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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종원
 선우종원
 
 박정희 부의장이 대구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장면 전 총리의 측근이 던 반공 검사 출신 선우종원 조폐공사 사장이 북한 간첩이었다고 말한 것은 다른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혁명 정부에선 곧 전모를 발표하겠다 고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선우씨를 반혁명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박정 희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잘못 보고받은 것을 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조 당쟁 때는 상대 당파를 쓸어버리는 죄목으로서 주로 역모죄를 이 용했다. 대한민국 시대의 정권교체기엔 용공, 반혁명 같은 어머어마한 혐의가 많이 등장했다. 권력 기관이 친여언론을 이용, 콩알만한 사실을 집채만한 것으로 선전함으로써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잔재 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풍토의 유구한 전통이기도 하다.
 
 선우종원은 1952년 장면이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로 있을 때 그의 비서실장이었다. 이승만이 이 해 여름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 직선제로의 개헌을 감행하자 일본으로 밀항하여 8년간 망명생활을 하다 가 4·19혁명 뒤 돌아왔었다. 그는 조폐공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장면 총리의 가까운 정치 참모 역할을 했다. 박정희 일파가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여 총리에게 보고한 적도 있었다.
 
 장 총리는 이 정보를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에게 넘겨 조사를 지시했다. 장 도영은 선우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 정보가 있으면 나한테 먼저 알려 주어야지'라고 항의한 뒤 '도대체 누가 제보자입니까. 나도 모르는 그 런 정보를 알다니'라고 불평했다. 장도영은 5·16쿠데타가 터지기 며칠 전에도 선우종원과 만나 식사를 같이 했다.
 
 5월16일 아침 혁명방송을 들었을 때 선우종원은 장도영이란 이름이 혁명지도자로 발표되는 것에 기가 막혔다.
 
 '난 장도영 총장을 믿소. 그는 내게 생명을 바쳐 충성하겠다고 다짐 까지했소.' '도대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쿠데타 음모를 꾸미다니요? 선우 형, 섭섭합니다.'.
 
 선우종원의 귀에는 장 총리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장 총장의 항의하 는 목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는 것이다. 5월17일 오후 선우종원은 장도 영총장의 공관을 찾아갔다. 부관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장도영은 선우 종원을 보자마자 지휘봉과 모자를 집어던지고는 돌아앉아 큰 소리로 울 더란 것이다(회고록 '격랑 80년'에서 인용).
 
 울고난 장도영은 이런 말을 하더란 것이다.
 
 '이건 민주당 정권이 정치를 잘못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젊은 장교들 이 박정희 장군을 내세워 구국일념으로 일어선 것입니다.'.
 
 선우종원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참으면서 가장 궁금한 점에 대해 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박정희 장군은 빨갱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 다면 우린 그의 손에 죽어야 합니까?' '그건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는 나이도 젊고 청렴해 부하들의 신망이 두터운 양심적인 군인입니다. 물론 사상도 건실하지요.'.
 
 선우종원은 장도영의 견장을 툭 치면서 '장 장군은 세 가지를 잘못 한 것같소'라고 한 뒤 욕을 퍼붓고는 '조심하시오'라고 충고한 뒤 나왔 다. 그 며칠 뒤 동향선배인 이용운 전 해군참모총장이 선우종원에게 전 화를 걸었다.
 
 '지금 장면 총리 측근들을 반혁명으로 몰아 잡아들이려는 모의가 진 행중이오. 빨리 피하시오.'.
 
 5월24일 선우씨는 헌병들에 의해서 연행되었다. '누구 명령인가'하 고 물으니 헌병들은 '장도영 장군의 명령입니다'라고 하더란 것이다.선 우종원은 반혁명 사건으로 사형 구형에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뒤 서대 문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여기서 그는 또 다른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장도영을 만났다. 2년3개월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그는 박정 희와 친해졌고 국회사무총장이 되어 여의도 의사당의 신축을 지휘했 다. 반전과 역전이 일상화한 한국 현대사의 정치무대, 그곳의 한 증언 자인 선우종원의 사례가 이젠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된 것인지도 확실하 지 않다. 5·16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좌익혐의로 시달리고 있었던 박정 희는 반공 검사의 대표격인 선우종원을 간첩으로 몰아 좌익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혼란시킴으로써 자신에게 씌워진 의심을 벗어던지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권력이 인간적 의리와 이념적 소신, 법치의 원 칙을 파괴해가는 현상은 민주화 시대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 기 때문이다.
 
 선우종원에게 피신할 것을 권했던 이용운은 박정희가 존경해마지 않 았던 이용문 장군의 친형이었다. 이용운도 며칠 뒤 혁명정부에 의해서 군부 숙청의 일환으로 구속되었다. 이용문 장군의 미망인 김 여사는 큰 아들 이건개(당시 서울법대 재학중)를 데리고 박정희 부의장을 찾아갔 다. 두 사람이 부의장 방에 들어섰을 때 박정희는 전투복을 입은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정희는 몸을 돌렸다. 이 때 이건개는 깜짝 놀 랐다. 지금 자민련 국회의원인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분의 얼굴에서부터 무릎까지 장풍과 같은 살기가 일종의 막처럼 덮여있었어요. 나는 그때 중국 무협소설을 읽고 있었어요. 문득 사람이 독한 마음을 먹고 정신을 집중하면 장풍이 생기는 모양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저에게 의자에 앉도록 권한 박 장군은 아주 심각 한 표정이었습니다. 말씀하시는 도중에도 살기의 막이 없어지지 않고 들락날락하더군요.'.
 
 김 여사는 구속된 이용운 장군의 선처를 부탁했고 박정희는 혁명에 대한 여론과 학생들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았다. 박정희는 이렇게 이야 기했다.
 
 '우리 군인들이 정치를 뭐 깊이 압니까. 단지 애국충정에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이용문 장군과 논의하던 대로 목숨 을 걸고 혁명한 것입니다.'.
 
 김 여사가 '건개 아버지 생존시에 누차 강조하시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받았다. 박정희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는지 무서운 표 정을 풀면서 웃었다. 그 순간 얼굴을 아지랑이처럼 가리고 있던 살기가 사라지더란 것이다.
 
 박정희는 '이번에 혁명을 주도한 장교들은 모두 이 용문장군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 장군 생존시에는 여러 번 구국의 방 법에 대해서 의논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잠시 추억에 젖었다. 박정희가 이 때 살기를 느끼게 할 만큼 독한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여러 번 신세를 졌고 은혜를 입었으나 지금은 경쟁자가 되고 있 는 장도영의 처리 문제였을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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