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대화 제의
5월18일은 박정희의 쿠데타가 성공의 문턱을 확실하게 넘은 날이었다. 1군 사령관 이한림 중장의 체포-압송, 육사생도들의 혁명지지 가두행진, 그리고 장면의 출현과 내각 총사퇴 의결이 이날 하룻동안에 이루어졌다. 한 줌도 안되는 쿠데타군을 진압 할 기회만 보고 있던 미8군 사령관 매그루더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칼자루를 빼앗겨버린 것이다.
박정희와매그루더의 대화는 이날부터 탐색단계로 접어든다. 대화나 협상은 어차피힘의 관 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날부터는 미군측이 오히려 초조한 모 습을 보인다. 이날 아침 김정렬 전 국방장관은 '미군이 쿠데타 군을 진압하려고 한다'는 뒤늦은 정보를 듣고는 매그루더와 사 이가 좋은 자신이 한미간의 난제를 풀어보려고 나선다. 그는 박정희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던 박태준 대령(자민련 총재) 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매그루더를 만나러 간다고 알린 다음 용산 8군 사령부로 들어갔다. 사령관 매그루더와 부사령관 멜 로이 장군이 이례적으로 현관까지 나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 다. 미군측이 상당히 다급한 사정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사령관집무실로 들어가 앉았다.
매그루더는 '박정희는 지금은 내색을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공산주의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낼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말부터 꺼냈다. 김정렬은, 일본육사 후배인 박정희 소령이 군내 남로당 조직원으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고 있을 때 자신이 나서서 구명 운동을 벌인 과정을 설명해주면서 안심시키려고 했다. 김정렬은 매그루더에게 박정희를 만나보라고 했다. 매그루더는 이미 김정렬에게 '우리는 장도영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그래서 직접 군사혁명위원회 부의장인 실력자를 만나보라고 권한 것이 다. 김정렬은 자신이 그 요담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매그루 더는 '박정희 장군을 만나면 잡아간 이한림 장군을 석방해줄 것 을 부탁해주시오'라고 했다.
김정렬은 박정희를 만나서 매그루더의 뜻을 전했다. 박정희 는 매그루더와의 요담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한림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형님, 이한림과 나는 육사동기생이 아닙니까. 그러나 현재 로서는 석방을 고려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 매그루더의 정치담당 보좌관은 짐 하우스맨 중령이었다. 국군 창설에 주요한 역할을 하여 한국군 상층부와 친했던 그는 5월18일 귀한 손님을 맞았다. 박정희 소장이 강문봉 예비역 중 장을 데리고 용산8군사령부 안에 있는 그의 집에 나타난 것이다.
강문봉은 만주군관학교에서는 박정희의 후배였으나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에 먼저 들어온 덕택에 자유당 시절에 벌써 2군 사 령관을 지낼 정도로 빨리 승진했다. 육군특무부대장 김창용 암 살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 4·19직후에 출감했었다. 세 사람이 소파에 앉자 박정희는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켰으나 기름이 떨어져 불이 붙지 않 았다. 하우스맨의 아들 지미가 재빨리 라이터 기름을 갖고 와서 라이터에 부었다.
그러는 사이 박정희는 한때의 상관 강문봉의 무릎을 만지면서 '강 장군 같은 사람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어야 하는 건데…'라고 했다. 박정희는 '혁명위원회에는 하우스맨 당 신의 친구들이 많아요. 그러니 이 혁명은 당신의 혁명이요'라고 말했다. 물론 강문봉이 통역했다. 이때 전화가 걸려왔다. 하우 스맨이 전화기를 들었다. 혁명위원회의 어느 장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박 장군께서 당신네 집에 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귀하의 댁에 머물 동안 박 장군의 신변 안전을 부탁한다.'.
하우스맨은 버럭 화를 냈다. 전화기를 놓고 돌아서니 박정희 가 '무슨 일인가'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라이터를 켰는데 불길 이 확 치솟았다. 지미가 라이터 기름을 너무 많이 부어 라이터 외부로 흘러나온 기름에까지 불이 붙은 것이다. 세 사람은 함께 웃었다. 박정희는 어렵게 입을 뗐다.
'나는 여순반란사건 토벌작전에 참여하고 서울로 돌아온 직 후 체포되었는데 사실은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하우스맨은 여기서 박정희의 말을 막았다고 한다. '한국의 실질적 지도자가 되어 있는 분으로 하여금 스스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하여 말하도록 한다는 것, 더구나 그런 말 을 무릎을 맞대고 듣는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는 것이다. 박정희는 하우스맨의 딸이 내어온 얼음조각이 담긴 콜라에 입도 갖다 대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얼음이 녹아 콜라 물이 멀겋게 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던 박정희는 '하우스맨씨, 나 를 위해 워싱턴에 좀 갔다 오지 않겠소'라고 했다. 하우스맨은 방으로 들어가 미국행 비행기표를 갖고 오더니 박정희에게 보여 주었다. 바로 다음날 하우스맨은 아내와 함께 휴가 겸 출장을 가기로 되어있었다. 박정희는 덤덤하게 '고맙소'라고 했다. 워 싱턴에 도착한 하우스맨은 미합참의장 렘니처를 독대하여 박정 희 장군에 대한 설명, 그리고 군사정권의 성격에 대한 분석과 예견을 털어놓았다.
5월18일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국사 태에 대한 요약보고서를 올렸다. 이 보고서에서 CIA는 '박정희 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서 언급했다. '박정희가 공산주의자였다 는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 때 복직되었고 그 뒤로는 공산주의자들과의 관계를 재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CIA는 쿠데타가 성공한 요인으로서 '어떤 저항도 존재하지 않았고, 국민들은 무관심했으며 장면 총 리의 저항포기, 장도영의 2중 행동, 윤보선 대통령의 타협적 태도와 이에 기인한 합헌적인 정권이양, 이에 따른 군사정권의 정 통성 강화'를 꼽았다.
이 보고서는 또 '만약 군사정부가 일찍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하면 이승만 정부에 참여했던 극우세력 이 복귀하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군사정부는 경제문제에 대한 계획이 없고 경제 전문가도 없기 때문에 전정권의 관료들을 계속 등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8일 미국무부 보울즈 차관은 '한국의 정변은 반미정권의 등 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은 신정권을 승인할 것이다'는 요지 의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날(5월19일) 매그루더 사령관은 정보 장교 몰 대위를 김종필 중령에게 보내 '한번 만나자'는 통보를 해왔다. 미군 대장이 한국군 중령을 대화상대로 지명한 것은 5·16 에 의하여 근본적으로 달라진 한미간의 역학관계를 암시하는 것 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