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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통폐합
 언론 통폐합
 
 5월16일의 군대 행동은 쿠데타였으나 그 이후 진행된 사태는 우리 민족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대 개혁, 즉 혁명 그 자체였다.
 
 5월27일 혁명정부는 약 3천명의 병역기피 공무원을 적발하여 전원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감원으로 남는 예산 7억환은 국민복리사업 에 쓰기로했다. 5월28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부정축재자 처리 기본요강 을 발표했다.
 
 최고회의는 부패공무원, 기업인, 재산 해외도피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요강에 따라 25명을 이미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발표된 명단에 들어 간 사람들 가운데는 그 뒤 혐의가 증명되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아예 기소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신빙성엔 문제가 있다. 백두진(전 국무총 리), 김영선(전 재무장관), 유태하(전 주일대사) 같은 공무원들 이외에 다섯 명의 장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양국진 전 3군단장, 백인엽전 6군단장, 엄홍섭 전 육군공병감, 백남권 전 논산훈련소장, 이용운전 해 군참모총장. 기업인들 가운데는 대한양회 이정림, 삼호방직 정재호, 대 한산업 설경동, 극동해운 남궁련, 극동연료 이용범, 화신산업 박흥식등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사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에 있던 제일 제당의 이병철은 '미체포자' 명단으로 발표되었다.
 수사 대상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1억환 이상의 정치자 금을 제공한 행위' '외자구매 외환, 또는 그 구매 외자의 배정을 독점 함으로써 2억환 이상의 이득을 취한 자' '2만불 이상의 재산을 해외에 도피시킨 자' 등으로 규정되었다.
 
 5·16 당시의 사회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이때가 '텔레비전 전사시대' 란점이 중요하다. 생활이 요란하지도 번잡하지도 않고 간편하던 시대였 다. 당시 서울 시민들의 3대 매체는 신문, 라디오, 영화였다. 시민가구 의 55%가 신문을 보고 있었다. 51%가 라디오를 갖고 있었다. 시민의 45% 가 한 달에 한번 이상 영화를 보고 있었다.
 
 5월28일 공보부는 '계속 발행할 수 있는 신문, 잡지, 통신사'의 명 단을 발표했다. 이 강제정비 조치에 따라 64개 중앙지 가운데 15개가 살아남았다.
 
 지방에서는 51개 가운데 24개, 중앙통신사는 2백52개 중에서 11개가 살았다. 지방통신사 64개는 전부 폐쇄되고 3백55개의 주간지 가운데선 31개가 남고 1백30개 지방 주간지 가운데선 한 개가 살았다. 공보부는 '이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언론사는 등록증을 반납하는 동시에 기자증을 회수하고 금후 일체의 취재활동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3백16개의 통신사가 활동한 민주당 정권 시절, 대부분의 통신사들은 기자증을 팔았고 많은 기자들은 공갈배가 되어 먹고 살았다. 혁명주체 박종규 소령도 혁명모의를 하고 다닐 때 한 통신사로부터 가짜 사진기 자증을 받아 활용했다. 장면 정부의 실패 원인을 논할 때 언론도 면책 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정부는 28일 장영순 육군대령을 검찰총장에 임 명했다. 한신 내무장관은 이날 공무원들의 집무태도에 대한 지침을 전 국에 내려보냈는데 이는 전형적인 군사문화의 확산을 예고한 것이었다.
 
 <모든 공무원은 출근시간 30분 전에 출근하여 실내청소와 환경정리 를 마치고 깨끗한 기분으로 집무에 임할 것. 근무시간을 엄수하되 지각, 무단결근, 집무중의 무단 이석, 외래객 접견 잡담을 엄금할 것. 직무상 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하고 하명받은 사항은 지정된 시간내에 완수할 것.
 
 지시 또는 명령한 사항은 반드시 그 결과를 확인하고 검토할 것. 매 일의 사무처리 계획을 작성하고 매일의 실적을 확인하여 근무시간을 단 일분이라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민원서류 처리에 있어서는 무 료대서 및 시간제 처리를 엄수하고 친절과 봉사를 베풀고 민폐를 끼치 는 일이 없도록 할 것. 허례의 악습을 바로잡고 간소한 복장과 검소한 생활을 솔선하여 여행할 것. 유흥장 출입을 엄금하고 외제담배를 피우 지 말 것.>.
 
 한신 장관은 이런 지시를 내려놓은 뒤 기자들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요사이 내 이름으로 나가는 발표문 안에 엄단이니 엄중처벌이란 말 이 너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은 국민들 앞에 쓰기엔 좋지 않으니 앞으로 삼가겠습니다. 기자 여러분들은 혹시 담화문 속에 그런 말들이 나오더라도 부드러운 말로 바꾸어 주십시오.'.
 
 5월28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는 이런 요지의 가십 기사가 실렸다.
 
 <서울에서는 군사혁명 이래 계엄고등군법회의가 두 번 있었다. 하나 는 춤바람, 다른 하나는 주먹 재판이었다. 두 재판마다 기자가 끼여 있 어 취재갔던 기자들이 얼굴을 붉혔다. 자칭 사회일보 기자라는 오모는 '이달말께 취재차 미국 가서 사교하기 위하여 춤을 배우려고 했다'고 말하는가하면 군경통신 기자라는 김모는 경찰서 지서에 들어가서 '너희 들 비행을 조사하러 왔다. 너희들 모가지를 모조리 자르겠다'는 공갈협 박을하고 기물을 파괴했다는 것. 이 친구는 '6천환을 내고 입사했으며 견습적으로 다니다가 그만 잘못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5월28일자 조선일보 1면 하단의 '만물상'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기 획위원들 명단을 발표했는데 성명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다'고 지적했 다. '만물상'은 '군에서는 공문서를 순 한글로만 써온 지가 오래이고 이것으로 타자기의 이용도 많이 되어 있는지라 이제 이것이 일반 행정 기관에도 파급될 성싶다'면서 '동명이인이 많은데 이런 식의 표기로는 혼동이 많아지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다.
 
 혁명정부가 취한 혁명적 조치 중에는 '농어촌 고리채 정리'도 포함 되어 있다. 5월25일 낮12시 현재로 농어민이 진 연리 2할 이상의 일체 의 고리채에 대해서는 채권행사를 일시 정지시키기로 한 것이다. 채권, 채무자들은 당국에 신고하고 확정된 채무는 정부가 나서서 '정부보증융 자'로써 빚을 대신 갚도록 한다는 아주 과격한 조치였다. 이 고리채 정 리는 여러 가지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5월29일 서울시교육감은 과외수업과 교내외의 특별학습을 금한다고 발표했다. 군정경찰은 5월30일부터 3일간 전국에 걸쳐 보행자 지도훈련을 실시했다. '좌측통행, 차도보행금지, 횡단보도 이용, 신호를 지킬 것.'계엄사령부는 이렇게 국가기강을 잡아가는 가운데서도 장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국토건설사업만은 종전대로 추진하니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한다'고 발표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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