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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수녀원서 나오다
 장면, 수녀원서 나오다
 
 이한림1군 사령관은 덕수궁 중화전 계단에 자신을 세워놓고 권총을 겨누고 있는 공수단 대위를 향해서 덕수궁이 쩡쩡 울릴 정도로 고함을 쳤다.
 
 '야-- 이 개자식들아. 역사의 무서움을 모르는 무식한 놈들아-- 쏴 라!'.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던 대위는 노리쇠를 당겼다가 놓으면서 실탄 을 장전하더니 다시 조준을 했다. 이한림은 기다리는 총탄이 안날아오자 다시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야-- 이 새끼들아--, 탐욕의 개자식들아-- 빨리 쏴라!'.
 대위는 동요하는 빛을 보이더니 계단을 올라왔다.
 
 '왜 안쏘는 거야, 이 시시한 놈들아!'.
 
 대위는 풀이 꺾인 표정을 짓더니 이한림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하 라고 시켜서 하는 것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하더니 중화전의 문을 열고는 '들어가십시오'라고 공손하게 대했다. 천주교 신자인 이 한림은 안으로 들어가 나무의자에 앉자마자 묵주를 꺼내 기도를 드렸 다. 그는 속으로 '박정희, 김종필 집단은 야만인 중에서도 야만인들의 집단이구나'하는 증오심을 억누르려고 애썼다('회고록').
 
 5월18일 오전 이한림이 덕수궁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던 그 시간대 에 육사 생도들이 청량리에서 종로를 따라 행진하고 있었다. 그 전에 생도대장 김익권준장은 육본으로 전화를 걸어 연금된 강영훈교장과 통 화를 했던 것이다. 김준장이 '빨리 결심해주십시오'라고 말하자 강교 장은 '알아서 하시오'라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혁명을 지지하고 있던 김준장은 '알겠습니다. 집행하겠습니다'라고 했다. 18일 아침 김익권 준장은 예복차림의 생도들을 트럭에 태워 청량리로 데리고 나왔다. 그 곳에서 하차한 생도들이 시청을 향해서 행진에 들어가자 연도의 시민 들은 박수를 쳤다. 정규육사 1기인 이상훈(국방장관 역임), 전두환대 위도이 대열을 따라갔다. 이상훈은 걸어가면서 시민들의 반응을 유심 히 관찰했다. 한 사람이 박수를 치면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산되었다.
 
 혁명을 지지해서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화려한 예복을 입은 생도들의 씩씩한 행진이 멋지게 보여서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쨌든 육사생도들의 시내 행진은 민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 다. 텔레비전 방송이 없던 시절이라 이 시가행진의 시청각적 효과는 더욱 극적이었다.
 
 박정희는 장도영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겸 계엄사령관을 찾아가 '지 금 육사 생도들이 행진하여 오고 있으니 각하께서 격려 훈시를 해주셔 야겠습니다'라고 했다. 장도영은 '나는 전혀 모르는 행진이고 혁명은 당신이 주도했으니 당신이 생각대로 훈시하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이미 각하께서 중책을 맡으셨으니 꼭 훈시를 해주셔야겠습 니다'라고 간청했다. 장도영은 그래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사관 생도들에게 훈시를 해야 했다'는 것이다. 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단상 에 오른 장도영은 이런 요지의 연설을 했다.
 
 <이번 우리 군의 행동은 애국애족의 일념에서 취한 것이다. 이 혁 명은 저 1919년의 삼일운동 때로부터 거족적으로 끊임없이 우리 민족 이 투쟁해온 민족민주주의 혁명과정의 일환이다>.
 
 이런 연설을 하고나니 장도영은 저절로 '이 군사행동이 진정으로 그 런 결실을 가져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장도영의 연설에 이어 4학년(18기)인 정재문연대장 생도가 선언문을 낭독했다.
 
 <4·19 이후에 등장한 정치 브로커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이 땅을 도색해 놓았는가. 저 길가에 뛰노는 삼척동자에게 물어보라. 자유당과 무슨 차이가 있었더냐고. 권력에 굶주린 민주당은 … 한없이 무기력한 민주당은 … 치안에 한없이 무력한 저들은 붉은 간첩들을 마구 수입해 놓았다. 국민의 군대는 이런 식의 민주주의 그 자체를 더 이상 연명시 킬 수 없다는 엄숙한 결의로써 고개를 들고야 말았다.>.
 
 훈시를 마친 뒤 지프를 타고 육본으로 돌아오는 장도영 의장에게 덕수궁앞의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장도영은 비로소 '군사혁명을 지 지하는 국민들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육본에 돌아온 장도영이 집무실로 들어서니 낯이 익은 도널드 위터커가 기다 리고 있었다. 위터커는 미군 정보장교 출신인데 장면총리의 정치고문 으로 있었다. 위터커는 마침내 장면 총리의 거처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장도영은 혜화동 카르멜수녀원으로 갔다.
 
 장면은 자신의 수기에서 18일의 사임을 결심한 것은 '17일경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윤대통령이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연락을받았기 때문' 이라고 썼다. 미국 대사관에선 '윤 대통령이 그렇게 나오는 한 자기들 은 별 도리가 없다'는 태도였다는 것이다. 카르멜 수녀원 심마리아 수 녀의 증언에 따르면 17일 오후 경향신문 사장 한창우가 카르멜 수녀원 을 찾아왔다고 한다. 심수녀는 '박사님이 안계신다'고 잡아뗐으나 한 사장은 '운전기사한테서 다 들었으니 꼭 만나뵙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애원하다시피했다고 한다. 심수녀는 장면 총리의 허락을 받아 한창우 를 안내했다.
 
 장도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수녀원에서 만난 장면 총리가 '극히 냉랭하게 나를 대하기는 했으나 언성을 높여 질책이나 욕설은 한 마디 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장도영은 상황을 보고하고 '이제는 나오 셔서잘 수습을 해주셔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면은 침통한 얼굴로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드디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작은 목소 리로 '알았어'라고 하더란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심수녀의 증언은 다르다.
 
 '저는 장 박사님이 그토록 대로하신 것을 전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장도영씨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꾸짖으시는데 곁에 서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왜 쿠데타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허위보고를 했느냐고 꾸지람을 하시며 도대체 이 나라와 겨레를 어떤 지경에 빠뜨리고 싶어 서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느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수녀는 수도원을 나서던 장면의 뒷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람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분은 성인의 대열에 끼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 그런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도영은 장면 총리를 데리고 중앙청으로 갔다. 이곳에서 장면 총 리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은 제2공화국의 마지막 각의를 주재했다. 선포된 비상계엄령의 추인과 내각총사퇴를 의결한 장면 총리는 의결서를 가지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기 위해서 청와대로 올라 갔다.
 
 장도영은 육본으로 돌아와서는 집무실 부속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 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는 '내가 어쩌다가 이다지도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단 말인가'하고 괴로워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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