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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터뷰
 최초의 인터뷰
 
 혁명주체인 김형욱(중앙정보부장 역임) 중령과 홍종철(문공부 장관 역임) 대령은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과 같은 이북파였으나 장도영에 동 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장도영을 찾아간 자리에서 '의장과 내각수반 을 겸직할 수 있으면 되었지 참모총장과 국방장관까지 겸직하려는 것은 무리다'고 거듭 설득했다.
 
 장도영은 단념하지 않고 최고위원들을한 명 씩 불러 육군참모총장직을 계속 겸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행동 이 박정희-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에게는 자기 세력 구축작업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다시 박정희의 증언을 듣는다('장도영 일파 반혁명 사건'재판 때의 증언).
 
 '장도영 의장은 자신이 참모총장을 꼭 겸직해야겠다고 주장하면서 이주일 장군을 불러놓고 울기도 하여 과거의 장 장군 모습은 찾아볼 수 가 없었다. 나는 장 장군을 만나서 '내각 수반이 참모총장까지 겸해 가 지고서는 군을 바로잡기가 곤란하니 군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사 람에게 시키자고 했더니 장 장군은 '박 장군 당신이 내각수반을 하시오. 나는 참모총장으로 돌아가겠소'라고 말했다. 심지어 장 장군은 최고 위원들을 관사로 한 사람씩 불러 별별 소리를 다하고 발악하면서 나와 1대1로 해보자고 선전포고를 했다고 들었다.'.
 
 장도영은 설사 최고회의 의장 자리를 내놓더라도 육군참모총장 자 리는 고수하고 싶어했다. 혁명주체의 핵심인 문재준(혁명 후 육군헌병 감 취임) 대령이 보기엔 '군사정권의 민정이양 시기를 금년 11월로 구 상하고 있는 모양으로 그렇게 되면 민정이양 후에도 자기가 계속해서 참모총장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김종필은 이미 활동을 시작한 중앙정보부를 동원하여 6월1일에 장도 영의 측근인 김일환 전 대령 등 3명을 구속했다. 김씨는 육사 5기출신 으로서 신의주 동중학교를 졸업한 장도영의 후배였다. 육사 5기인 그는 인천지구 첩보부대장으로 있을 때인 1960년 4월 모종의 사건으로 해서 파면되었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있으면서 민주당쪽과 접촉, 장도영 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도록 하는 데 힘을 썼다고 한다. 학교 선배 인 장도영이 최고회의 의장이 되자 김일환은 타임지에 실린 박정희의 좌익전력에 대해 발설하고 다니면서 장도영을 밀어줄 인맥을 구축하다 가 6월초 김종필의 지시로 구속되었다. 혐의는 반혁명 음모. 김종필은 중앙정보부 조직안에 대해서 장도영이 결재를 미룰 때 장도영이 김일환 같은 사람들을 정보부에 심으려고 한다는 판단을 하여 일종의 선제 공 격을 한 것이다. 장도영은 박정희를 불러 '그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은 나를 구속하는 것과 같으니 내 얼굴을 봐서도 풀어달라'고 하여 김일환 등은 3일 뒤 석방되었다.
 
 김종필은 김일환과 정보국에서 함께 근무하여서 그를 잘 알고 있었 다. 그에 대해서 '대단한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일환 구속 사건은 박정희와 장 도영을 더욱 멀리 갈라놓는 단초가 된다. 김일환 등은 석방된 뒤에도 박정희 세력이 장도영 장군을 거세하려고 한다는 불평을 하고 다닌 혐 의로 또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박정희의 법정증언.
 
 '(그들은) 장도영이 참모총장직을 놓으면 허수아비가 될 염려가 있 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라도 군의 실권만은 자기들이 쥐겠다 등등 별별말을 다하고 돌아다니면서 육군의 실권만 쥐고 있으면 자기들 마음 대로 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만일 장도영측이 군을 장악하 였더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유혈사태가 생길 뻔하였다.'.
 
