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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림의 고민
 이한림의 고민
 
 5월17일 아침,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가 성공하는 데 큰도움이 되는 또다른 조치를 취한다. 1군 사령관 이한림 중장과 5명의 군단장 앞으로 친서를 보낸 것이다. 이 친서는 장도영 총장이 윤 대통령에게, '국군끼리의 유혈사태를 걱정하시는 각하의 충정을 일 선 부대장들은 모르고 있으니 직접 편지를 써주십시오'란 부탁을 하여 기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당시 비서관들의 증언). 17일 오후 윤대통 령의 친서를 휴대한 김남, 김준하, 윤승구, 홍규선 비서관은 여의도 비행장에서 육본비행대의 L-19경비행기를 타고 일선으로 향했다.
 
 김남, 김준하 비서관은 원주의 1군 비행장에 내렸다. 미리 연락을 받고 나온 이한림 중장에게 편지를 전했다. 윤보선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한림 중장은 두 비서관에게 '혁명군 지휘자들의 정체를 알기나 하시오'라고 따지더라고 한다. 이 사령관은 또 '우리가 출동하면 유혈사태 없이 일이 수습될 것이다'고 장담하더란 것이다. 이한림이 받아 읽은 윤 대통령의 친서 요지는 이러했다.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 군의 불통일로 대공역량을 감소 시켜서는 안됩니다. 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불상사가 파생하거나 조금 이라도 희생이 발생해서는 안됩니다. 귀하는 무엇보다도 공산군의 남 침 대비에 만전을 기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귀하의 충성심과 노력이 발휘되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의 명령만 내리 면 20년 친구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군을 일거에 진압할 결심을 하고 있던 이한림 1군사령관은 사실상의 진압금지명령이 담긴 대통령의 친 서를 확인한 직후 매그루더 미8군 사령관의 방문을 받았다.
 
 매그루더는 경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매그루더는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를 용납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를 회복시키기 위한진압 행동에 찬동한다'고 말했다. 이한림은 그러나 '국무총리로부터 어떤 지시도 없는 데다가 대통령의 친서 내용으로 보아 매그루더에게 확실 한 내의지를 표명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만 매그루더에게 '잘 알았 다'는정도의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매그루더 사령관이 돌아간 뒤 이한 림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는 상황을 분석해보았다.
 
 <이미 육본과 합참은 쿠데타군과 공동근무를 하고 있다. 최경록 2군사령관도 이주일 참모장과 박정희 부사령관이 혁명을 지휘하고 있 는 마당에 내놓고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휘하의 1군에서도 6군 단 포병단-박임항의 5군단-채명신의 5사단-박춘식의 12사단은 쿠데타 군 편으로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1군의 예비인 1군단을 동원하여 진압작전을 벌이면 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이 호기를 포착하여 남침한다면 내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이 있다.
 
 유엔군도 내란중의 대한민국을 도울 처지가 못될 것이다. 설사 진압에 성공하여 정권을 되찾아 민주당 정부에 돌려준다고 한들 파벌싸움에 날이 새고 진 그들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진압에 성공한다면 또 다른 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군사정권을 수립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내 철학과 맞지 않는다. 작전지휘권을 가진 미8군 사령 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윤보선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는 길밖에 없 다.>.
 
 이한림은 이날 저녁 국기하강식에서 사령부 장병들 앞에서 이런 요 지의 연설을 했다.
 
 <장병 여러분,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비극의 시간이 왔습니다. 나 는 근본적으로 군의 정치에의 개입을 반대합니다. 있어서도 안되고 용 서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내 생각이나 내 의지와는 관계 없 이 대세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호시탐 탐 노리고 있는 이 시기에 내란으로 치달을 위기를 조성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부득이 나는 쿠데타 반대입장에서 묵인하는 입장으로 전환하 였음을 여러 장병들에게 알립니다.>.
 
 이한림이 훈시를 끝내고 집무실로 돌아오는데 쿠데타군의 요원인 윤태일 준장이 본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 장군 왜 왔소?' '혁명위원회로부터 제9사단장으로 보임받아 신고하러 왔습니다.'.
 
 '신고가 무슨 신고야, 돌아가시오. 돌아가거든 박정희 보고 말하시 오. 나는 박정희를 죽일 수 없다고. 대신에 내가 죽겠다고 전하시오.'.
 
 이한림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인데 윤태일이 '5·16혁명실기'에 남긴 증언은 다소 다르다. 윤태일이 혁명에 협조해 달라는 박정희의 부탁을 전하자 이한림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장면 정부 타도는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다. 가장 방대한 병력을 가진 1군 사령관과 사전에 혁명을 의논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1군 병력은 군사행동에 동원하지 않겠다. 그러나 매그루더 사령관의 반대 도 있고 하니 9사단장 취임은 인정할 수 없다.>.
 
 비행기편으로 귀경한 윤태일이 박정희에게 사정을 보고하니 박정희 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윤 장군은 오늘중으로 9사단에 부임하여 병력 을 장악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윤태일은 밤 10시 다시 양평을 향 해 떠났다.
 
 자정을 넘겨 18일 새벽에야 9사단 본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9사단이 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출동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이 야기를 듣고달려왔는데 도착해보니 분위기가 영 달랐다. 박영준사단장 이하 참모들이 혁명을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윤태일은 이 사실을 박정희에게 보고했고 18일 오후 그는 박정희로부터 소환을 당해 육본 으로 돌아갔다.
 
 윤태일을 문전박대하여 보낸 직후 이한림은 박정희를 전화로 불렀 다고 한다. 이한림은 '지나간 생도시절 다정하게 지냈던 감정이 마음 한편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엉겁결에 '가족은 다 무사한가'라는 말이 나오더란 것이다.
 
 '무사하다.' '가족들 조심하라고 그래.' '알았어.'.
 
 이 순간엔 다시 '때려 죽이고 싶도록 미운 감정'으로 변했다고 한다.
 
 '네 쿠데타 나는 묵인한다.' '고맙다.'.
 
 '나는 야전군의 일을 맡아 할 테니 그리 알아라. 너는 서울쪽을 하 고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아라.' '그래 알았어.'.
 
 박정희의 목소리는 썩 기분 좋은 게 아니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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