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축재 기업인 조사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연일 터트린 개혁, 숙정, 개조작업 중에서 부정 축재자 처리 문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5월28일 최고회의는 부정축재처 리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위원장은 이주일육군소장이었고 6명의 위원 을 두었다. 이 위원회는 기업인을 조사대상으로 하는 제1조사단과 부정 공무원을 조사대상으로 하는 제2조사단을 구성했다. 조사단 산하엔 12개 반, 각 반의 반장은 육군소령, 중령들이었다. 반원은 감사원 직원, 형사, 세무공무원으로 구성되었다.
부정축재조사반은 일본에 머물고 있던 삼성물산의 이병철을 제외한 우리나라 10대 기업인들을 포함한 11명을 모조리 구속하고 수사를 시작했 다. 국세청의 전신인 사세청 공무원으로서 이 조사단에 파견되었던 문병 항(현재 71세)은 이렇게 회고했다.
'부정축재처리법에는 6개 항목이 있었는데 제2항은 '부정한 방법으로 30만불 이상의 정부 또는 은행 보유외환의 대부 또는 매수를 받은 행위' 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원조 자금으로 들어온 외화를 둘러싼 부정 을 말합니다. 은행을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압력을 행사하여 기업인들이 외화 대부를 받도록 해주었습니다. 이자율은 저리였고 상환기간도 장기 였기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연 30%이던 당시엔 이 돈만 빌면 가만히 있어 도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 돈은 떼먹어도 환수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추적조사기법도 정착되어 있지 않았고 외환관리라는 개념이 서있지 않을 때였습니다. 기업을 조사해도 현금 출납이 장부에 제대로 적혀 있지 않으니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기업이란 것이 꼭 구멍가게처럼 운영되고 있었으니까요.'.
김종필총리의 증언에 따르면 기업인들을 잡아가두는 계획은 그의 구 상엔 없었고 최고회의에서 추진한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나는 실업인들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둑질도 해본 사람이 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씨를 만났는데 '지금 최 고회의에서 실업인들을 잡아 가두려는 모양인데 이거 안됩니다. 극동해 운 남궁연씨를 만나보세요'라고 해요. 그래서 내가 밤에 남궁연씨 집을 찾아갔습니다'.
남궁연은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혁명은 잘했습니다. 혁명이 잘 되려면 실업인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경제활동은 경제인들 스스로 하도록 해야지 정부가 너무 관여하면 안됩 니다. 정치인들도 비록 부정부패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의 지혜와 경험 을 활용할수 있어야 합니다'.
김종필은 최고회의가 실업인들을 구속한 다음날 박정희 부의장을 찾 아가 남궁연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구속을 철회해달라고 밤을 새워가면서 설득했다는 것이다.
'실업인들 말고 경제를 일으킬 사람들이 누가 있습니까. 경제에 대해 아는 사람을 모아보았자 학자들뿐이지 않습니까'.
박정희는 처음엔 '최고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한 건데 어쩌나'라고 하 다가 '나도 사실은 구속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내일 처리하자' 고 하더란 것이다. 김종필은 일본에 가 있던 이병철에게도 '안심하고 들 어오라'는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일본 동경에서 쿠데타 소식에 접한 이 병철은 이런 심경이었다고 한다.
<사회변혁이 있더라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적화의 우려는 없을 것이다. 혁명이 일어남으로써 도리어 정국이 안정될지 모른다. 한편으로 는 착잡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었다. 경제인 11명이 부정축재혐의로 구 속되었다고 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부정축재의 제1호는 동경에 있는데 우리들 조무라기만 체포하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옥중에서 불평했다는 말이 전해졌다. 빈곤 때문에 사회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그 빈곤 추방의 앞장을 서야할 경제인들을 차제에 잘 활용해야 할텐데 근본적인 해결책 은 등한시하고 무슨 목적으로 구속한 것일까>('호암자전'에서 인용).
일본 경시청은 이병철 사장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들을 붙여두 고 있었다. 6월4일 재일거류민단의 권일단장이 이 사장을 찾아와서 최고 회의의 말이라면서 귀국을 권하고 갔다. 며칠 뒤엔 혁명정부가 파견했다 는 청년 두 사람이 '즉시 귀국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삼성 동경지사에 연락하니 '본국에서는 사장님이 귀국하지 않아 모든 일이 수습되지 않고 구속된 경제인들도 귀국을 바라고 있습니 다'라는 말이 들렸다. 그는 최고회의 부정축재처리위원장 이주일소장 앞 으로 편지를 썼다. '호암자전'에 실려 있는 편지의 요지는 이러하다.
<부정축재자를 처벌한다는 혁명정부의 방침 그 자체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백하무익한 악덕 기업인들과, 변칙적이고 불합리한 세제아래서도 국가경제재건에 기여하면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생활을 안정시키 고 세금을 납부하여 국가운영을 뒷받침해온 기업인들과는 엄격히 구별되 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인을 처벌하여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빈곤추 방에 역행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나는 전재산을 헌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6월26일 밤에 항공편으로 동경에서 서울로 귀국한 이병철은 마중나온 중앙정보부 차량을 타고 명동 메트로 호텔로 갔다. 다음날 그는 중앙정 보부 서울분실장 이병희의 안내를 받고 박정희 부의장을 만나러 갔다.박 태준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넓은 방으로 들어가니 저쪽에서 검은 안경 을 낀 박정희가 걸어왔다.
<박 부의장의 첫 인상은 아주 강직해보였다. 지도자로서의 덕망은 어 떨까 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검은 안경의 박 부의장은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고생은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안부 인사부터 했다. 의외로 너무나 부드러운 음성에 안도감을 느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