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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대위의 등장
 전두환대위의 등장
 
 5월16일 육본에서 열린 혁명군-육본 합동회의에서 강영훈 육사 교장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나도 한 마디 해도 됩니까'라고 했다. 장도영은 발언을 허용했다.
 
 '군의 한 간부로서 두 가지 당부를 하겠습니다. 첫째,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은 우리 국군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총리도, 국회도, 내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때 군 통수계통이 무너져선 안됩 니다. 장도영 참모총장을 모시고 혁명을 한다니 다행입니다. 통수 계통이 무너지면 김일성이만 좋아합니다. 둘째로는 절대로 국군끼리 총격전을 벌여서는 안됩니다. 총 쏘고 대포 쏘면 우린 자멸입니 다.'.
 
 강영훈 중장은 그때까지도 6군단 포병단이 대포를 끌고 들어왔 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그런 호소를 했다. 강장군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서 박수가 터졌다. 꼭 혁명지지 발언 을 한 것처럼 되었다. 장도영 총장은 일어나더니 '이거, 나 대통령 각하를 다시 만나고 와야겠어'란 말을 남기고 바깥으로 휑하니 나 가버렸다. 장도영은 다시 청와대로 올라가서 윤보선을 만났다. 윤 보선의 기억에 따르면 장도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더란 것이 다.
 
 '대통령 각하, 군사혁명위원회에서 참모총장인 제가 계엄사령관 을 맡아야 한다고 그 자리를 수락하라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는 그래도 장 총장이 적격이라고 생각하 오. 일단 계엄사령관 직책을 수락하고 봅시다. 군사혁명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바로 계엄사령관직을 맡게 되면 사후 수습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니 우선 다급한 불길부터 잡자면 장 총장이 맡는 것이 무 난하리라고 여겨지오.'.
 
 장도영은 즉시 육본으로 돌아와서 혁명군 장교들 앞에서 자신이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겸 계엄사령관의 직책을 수락한다고 선언했다. 장교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강영훈 중장은 육사로 돌아가려다가 다 시 박정희를 만난 김에 '사관 생도들은 정치에 개입시키지 말아주 시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육사로 돌아오니 김익권 준장이 건의 했다.
 
 '생도들에게는 실탄은 없지만 총과 대검이 있습니다. 생도들이 들고 일어나 소란을 피울지 모르니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 어떻습니 까.'.
 
 김 준장은 강 교장의 허락을 받아 총검을 회수하여 무기고에 집 어넣었다.
 
 16일 오후 육본 정보참모부 북한과 소속 이상훈(국방장관 역임) 대위는 아주과 소속의 육사11기 동기생 이동남 대위와 함께 김종필 을 찾아갔다. 이동남 대위는 11기 동기회장이기도 했다. 김종필은 두 대위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육사에 가서 교장을 설득하여 생도들을 데리고 나와 혁명지지시위를 해주었으면 좋겠어.'.
 
 5월17일 아침 육본의 이상훈-이동남 대위, 공수단의 11기 손운 익 대위, 그리고 육사12기 김광현 대위는 육본에서 만났다. 이들은 하루 전 김종필로부터 지시를 받은 대로 생도들을 설득하려고 육사 를 향해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전두환 대위가 나타났다.서울대학교 학군단에 근무하던 전 대위는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혁명이 났다는데 궁금해서 왔다. 우리가 뭘 해야 되는 것 아냐. 우리 뜻도 밝혀야 하고.'.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이 더 늘어 다섯 대위가 태릉 육사로 출발 하게 된 것이다. 우연한 것 같은 전두환 대위의 등장과 육사행은 그 19년 뒤 그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을 채 우면서 집권하게 되는 인연의 출발점이 된다. 전두환 대위는 그때 도 정치에 관심이 높고 친구도 많은 데다가 활달하여 적성에 맞는 역할을 찾은 셈이었다.
 
 이 다섯 대위는 육사에 도착하자 우선 교수 부에서 교수요원으로 근무하는 11기 동기생들을 찾아갔다. 11기 출 신만 약스무 명이 서울대학교에서 위탁교육을 이수한 뒤에 교수요 원으로 있었다. 이한림 중장은 4·19때까지 3년3개월 동안 육사교 장으로 있으면서 이 학교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4년제 정 규 육사출신들은 이한림을 존경하고 있었다. 이상훈 대위가 보니 교수요원들은 이미 이한림 1군 사령관에게 연락을 취하고 사람을 보내어 이 시기에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지침을 받으려 하고 있었다.
 
 이상훈, 전두환 일행은 이런 동기생들을 설득했다. 동기생들 중 '박정희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지'하면서 혁명에 미온적 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한림 장군으로부터 메시지 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동기생들도 있었다. 입담이 좋은 전두환 대위는 이런 동기생들에게 혁명을 지지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장교들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돌려놓은 다음 이상훈, 전두환,손 운익, 이동남 대위 네 명은 강영훈 교장을 찾아갔다. 늦은 밤인데 강교장은 교장실에 머물고 있었다. 교장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린 이들 대위는 '생도들을 혁명지지 시위에 내보내주십시오'라고 건의 했다. 이들은 '혁명군'이란 완장을 차고 있었다. 강영훈 교장은 화 를 냈다고 한다.
 
 '내가 왜 박정희 장군과 혁명위원회 지시를 받아야 하는가. 나 는 참모총장 지시가 없는 한 그렇게 못해.'.
 
 강영훈 중장은 그 자리에서 차를 부르더니 경호차를 붙여 가지 고 육본으로 떠났다. 강영훈은 '박 장군과 장 총장에게 생도들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외부에서 장교들이 들어와 서 이렇게 선동하고 다니니 다시 이야기를 해두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이상훈 대위는 육본으로 전화를 걸어 김종필에게 '강 영훈 교장이 거기로 갔다'고 알렸다. 김종필은 '알았어. 너희들은 오늘밤 그곳에 머물고 내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생도들을 데리고 나와야 돼'라고 지시했다.
 
 강영훈 교장이 육본에 도착하여 총장실로 가니 장도영과 박정희 가 앉아 있었다. 강영훈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때 한 장교가 들어오더니 박정희 소장을 데리고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박정희 의 표정이 험상 궂게 변해있었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강 영훈에게 쏘아붙였다.
 
 '내가 강 장군한테 들은 이야기와 지금 다른 장교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영 다릅니다.'.
 
 그러더니 휙 나가버렸다. 뒤이어 5개 대대병력으로 육본을 점령 했던 문재준 6군단 포병단장이 들어왔다. 문 대령은 '지금 분위기 가 이상하니 학교로 돌아가시지요'라면서 정중히 강 장군을 모시고 나갔다.
 
 두 사람이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는데 무장한 세 공수단 대위가 달려오더니 문재준의 권총을 빼앗고 반항하는 그에게 사정 없이 발길질을 가했다. 어리둥절한 강영훈 교장 앞에 박창암 대령 이 나타났다. 박 대령은 '이리로 오십시오'라고 작은 방으로 안내 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박창암은 '개인적으로는 강 장군을 존경 하지만 공무수행상 어쩔 수 없습니다'라면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강영훈은 연금된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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