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준의 울분
역사에 남을 만한 큰 사건도 깊게 따지고 들어가면 인간관계와 감정 문제에서 최초의 단서가 열린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7월초 혁명주체 내의 숙청사건도 그런 경우이다. 혁명당일 6군단 포병단 병력 1,500명을 이끌고 맨 처음 서울로 들어와서 육본을 점령했던 문재준대령은 격 정적이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5월21일 육군 헌병감으로 임명되자 문제가 많은 장교 45명을 강제예편시켰다.
며칠 뒤 그 가운데 한 사람 이 장교로 복직하여 정보부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 의아하 게 생각했다. 알아보니 김종필부장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렇게 되었다 는 이야기가 들어왔다. 문재준은 '이건 나를 모욕하는 처사다'라고 생 각했다는 것이다. 문재준의 두번째 불만은 김종오 신임 육군참모총장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다. 문재준이 결재를 받으러 갔더니 김종오는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제3 CID대장 김영우중령과 제15 CID대장 방자명중령은 너무 까불고 정치적으로 노는 인물이니 교체하시오.' '저는 헌병은 처음이고 아직 실정을 잘 모르니 시간을 좀 주십시오.'.
문재준은 그 길로 인사참모부장을 찾아가서 부탁했다.
'지금 CID대장들이 전국의 밀수사범 수사를 지휘하고 있으니 그 일 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문재준은 그 뒤로는 김종오 총장이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납득한 것으로 생각했다. 6월22일인지, 23일인지 김종오 총장이 문재준을 다시 부르더니 '인사참모를 만나면 알 것이다'고만 하 는 것이었다. 인사참모는 문헌병감에게 '총장님 지시사항인데, 헌병차 감 김시진대령, 김영우-방자명 중령, 그리고 황모 중령을 예편시켜라' 고 했다. 문재준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헌병 인사는 헌병감에게 맡겨야 합니다. 더구나 김시진 대령은 박 정희 부의장이 직접 부탁한 사람인데 이럴 수가 있나요.'.
인사참모는 '내가 총장에게 다시 말씀드려볼테니 너무 흥분하지말라' 고 달랬다. 며칠 후 박정희는 문재준을 부르더니 '총장을 잘 모시고 일 하라'고 타일렀다. 문재준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육사5기 동기 생인 공수단장 박치옥,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안용학, 내각수반 비서 실장 이회영대령이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문재준은 이런 말을 했다.
'김종오 총장이 나를 믿지 않고 내 수족을 자르려 하니 그러면 나도 손을 써야겠어. 김종오 장군은 원래 예편대상자인데 살아난 것 아닌가. 나는 예편심사위원인데 장군심사가 있을 때 그를 예편대상자로 넣어야 겠어.'.
문재준은 헌병감으로 부임한 후 장군들의 비행조사를 한 일이 있었 다. 3CID대장 김영우 중령이 과거 자유당, 민주당 시절에 조사한 자료 를 근거로 하여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 명단엔 김종오 총장도 포함되었 다. 문재준은 혁명정부가 부정부패, 무능 등의 이유로 일반 공무원들을 무더기로 내보내고 있는데 군도 자정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모범으로서먼저 헌병대의 숙정작업을 통해 45명을 퇴직시켰다는 것이다. 6월27일 최고회의 장성예편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문재준은 김종오 총 장의 비행을 열거하고 그를 예편대상자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사위원회의 부위원장인 이주일소장은 난색을 보였다.
'박정희 장군이 추천하여 총장이 된 분을 한 달도 안돼 내보낼 수 있나.'.
그래도 문재준은 완강하게 예편을 주장하면서 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표결에 붙이자고 버티었다. 표결 결과 김종오 총장은 예편대상자로 결 정되었다. 다음날 박정희 부의장의 결재를 받으러 가는데 입장이 난처 해진 이주일은 문재준더러 '같이 가자'고 했다. 박정희는 김종오 총장 의 예편건의에 반대했다. 이 자리에서도 문재준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 다. 박정희는 문헌병감을 설득하다말고 화를 냈다.
'자네는 성미가 과격해서 큰 일이야. 재심해 주어야겠어. 혁명은 너 혼자서 다 한 거야?'.
문재준이 물러서지 않자 박정희는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문재준은 울분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는 김종오 장군을 총장으로 민 사람은 김종필 정보부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부의장이 그 김종필의 말만 믿고 저런다고 확신했다. 격정적인 그는 존경하는 박정희가 자신을 믿 어주지 않는 것이 답답하여 사무실로 돌아와선 엉엉 울었다. 이때 김영 우,방자명 중령이 들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문재준은 '김종필이 모략을 써서 박 장군이 나를 믿지 않게끔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방자명 중령은 '그건 김종필보다는 그 아래에 있 는 권영수중령이 장난을 친 것이다'고 했다. 문재준은 이런 기분속에서 동기생 박치옥 대령을 전화로 불렀다.
'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12시에 최고회의로 와.'.
문재준, 박치옥 두 사람은 최고회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기 서 두 사람은 엄청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먼저 문재준이 대충 이런 취지의 말을 꺼냈다.
'김종필이가 모략하는 바람에 내가 오늘 박정희 장군으로부터 억울 한 책망을 들었다. 종필이가 권력을 남용하고 장난을 심하게 치는데 붙 들어다가 혼을 내고 보링을 좀 해주어야겠어.'.
박치옥도 일단 문재준의 반김종필 발언에 동조했다. 그도 김종필 부 장에 대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옥상에서 대충 이런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7월3일 새벽2시에 헌병대 병력으로 잠든 김종필을 체포한다. 그를 헌병감실로 연행한다. 이 연락을 받으면 박치옥은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중앙정보부 건물을 포위한다. 그런 뒤에 출근하는 박정희 장군에게 사 태를 보고한다.>.
문재준은 또 박정희에게 후임 정보부장으로 김윤근 해병준장을 추천 하고 정보부의 수사권을 박탈하자는 건의를 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공수단 김제민중령이 올라와 대화에 합류했 다고 한다(문재준의 군검찰 앞 진술). 문재준은 박치옥과 헤어진 뒤 헌 병감실로 돌아와 김영우, 방자명 중령을 불렀다.
'제15CID에서 20명, 제3CID에서 30명을 차출하라. 김종필을 혼내야 겠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