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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필드 박사
 스코필드 박사
 
 6월8일 대법원 감독관으로 파견된 홍필용 대령은 대법관 전원을 해 임했다고 확인해주었다. 홍대령은 또 한 근무지에 5년 이상 근무한 법 원서기에 대해서는 전국적인 인사교류를 하고 축첩자와 고령자에 대해서는 해임 등의 방법으로 인사의 신진대사를 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 다.
 
 6월10일 현재 내무부 산하에서만 축첩, 즉 첩을 둔 공무원 5백10명 이 쫑겨났다. 이날 최고회의는 최고회의법, 중앙정보부법, 농어촌고리 채법을 공포하고 국가재건범국민운동본부장에 유진오 고려대 총장을 임명했다. 농어촌 고리채는 연 2할 이상을 의미하는데 채무자가 신고 하면 채권자에게 7년간 분할 상환하도록 규정했다. 인간관계가 고착된 농촌사회에서는 이 법의 취지대로 신고, 정리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6월12일 오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일곱명의 상임위원장을 임명했 다. 법제사법위원장에 이석제 중령, 내무위원장에 오치성 대령, 외무 국방위원장에 유양수 소장, 재정경제위원장에 이주일 소장,문교사회위 원장에 송찬호 준장, 교통체신위원장에 김윤근 해병준장, 운영기획위 원장에 김동하 해병소장.
 
 최고 권력기구인 최고회의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상임위원장으로 해병대 장성이 두 사람 발탁된 것은 5·16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 한 공이 인정된 때문으로 생각된다. 정부는 이날 미국 조지 워싱턴 대 학에서 공부하고있던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 다. 송 장군은 4·19혁명 직후 박정희-김종필이 주동한 정군운동의 소 용돌이에 휘말려 육군총장에서 물러나 도미했었다. 그는 5·16거사 소 식을 듣자마자 혁명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여 외신을 통해 국내 에 알려졌었다. 혁명의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을 때 태도를 분명히 한 그에 대해서 혁명주체들은 상당한 평가를 했던 것이다.
 
 14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960년도 대외 원조액은 45억달 러인데 인도가 가장 많은 원조 수혜국이고 한국은 2억4,000여만달러로 서 2위였다. 이날 렘니처 미 합참의장과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미 상원 외교분과위원회에서 증언하는 가운데 '60만 한국군과 함께 근무하는 6 만5,000명의 주한미군은 1인당 7,000달러를 쓰고 있다'면서 한국에 대 한 군원의 계속을 옹호했다.
 
 이날자 영자신문 '코리언 리퍼블릭'에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의 기고문이 실려 화제가 되었다. 캐나다 사 람인 스코필드는 일제시대에 한국에 살면서 3·1운동 때 우리 편을 들어 '34인중 한 사람'이란 별명을 얻었다. 특히 일제에 의한 수원 제암 리교회 학살사건을 조사하여 이를 해외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그는 4·19 혁명도 지지했었다. 박사는 코리언 리퍼블릭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서 한국인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다.
 
 <한 나라가 건강해지려면 그 국민들이 정직해야 한다. 한국에서 민 주주의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한번도 없었다. 오늘날 피동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군대의 기강이 국민의 마음 속에 침투되어 그들의 마음속에 자발적인 도의정신으로 확립되는 날 한국에서 비로소 민주주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이 당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실인사, 휘발유 빼먹기, 깡패, 탈세, 병 역기피, 졸업장 위조 같은 부패를 숙청하는 일이다. 지금 한국을 통치 하고 있는 군인들이 계속하여 국민에게 정직과 검소와 기강의 모범을 보여주고 공정하고 올바른 행정을 하고 정실을 배격하고 만민을 균등 하게 대우한다면 이 비극의 땅은 명랑하고 즐거운 땅이 될 것이다.>.
 
 당시 72세이던 스코필드 박사는 군사혁명이 무자비한 독재로 변질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전택부(현재 84세·YMCA명예총재)에게 이런말을 하더라고 한다.
 
 '박장군은 농민의 아들이고 정직합니다. 그는 부정부패 몰라요. 그 리고 아주 강합니다. 한국의 마지막 희망이 여기에 있어요.' 전택부는 일제의 탄압과 이승만 독재에 반대한 이 노인이 왜 박정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랐지만 일단 그의 박정희관을 받아들여보기로 했다고 한다.
 
 당시 전택부는 YMCA재건 작업을 주도하고 있었다. 어느날 스코필드 박사가 그를 부르더니 5달러를 쥐어주었다. 전택부가 '이러시지 않아 도 됩니다'라고 하자 스코필드는 '윤보선 대통령은 그동안 얼마나 지 원해주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돈을 주신 적은 없지요.' '그럼 이승만 박사는?'.
 
 '그 분도 돈을 주신 적은 없습니다.' '오, 안되요. 돈 없는 사랑, 사랑이 아니오.'.
 
 박정희는 전택부에게 1백50만환을 보태주었다고 한다. 반골노인 스 코필드 박사는 그 뒤에도 박정희를 지지하면서 충고하는 한편 구 정치 인들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다.
 
 6월15일 정부는 농업은행과 농협을 통합하라고 농림부에 지시했 다. 신용과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야 농촌경제에 실질적인 도움 을 줄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6일 정부는 주미대사에 정일권 전 육 군참모총장, 외무차관에 육군대령 출신의 외교관 이수영을 임명했다.
 
 17일 오후 혁명정부는 영장없이 연행했던 3,000명 이상의 용공혐의 자 가운데 우선 혐의가 벗겨진 664명을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수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육군방첩부대장 김재춘대령을 수사본 부장으로 하고 검찰과 경찰, 그리고 육본 법무감실을 참여시킨 중앙합 동수사본부를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6월17일 현재 지난 한달 사이 혁 명정부에 의하여 정리된 공무원들은 약 2만명에 달했다. 이날 내무부 는 공무원 정리요강 13개항을 발표했는데 정실채용, 불성실이란 사유 이외에도 '50세 이상의 고령자'가 정리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5·16 만큼 광범위한 세대교체는 일찍이 없었다. 19일 혁명정부는 병역미필 자를 공직에서 추방하는 내용의 특별조치법을 의결했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1960년12월1일 현재의 국세조사 결과 실업자는 전체노동인구의 약 16%인 23만명으로 나타났다. 혁명정부는 실업자직 업능력신고를 받도록 했는데 8만6,000명밖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런 낮은 신고율은 당시에 '실업자들을 모아 농번기의 농촌에 노력봉사인 원으로 투입한다'는 뜬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6월21일 혁명정부는 법원과 검찰에 대한 숙정을 확대하여 지방법원장급 이상 전판사와 검사장급 전검찰간부들로 하여금 사표를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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