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마음으로
신재순이 대통령의 등에서 솟고 있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면서 '각하 정말 괜찮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 '응, 나는 괜찮아'는 그가 이승에 남긴 마지막 육성이 되었다. 지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신재순(41세)은 이 말엔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여기를 빨리 피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 다. 일국의 대통령이시니까 역시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를 더 생각해 주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27일 새벽 김종필이 연락을 받고 청와대에 갔을 때 김계원은 간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실토하면서 '각하께서는 그 상황에서도 여자 아이들 걱정을 하십디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마루로 피해나온 김 실장은 대통령이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을 다 듣고 있었다는 의 미이다.
'각하, 진짜 괜찮습니까?'.
신재순, 심수봉 두 여자가 번갈아 물었다. 이제는 대답이 없었 다. 대통령의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정보부장 의전비서관 박흥주대령은 이기주 유성옥과 함께 대통령 경호원들을 죽이기 위해서 주방 안으로 집중사격을 가한 뒤 안이 조 용해지자 나동 건물을 오른편으로 돌아서 현관 앞으로 뛰어갔다. 어 두운 잔디밭에서 흰 와이셔츠 차림의 김재규가 황급하게 뭔가를 작 동시키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구부린 자세로 양손을 비비는것 같 았다. 불발된 권총의 노리쇠를 앞뒤로 진퇴시키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가간 박흥주대령은 '박 비서관입니다'라고 하면서 김재규 의 두 팔을 잡으려고 했다. 김재규는 박대령의 손부터 보았는데 총 이 없었다. 그는 팔꿈치로 박대령을 밀고는 다시 현관안으로 뛰어들 어갔다. 현관에는 위에 달려 앞뒤로 흔들거리는 쪽문이 붙어 있었 다. 박흥주가 그 쪽문 사이로 보니 안쪽 마루에서 양복 상의를 벗은 김계원 실장이 안방에서 나와 후다닥 뛰는 것이었다. 황급히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때 김재규는 차지철이 권총을 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간 마음이 급한게 아니었다. 고장난 권총을 고치지도 못하 고 현관에서 마루로 다시 뛰어들어가는데 플래시를 든 박선호의전과 장과 마주쳤다. 박과장은 대기실에서 두 경호관을 사살하고 마루로 나와 있었다. 그의 오른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김재규는 들고 있던 자신의 권총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박선호의 권총을 낚아채더 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직전 차 실장이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경호원, 경호원'하면서 문쪽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차지철이 흘리는 피가 오른쪽 벽 아래 를 따라서 선을 그렸다. 차지철이 문으로 뛰어나가려는 찰나에 권총 을 들고 들어오는 김재규와 딱 맞서게 되었다. 김재규가 박선호로부 터 받아든 38구경 리벌버 5연발권총에는 세발이 장전되어 있었다.원 래 다섯발이 장전되어 있었는데 박선호가 두발을 쏘았던 것이다. 차 지철은 안쪽 병풍 옆에 있던 장식용 문갑을 방패처럼 치켜들었다.
'김 부장, 김 부장.'.
차지철은 애원하고 있었다. 그는 문갑을 앞세우고 김재규를 향해 덤벼들었다. 김재규는 차실장의 가슴을 향해서 한발을 발사했다. 탄 도검사 결과에 따르면 피격 당시 차지철은 문갑을 들고 자세를 낮추 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오른쪽 가슴 상부에서 들어간 총탄은 허파 부 위를 지나 왼쪽 등 아래로진행하다가 몸속에 멈추었다(육군과학수사 연구소법의과장 정상우소령의 사체검안서에 따르면 이 제2탄이 치명 상으로서 혈흉에 의한 호흡부전과 심장부전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 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이게 사실이라면 한 20여분 뒤에 일어난 김태원에 의한 두 발의 총격은 확인사살이 아니라 이미 죽었 거나 죽을 사람에 대한 사격이란 뜻이 된다).
차실장은잡고 있던 문 갑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문갑 속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졌다. 이때 심수봉이 박정희 곁을 떠나 방안을 뛰쳐나 갔다.
김재규는 다음 순간에 벌어진 상황을 1979년11월8일에 작성한 제2차 자필진술조서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차 실장을 거꾸러뜨리고 앞을 보니 대통령은 여자의 무릎에 머 리를 대고있어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서 대통령이 있는 데로 가자 거 기에 앉아 있던 여자가 본인의 얼굴을 쳐다보며 공포에 떠는 눈초리 로 보고있어 총을 대통령 머리에서 약50센티미터까지 가까이 대고 1 발을 발사하여 대통령을 즉사시키고 나온 것이 기억이 되며…>.
제2탄은 박정희의 오른쪽 귀 위로 들어가 뇌수를 관통하고 콧잔 등까지 나와서 살속에서 멈추었다. 이것이 치명상이 되었지만 즉사는 아니고 아직 생명은 붙어 있었다. 끝까지 대통령 곁을 지킨 신재순은 김재규가 방에 들어올 때 발밑으로 푹 파인 아래 쪽으로 숨었다가 차 지철을 쏘는 총성을 듣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박정희를 향해서 다가오는 김재규와 눈이 마주쳤다.신재순은 지금도 '그것은 인간의 눈 이 아니라 미친 동물의 눈이었다'고기억한다. 그녀는 김재규가 박정 희의 머리에 총을 갖다대었을 때는 '이제는 나도 죽는구나'하고 후다 닥 일어났다. 실내 화장실을 향해서 뛰는 그녀의 등뒤에서 총성.귀가 멍멍하고 잠깐 정신이 나갔다가 깨어보니 주위가 조용했다.방안은 화 약냄새로 자욱했다. 신양은 실내 화장실 안에서 문을 잠그고도 손잡 이를 꼭 잡고 있었다 . 김재규가 박정희의 머리를 향해 쏜 총탄은 이 5연발 리벌버의 네번째 총탄이었다.
김계원은 김재규가 차실장과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나올 때 까지 마루에 서 있었다. 이 마루와 만찬장은 붙어있고 마루에서는 열 려 있던 문을 통해서 방안에서 김재규가 차실장과 대통령을 쏘는것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김재규와 그 부하들이 총질을 해대는 가운데서 무장하지 않은 김계원이 취한 피신행동을 어느 정도 비판할수 있을지 는 쟁점으로 남는다.
김계원은 '낭하에 나가서 불을 켜려고 했다. 대 기실,주방, 만찬장 사이의 중간지점에 있는 화장실 입구에 머리를 대 고 멍하니 서있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김재규가 다시 방으로 들 어가는 것은 못 보았고 전깃불이 다시 켜지고 방안에서 '총성과 싸우 는 소리가 나고 쾅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나고, 내가 방안으로 들어가 려는데 나오는 김재규와 마주쳤다'는 것이다.
마루에서 두 사람이 스치면서 나눈 대화에 대해서 김재규는 합수 부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1979년11월8일 2차자필진술조서).
[본인: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보안 유지를 철 저히 하십시오. 김계원: 뭐라고 하지. 본인: 각하께서 과로로 졸도 했다고 하든지 적당히 하십시오. 김계원: 알았어.].
김계원은 법정에서 '그때 김재규가 총을 들고 살기가 등등하여 그 장소를 모면하기 위하여 '알았어'라고 한 것뿐이다'라고 증언했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