은 내가 하게 생겼다'는 심정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접견실과 붙은 대기실에 들어갈 때까지 권총을 차고 있 었다. 비서가 '권총을 풀고 들어가시지요'라고 하니 박정희는 흠칫 했다.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던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박정희가 순간적으로 권총과 떨어지는 데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아직 혁명의 성공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그가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차가운 총구였던 것이다.
 
 윤보선 대통령은 집무 실에서 나와 접견실로 들어가 줄을 서 있던 군 수뇌부 인사들로부터 경례를 받았다. 그때 윤 대통령의 입에서 무심코 새나온 말이 '올 것 이 왔구나'였다. 윤보선은 자신의 회고록에서는 그 뜻이 '온다던 것 이 왔구나'였다고 해명했다. 혁명을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고 '달갑지 않은 일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구나'하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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