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림 압송
5월18일 현재 박정희의 쿠데타를 무효화할 수 있는 유일한 무력은 이한림 사령관이 지휘하는 야전군(1군)이었다. 서울로 진입한 3천6백 명의 쿠데타군을 진압하는 데는 야전군 1개 사단만 동원하면 충분했다.
20개 전투사단을 보유한 1군 사령관으로서는 적법한 진압명령만 내려오면 작전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진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세 사람, 즉 장면 총리-윤보선 대통령-매그루더 미8군 사령관의 주저와 포기였다. 17일 오후 이한림은 박정희에게 '나는 쿠데타를 묵 인한다. 그러니 너도 1군에 간섭하지 말라'라고 전달했지만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가는 측의 입장에서는 권력의 공유와 분점을 허용할 수 없었다. 1군이 독립된 권력으로서 존재하는 한 쿠데타군은 미군의 눈 치를 보아야 하고 항상 진압의 위협을 느껴야 할 처지였다.
1군 사령부 안에서 숨을 죽이고 사태를 관찰하고 있던 혁명주체세 력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 다급했다. 작전처 조창대 중령을 비롯한 이종근(국회의원 역임), 심이섭, 박용기 중령은 육사8기 동기생으로 서 다른 다섯 명의 장교들을 포섭해둔 상태였다. 실병력을 지휘하지 않는 참모장교들이라 결정적 병력동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들은 처 음부터 이한림 사령관을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5·16 혁명 방송이 나가자 1군사령부의 장교들 분위기는 대체로 '혁명지지' 쪽이었다. 정보처 소속 박용기 중령은 16일 오전 엄병길(감사위원역 임) 중령을 데리고 헌병부장 박태원(치안국장, 삼성건설 사장 역임) 대령을 찾아갔다. 박 대령은 '혁명에 협조하겠다'고 즉석에서 승락했다. 1군 사령부와 사령관의 안전을 책임진 지휘관의 포섭에 성공함으 로써 이한림 체포작전은 반쯤 성공한 셈이었다.
조창대, 박용기 중령 등은 이한림의 전화를 감청한 요지를 계속해서 보고받고 있었다. 이 한림의 회고록 기록과는 달리 박용기의 기록에 따르면 박정희는 16일 오전 10시쯤 처음으로 이한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이한림은 박 정희에게 '넌 빨갱이가 아닌가. 즉시 동원한 부대를 원대복귀시켜라' 고 소리쳤다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3시쯤 박정희는 다시 이한림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때도 이한림은 박정희의 협조요 청을 단호하게 거부하고는 '나의 승인 없이는 절대로 혁명이 성공할 수 없으니 부대를 원대복귀시켜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1군 부사령관 윤춘근 소장, 정보처장 이소동 준장은 쿠데타를 진 압해야한다는 쪽이었다. 17일에 들어서니 이한림 사령관이 육사교장 일 때 배출시킨 정규육사 출신 대위들을 중심으로 하여 1개 중대병력 을 편성, 사령부 경비에 투입할 것이라는 첩보가 주체장교들에게 들 어왔다. 조창대, 박용기 중령은 사령관 주변의 방어가 굳혀지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게 되었다. 오후 6시 이들 혁명파 장교 들은 육본으로 전화를걸어 1군과의 연락책 역할을 하고 있던 오치성 대령에게 '이한림체포작전'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한다.
오치성은 박 정희소장과 협의한 뒤'좋다'는 통보를 했다. 조창대, 박용기 중령 등 은 18일 새벽에 덮치기로 했다. 그 전에 손을 써야 할 부분이 있었다. 이들은 우선 사령관의 관사를 경비하고 있는 헌병들을 철수시켜 줄 것을 박태원 헌병부장에게 요청하여 승락을 받았다. 혁명파에 합 류한 심리전 참모 허순오(전기안전공사 사장 역임) 대령으로부터는 1 개 중대를 지원받아 관사의 외곽을 포위하기로했다. 이한림을 체포한 뒤 서울로 데리고 갈 지프도 준비하고 운전은 혁명파인 엄병길 중령 이 맡기로 했다.
