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은 김병수 원장과 김계원 실장 사이의 통화를 엿듣기 위해 김병수 원장의 수화기에 자신의 귀도 갖다대고 있었다.유 성옥은 원장실의 부속실 직원들에게도 '아무 것도 적지 말고 외부와 전화를 일체 걸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유성옥은 1심법정에서 '비서실장이 전화를 삼가도록 하라는 지시를 전화로 해와서 그렇게 했 다'고 증언했다. 김병수 원장은 김계원 실장이 자꾸만 '정중히 모셔라' 고 강조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럴수록 사체의 신원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다시 응급실로 가서 응급대 위에 놓여 있는 사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손대중으로 대충 금을 그어놓고보니 매우 작은 키였다.
김 원장은 최근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김영선 전 주일대사를 떠올렸으나 키가 맞지 않았다. 김 원장은 다시 상상력을 동원해보았다. 대통령의 정적이 저격을 당했나. 김영삼 이철승… 그러나 체구가 영 맞지않았다.
혹시 이북에서 온 요인이 아닌가. 과격한 경호실장에게 총을 맞은 것인가. 그렇다면 전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고 또 비서실장까지 나서 서 보안유지를 철저히 하는 판에 오히려 모르고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는 '일체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라'고 주의를 주 었다. 김병수 원장은 두 감시자에게 '사망진단서를 끊을 때 필요하니 엑스레이는 찍어두어야겠다'고 동의를 구했다. 두 사람은 거부하지 않 았다. 군의관들로 하여금 엑스 레이 촬영을 하고 오도록 했다. 송계 용 소령이 사체를 방사선과로 옮겨 촬영했다.
머리에 박혀 있는 총탄이 드러났고 가슴을 관통한 탄환이 등뒤 와 이셔츠에 잡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송소령은 김원장에게 '엑스레이 촬영을 끝내고 보니 와이셔츠 뒤에 권총 탄환 하나가 흘려져 있었습니 다'라고 보고했다. 탄알을 만져보니 원형이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는 이 탄알이 뼈를 건드리지는 않고 근육질만 통과했다는 뜻이었다.
김병수 원장은 '잘 보관해두라'고 지시한 뒤에 사체를 다시 응급실 로 옮겨오라고 했다. 김 원장은 '이 분 유품은 없나'라고 소리쳤다. 김 원장은 저고리를 찾고 싶었다. 저고리 속에는 분명히 신원을 알려 주는 수첩이나 명함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한 군의관이 '여기 있 습니다'라고 내어놓은 것은 세이코 시계였다. 찬 지 오래 된 것 같은 평범한 시계였다.
김 원장은 어쨌든 비서실장이 데리고 온 사람이니 고관은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응급대의 시트커버를 깨끗한 것으로 바꾸라 고 지시했다.
함부로 사체를 다루지 말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전화가 잇따라 걸려왔다. 국군 보안사 참모장 우국일 준장, 당직사령, 그리고 전두환 사령관도 전화를 걸어 '누구냐'고 캐물었다.
'각하냐.' '아닙니다.'.
'실장인가.' '아닙니다. 아는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옆에는 유성옥이 버티고 있었다. 청와대 비 서실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기에 원장실에서 전화기를 들었더니 끊어 져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실로 전화를 걸었더니 안계신다는 것이었 다. 전화를 받는 사람이 비상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몇 사람을 거 친 끝에 김계원 실장과 연락이 되었다. 이 시간에 김 실장은 육군본 부 벙커안에 있었다.
'어디다 모셨는가.' '그냥 그대로입니다.'.
'꼭 좀 잘 모시게. 그리고 깨끗하고 정중하게.' '예,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판단하기로는 가장 이상적 인 방법이 수도통합병원 영안실입니다. 거기가 아주 깨끗합니다.'.
'그건 안돼.'.
김 실장의 말은 단호했다. 이번에는 김 원장이 화가 났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좋아. 청와대 의무실로 모셔.'.
'그건 더욱 안됩니다. 각하가 쓰시는 곳인데…그건 절대로 안됩니 다. 하여튼 제가 정중히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김 원장은 한 해 전까지 청와대 의무실장으로서 대통령의 건강을 관리했었다. 실장과 통화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어떤 불길한 상상으로 확대되었다. 아무리 병원 일을 모르는 비 서실장이라고 해도 청와대 의무실로 사체를 옮기라니 그럴 수가 있을 까 하는 의심이 뇌리에 박혔다. 아무래도 사체의 신원을 확인해야겠 다고 결심했다.
김 원장은 명찰이 달린 하얀 가운을 벗고 양 어깨에 공군 준장 계 급장이 달린 항공잠바를 걸쳤다. 두 감시자를 계급으로 제압한 뒤 사 체의 신원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신체 특징 을 떠올리면서 다시 응급실로 갔다. 대통령의 사체는 숨이 끊어진 지 거의 세시간 동안 '이름 모를 변사체'로서 거기에 누워 있었다.
김 원장은 두 감시자에게 '흉부의 상처 처리 상황을 확인해야겠다' 고 말했다. 두 사내는 묵묵히 와이셔츠를 걷어 올려 사체의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김 원장의 눈에 그토록 익은 희끗희끗한 반점이 사 체의 아랫배에 나타났다. '각하다'란 생각과 동시에 김병수는 잠시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무의식 상태가 되었다.
정신이 다시 돌아오자 먼저 시계를 보았다. 밤 10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아직 통행금지시간까지는 많이 남아 있다는 계산을 했다. 비상소 집되어 병원으로 들어오는 군의관들이 많이 보였다. 우선 급한 것은 바로옆 건물에 있는 국군보안사에 연락을 취하는 것이고 동시에 다른 병력에게는 눈치를 채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김 원장은 다시 자신 의 사무실로 돌아와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몇년 전 여름에 저 도로 휴가를 갔을 때 대통령이 자신의 배를 보이면서 '김 박사, 이것 치료좀 안해줄래'라고 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유성옥이 그의 곁에 따라와 있었다. 전화 벨이 울렸다. 보안사와 직통되는 인터폰이었다. 전화기를 드니 우국일 참모장이었다.
'여러 가지 어렵고 위협적인 상황에 있는 것 같은데 답은 길게 하 지말고 듣기만 하되 가능하면 간단하게 '예스'냐, '노'냐로만 답해주 시오.' '알겠습니다.'.
'운명하셨나.' '예'.
'실장이야.' '아니, 그런 거 없습니다'.
이 말은 유성옥을 의식해서 한 것이었다.
'그럼 코우드 원(Code 1)이야.' '예.'.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