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 대 이북
혁명정권의 칼자루 역할을 하게 되는 중앙정보부를 만드는 과정 에서 김종필은 장도영을 거세하지 않고는 혁명과업을 순탄하게 추 진할 수없다는 판단을 했다. 장도영 거세에 있어서는 김종필을 필 두로 한 8기 영관급 주체장교들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육사 8기생 들과 장도영 사이는 나이로는 2∼3세, 군경력도 2년 차이밖에 없었으나 계급은 중령과 중장 차이였다.
중령 계급장을 6∼8년간 단 8 기생들은 선배 장성들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김종필은 5월 15일 혁명방송문을 작성할 때도 박정희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장도영' 이라고 써넣는 데 반대했었다. 장도영을 혁명지도자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확답을 하지 않고 애를 먹인다고 생각한 일부 주체장교들은 혁명 후에도 태도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 장도영을 처단해야 한다면 서 날뛰었다.
그때마다 박정희는 '혁명에도 의리가 있다'면서 달랬 다. 여러번 장도영한테 신세를 진 박정희의 입장은 의리와 인정 면 에서도 30대 영관급과는 같을 수 없었다. 그런 장도영이 혁명에 무 임승차한 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고 본 김 종필은 5월 말부터 장도영 거세 준비에 들어간다.
장도영을 거세하지 않으면 혁명정부가 분열할지도 모른다고 판 단한 김종필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는 자료로는 그가 6월 2일 매그 루더 미 8군사령관과 만나 나눈 대화록이 있다. 김종필은 서두에서 부터 '오늘은 우리 혁명군의 당면한 문제점들을 아주 솔직하게 말 씀드리겠다'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해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전역사를 통해서 두 차례 대혁명이 있었습니다. 600 년 전에 일어난 첫번째 혁명도 부정부패가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지 금과 비슷합니다. 저는 4·19에 대해서는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습 니다. 두번째 대혁명이 5·16입니다. 조선조 500년 동안 많은 차별 정책으로 나라가 이리저리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혁명의 주목 적은 이런 분열상태를 종식시키는 일입니다. 장도영 장군은 이북 출신이고 박정희 장군은 이남 출신입니다. 지금의 분열과 갈등은 이 점이 주원인입니다.
장도영 장군의 태도는 혁명 전, 혁명 중,혁 명 후에 모두 달랐습니다. 장 장군이 혁명을 비호했음을 증명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모의 정보가 새나갔을 때도 그는 뜬 소문에 불 과하다면서 그런 사실을 부인해주었습니다. 박 장군은 거사 전에 최고회의의 조직구성과 의장 문제까지 그와 상의했습니다. 장군은 최고회의를 이끌어갈 만한 적격자가 없다고 걱정까지 했다고 합니 다. 혁명당일 장 장군은 밤 9시 40분에 30사단의 반란을 보고받고 도 장면 총리에게는 다음날 새벽 2시에 보고했습니다. 왜 그토록 늦게 보고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김종필은 이런 식으로 장도영 장군의 기회주의적 행동 사례를 20 여분간 자세히 설명해갔다.
'박 장군은 18일 이후 장 장군에게 복종했습니다. 박 장군은,장 장군이 최고위원들과 내각을 임명했을 때 어떤 반대도 표명하지 않 았습니다. 주로 이북 출신들이 많이 기용되었는데 이에 반발하는 소장파들을 박 장군이 무마시켜야 했습니다. 24, 25일 경까지 장 장군은 박 장군과 의논해서 일을처리하는 듯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걸핏하면 충돌했고 박 장군과 상의하는 걸 기피하기 시작했습니 다. 은행장들을 임명했을 때도 박 장군은 신문을 보고 나서야 알 정도였습니다. 신문에서 보셨겠지만 장 장군은 오는 8월 15일까지 정권을 민간정부에 이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 누구와도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현재 모 신문은 신민당(야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장 장군이 간접적으로 이 움직임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모 신문의 편집국 장도 장장군을 지지하도록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미군 사이에 연락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장 장군의 직책이 네 개나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재 육군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최 고회의의장, 내각수반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런 중대 한 직책을 네개나 갖고 있는 탓에 우리 양군 사이에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부하들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본인은 오늘 최고회의에 법안을 상정시켰습니다. 최고회의 의장, 부의장, 위원들은 겸직을 금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이 안건 은 투표결과 19대12로 가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임 육군 참모총장 을 뽑아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귀하와도 관계가 있기 때 문에 잘 생각해두시기 바랍니다. 뉴스위크지에 지금 한국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나라는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장도 영 장군을 중심으로 단합할 것입니다.'.
장도영에 대한 많은 비판을 쏟아놓은 뒤에 김종필이 말한 '장도 영 중심의 단합'을 매그루더는 하나의 수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매그루더는 '그러면 장 장군의 직책은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최 고회의 의장만 맡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장도영 장군과 맺은 신사협정을 지켜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을 건널 때) 헌병대로부터 발포를 당한 박 정희 장군은 '장도영이가 나를 죽이려 하는군'이라고 말했고 젊은 장교들은 장 장군을 쏴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박 장군은 '아니 야, 우리는 장 장군을 지도자로 모시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켜야 돼' 라고 말했습니다. 이남에서라도 남북은 단결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지금 이순간에도 장 장군의 이북출신 추종자들은 세력을 확대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5,000년 역사에 있어서 이런 일들은 비 일비재했습니다. 장 장군이 지난번에 방미 의사를 표명했을 때도 그것은 동료들과 합의한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나라꼴이 정비되지 도 않았는데 귀국 대통령과 만나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현지 사령관인 귀하와도 만나지 못하는데 그의 방미가 도대체 무슨 소용 이 있겠습니까. 그가 방미한다면 이곳 정세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 를 할 수 있을 뿐일 것입니다.'.
매그루더는 김종필에게 '각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은 최고위원 으로 계속해서 남는가' '박정희 장군은 상임최고위원이 되는가'라 고 꼬치꼬치 물었다.
김종필은 백지에다가 혁명정부의 조직체계도를 대충 그려나가면 서 각 부서의 기능과 상하관계를 설명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멜로 이 8군 부사령관이 '사본을 한 장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다.
'물론입니다. 이 정부조직 초안은 혁명 두 달 전에 작성한 것입 니다.'.
매그루더가 '(조직안을 만드는데) 고심을 많이 했겠군요'라고 하니까 김종필은 이렇게 받았다.
'귀측으로부터 배운 것이 많습니다.'.
미국측이 한국군 장교들에게 가르쳐준 조직운영의 기술을 혁명 에 써먹었다는 뜻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