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묶인 미군
매그루더 미8군 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자신의 지휘권이 무시 되어버린 데 대하여 충격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부대의 반란을 허용했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가장 큰 실패였다. 매그루더가 윤보선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진압을 요청한 것도 자신의 떨어진 권위를 회복하겠다는 뜻이었다. 윤보선은 그러나 '반란군의 열배나 되는 진압군을 동원하면 쉽게 수습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쿠데타군 3천6백명은 죽기로 하고 나온 사람들인데 한 사람의 반란군이 한 사람의 진압군을 죽인다고 해도 3천6백명이 전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우리끼리 이런 유혈사태를 벌이는 사이 에 북괴군이 쳐내려오면 어떻게 합니까.'.
이날 줄곧 윤보선의 뇌리를 억누른 것은 쿠데타군과 진압군의 대치가 내전으로 발전하여 북한의 남침을 초래할 위험성이었다.그 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분단국에서는 하나의 국군, 합심된 국토방위의 간성이 생명 선이다. 나는 이를 분열시키지 않았다.'.
매그루더가 윤 대통령으로부터 진압명령을 끝내 받지 못하고 먼저 돌아간 뒤 대통령과 그린 대리대사는 청와대 식당에서 점심 을 함께 하면서 논의를 계속했다. 그린은 그 점심이 '쓸쓸하고 씁 쓸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고 최근에 회고했다. 이 자리에서도 그린 대사는 진압명령을 내려주도록 윤보선을 계속해서 설득했다.
'이 쿠데타가 성공하면 한국은 아마도 장기간 군사통치를 겪게 될 것입니다. 미국으로서는 합헌정부만 지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군 사혁명을 지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윤보선은 뼈아픈 반문을 던졌다.
'나도 군사혁명을 지지하지는 않소. 수습방법이 대사와 다를뿐 이오. 그 문제를 떠나서 대사는 지금 미국정부는 합헌적인 방법만 지지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작년 4·19혁명의 경우 그것이 합법적 이어서 지지한 건가요?'.
이 역습에 그린 대사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각자의 계 산과 신념은 서로 달랐지만 5월16일 이날 박정희 소장과 윤보선 대통령은 미국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점에선 보조가 맞았다.
한미관계에서 이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미국은 이 노반공투사에 대해 일종의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 은 이승만이 자주노선을 선택하여 단독 북진이라도 하여 미국을 다시 전장으로 끌고갈 경우에 대비하여 한국군을 자기 편으로 묶 어두려고 했다. 한국군 지휘부를 친미화하여 유사시엔 한국 대통 령이 아닌, 작전지휘권을 쥔 미군의 지시를 따르도록 시도했던 것 이다. 주한 미군사령관은 한국군 육군 참모총장의 임명에 즈음하 여 항상 발언권을 행사해왔다. 장도영 총장의 임명에 있어서도 매 그루더의 동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군에선 장성급 이상이 되면 미군의 눈치를 보고 사고방식도 상당히 미국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박정희-김종필로 대표되는 혁명군의 장교들은 그런 친미파가 아니었다. 매그루더로서는 상대하기가 거북한 존재였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장교들이었을 뿐 아니라 문화가 달랐다. 혁 명군 장교들은 영어를 좀 한다고 미군 장성들과 친하게 지내는 상 관들을 경멸해온 사람들이었다.
4·19혁명 때 미국 정부는 친미적인 군 상층부, 언론 및 야당 을 이용하여 이승만 정부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으나 5·16 쿠데타가 발생하자 상황을 조종할 수 있는 지렛대를 놓쳐버린 것 이다. 친미적인 장면 총리는 잠적해버렸고 믿었던 장도영 육군 참 모총장은 진압군의 동원에 미온적이었으며 윤보선 대통령까지도 냉담한 반응이었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잡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5·16 이후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권을 한국에 서 만들어낼 힘을 상실한다(그 대신 일단 성립된 정권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영향력은 유지하고 있다).
윤보선-매그루더-그린 요담은 5·16을 성공시킨 가장 중요한 계기였다. 이 회담에서 윤보선이 취한 태도에 대한 미국측 기록으 로는 5월17일 체스터보울즈 미 국무차관이 라오스 문제를 논의하 는 국제회의에 참석차 제네바에 가 있던 딘 러스크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가 있다.
<윤대통령은 (청와대 요담에서) '장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과 불만족은 확산되었고 부정은 광범하고 정부의 상부층까지 오염시키고 있으며 한국은 강력한 지도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도 장면은 그런 지도력을 제공하는 데 무능했다'고 지적했다. 윤 보선은 국회 내외의 인물들을 망라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매그루더 사령관은 5월17일 합참의장에게 보고한 전문에서 윤 보선의 의도를 이렇게 분석했다.
<윤 대통령은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립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쿠데타가 정적인 장면 총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장 면을 교체하고 싶어하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법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미국측은 윤보선이 진압명령을 내리는 데 반대한 것을 그의 반 장면 성향 및 정치적 야심과 결부시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16일 늦은 밤 미 합참의장 렘니처 대장은 매그루더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급전을 보냈다. 렘니처는 '나는 지금 막 백악관에서 열렸던 대책회의에 참석했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이 회의에서는 16일 정오(워싱턴 현지시각)에 있을 백악관 대변인 샐린저의 정례 기자 브리핑에서 한국 쿠데타에 대해서 어떤 논평을 할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렘니처는 '케네디 대통령은 매그 루더와 그린이 발표한 성명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가'란 질문이 나올 경우 이런 답변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올렸다고 전했 다. 즉, '그 성명은 그들의 임무에 합당한 선에서 발표되었다.'.
미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 매카나기(전 주한 미국 대사) 도 참석한 백악관 대책회의에서는 쿠데타에 반대한 매그루더와 그 린의 성명이 '너무 멀리 나갔다'는 견해가 있었다. 렘니처는 매그 루더에게 '앞으로는 더 이상의 논평은 삼가고 꼭 해야 할 경우는 유엔군의 목적이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것이란 사실만 강조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매그루더의 행동자유가 워싱턴에 의해서도 제약되는 순간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