 군상층부에서 권력투쟁의 양상이 보이기 시작할 때인 6월3일 오후 4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박정희 부의장은 대구 매일신문 서울분실 정경 원 기자와 단독 회견을 가졌다. 5월23일에 외신기자들과 회견한 이후 처음이었다. 최초의 단독 인터뷰를 대구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한 것은 고향에 대한 배려인 것처럼 느껴진다. 박정희의 인간성이 솔직하게 드 러나는 인터뷰 기사의 전문은 이러했다.
 
 <기자=오늘은 동향의 선배를 대하는 마음에서 좀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대구 청수원아주머니의 안부도 전해드리고요.
 
 박정희=좋습니다. 청수원 아주머니한테는 신세도 많이 졌는데 편지 라도 한 장 해주어야겠는데…. 또 취재하러 왔소?. 나는 고향 친구라기 에 이야기나 좀 하고싶었는데.
 
 기자=박 장군이 군사혁명을 결심한 동기는?.
 
 박정희=과거 25년간에 걸친 군인생활을 통해서 나는 누구보담도 군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기성 정치인들에 게 정치를 맡겨놓으니까 꼭 망할 것만 같았어요. 아, 그래 국가 민족이 망해가는 판에 군이라고 정치에 불관여한다는 원칙만을 고집할 수 있겠 소? 그래서 최후 수단을 쓴 것뿐입니다.
 
 기자=이 정권하에서도 군사혁명의 기운이 있었다는데 이번 5·16혁 명의 직접적 동기를 좀….
 
 박정희=하기야 이승만 정권 때도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흥분한 일 부 영관급 장교단이 들고나서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4·19혁명이 일어 나 학생들에게 맡긴 셈이지요. 그건 그렇다 하고 이번 군사혁명의 직접 적인 동기야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장 정권이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팽개치고 무능과 부패로 일관해서 도저히 그들로서는 긴박한 위기를 타 개할 힘이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국민을 기아로 몰아넣은 그들의 무능도 무능이려니와 장면씨의 리더십이란 게 말이 아니었거든 요. 사실 혁명구호에도 있지만 이북 공산당의 간접 침략은 눈에 보일 정도였고 부패와 무능으로인한 경제파탄은 결국 국민을 극도의 불안과 부황증으로까지 몰아넣지 않았소. 이래 가지고야 군대인들 안심하고 국 토방위에만 전념할 수 있었겠소? 아닌 게 아니라 이러다간 1년 후에는 공산주의가 시골 농촌까지 침투할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판단했소.
 
 기자=간접침략을 분쇄하자는 혁명구호를 내걸 만큼 장 정권은 반공 에 무력했던가요.
 
 박정희=무력 정도가 아닙니다. 놀라지 마시오, 망할 놈들. 허, 이번 에 조사해보았더니 붉은 마수는 이미 장 정권의 장관급까지 뻗치지 않 았겠소(흥분한 박 소장의 두 눈에는 순간 불꽃이 인다).
 
 기자=아니 그게 정말입니까?(어안이 막힌 기자는 숨을 죽이고 박 장 군의 입만 지켜본다).
 
 박정희=그 선우종원(전 조폐공사사장)이란 놈하고 김영선(전 재무장 관)김선태(전 무임소 장관) 같은 자가 일본의 조총련을 통해서 공산당 의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니 더 말해서 뭘 하겠소. 더 구나 선우란 놈은 간첩임을 자백하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이 따위 놈들이 정권을 맡았으니 백성이 살 게 뭐요? 2,3일 후에는 사건 전모를 공표하겠지만 그밖에도 나는 감투와 돈과 이권에눈알이 뒤집힌 그들의 흑막을 낱낱이 천하에 공개할 방침이오.>.
 
 박정희가 말한 반공검사 출신 선우종원씨 관련 간첩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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