18일 새벽6시 조창대-박용기 중령과 안찬희-김수만 대위는 사령관 관사로 갔다. 경비헌병들이 연락을 받지 못했는지 통과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박태원 헌병부장에게 연락을 하니 박 대령이 달려왔다. 무사히 통 과한 혁명파 장교들은 사령관실에 붙은 부속실로 들어갔다. 전속부관 은 박준병(자민련 사무총장) 대위였다. 박 대위에게 사령관실로 안내 하게 했다. 그때 이한림은 참모장 황헌친 소장, 군수참모 박원근준장 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었다. 박 대위가 나가고 문을 닫자 박용기 일 행은 허리춤 속에 찔러넣은 권총을 빼 들었다.
'사령관님, 서울로 모시겠습니다.' '박정희가 나를 데려오라고 했어?'.
잠시 생각에 잠긴 이한림은 박 대위를 부르더니 '서울 가야겠다. 차를 준비시켜'라고 명령했다. 박용기 중령은 이때 헌병 중위로 위장 하고 있었다. 이한림 사령관을 호송하는 차는 두 대였다. 차 앞에서 박용기 중령이 이한림의 무장을 해제하려 하자 이한림은 화를 내며 '항장도 무기는 뺏지 않는다. 너희들은 내 부하가 아니냐'고 소리쳤 다.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중재에 나선 박원근 준장이 '제게 주십시오' 라며 끼어들어 권총의 실탄을 제거한 뒤 사령관에게 빈 총을 돌려주 었다.
선두의 스리쿼터엔 완전무장한 1개 분대의 헌병이 타고 이한림은 자신의 지프에 탔다. 운전은 엄병길 중령, 이한림은 운전석 옆자리, 뒤에는 감시역으로 안찬희 대위가 탔다. 이때 박준병 전속부관도 동 승했다.두 차가 공관 문을 나설 때 1군사령관 수석고문관인 자부란스 키 준장이 탄 차가 도착하고 있었다. 스리쿼터에 타고 있던 호송책임 자 박용기가 차를 세우게 하고 고문관과 사령관이 작별인사를 할 기 회를 주었다. 원래 호송 루트는 원주-횡성-양평-양수리쪽이었으나 양 평에 주둔한 9사단이 이한림 중장 편이란 첩보가 있어 원주-여주-이 천-천호동-육본으로 변경했다. 이천을 지날 때 L-19경비행기가 상공 에 나타나 호송차를 따랐다. 이원엽 육군항공대장으로부터 '이한림 장군을 호송하니 경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한 육본비행대장 김원 호(71) 중령이 조종하는 비행기였다.
이한림 중장을 태운 지프와 호송차는 오전 11시30분쯤 덕수궁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전속부관 박 대위는 내리도록 했다. 박용기가 보 니 덕수궁에는 공수부대원들이 많이 집합해 있는데 박정희 소장도 눈 에 뜨였다. 박 소장은 박용기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고했다'는 뜻을 보냈다. 덕수궁 중화전 앞뜰에 지프가 섰다. 박용기는 이한림을 공수부대원에게 인계했다. 이한림은 '전속부관을 좀 만나게 해 다오' 라고 부탁했다. 이한림은 박준병 부관에게 '가족에게 걱정말라고 전 하라'고 지시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이한림 중장의 신병을 인수받자 아주 살벌하게 대했다. 젊은 대위가 다짜고짜 이한림의 볼에다가 권 총을 찔러대놓고는 이한림의 빈 권총과 혁대를빼앗았다. 대위는 '저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반말로 명령했다. 이한림은 중화전의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지금부터 사형을 집행하겠으니 똑바로 자세를 취하시오.'.
대위는 소리치더니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는 사격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이한림은 자신을 향한 총구를 바라보면서 당당하게 죽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