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소묘
권력자로 변한 박정희는 소박한 인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육 사 생도들을 혁명지지 시위에 동원하는 데 일역을 맡았다가 박정희의 경 호원이 된 육사 11기 이상훈(전 국방장관)대위는 광주에서 열린 혁명지지 대회에 참석한 박 의장을 수행하여 작은 호텔에 들었다.
한밤중에 호텔 문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데 화장실을 겸한 세면실에 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대위가 가 보니 박정희가 양말을 빨아 줄에 널고 있었다. 양말을 한 켤레밖에 신고 오지 않아 밤에 몰래 나와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위에게 들킨 박정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박정희의 양말과 관계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5·16당시 국무원 사 무처 보도과장은 국방부 보도과장 출신 이용상이었다. 혁명정부하에서는 공보부의 보도처 보도과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가 9사단 참모장일 때 그 밑에서 정훈부장으로 근무했던 이용상 시인은 계급을 떠나서 박정희 집안과 인간적으로 친밀했다.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이용상에게 박정희 의장과의 기자회견을 주선해달라고 졸랐다. 이용상은 장충동의 의 장 공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육영수가 받았다. 박 의장이 언제 돌아온다 는 것만 확인했다. 이용상은 중앙청 출입기자들을 데리고 무턱대고 장충 동으로 갔다.
박정희는 외출에서 돌아오더니 발을 씻고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회견 장소에 나와 의자에 걸터 앉았다. 이낙선 소령이 호주머니 속에 양말을 넣고 와서 박의장에게 귀엣말로 '사진기자들도 왔으니 양말을 신으시지요' 라고 했다. 박정희는 큰 소리로 '발은 찍지 말라고 해!'라고 하면서 끝까 지 맨발로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일보 윤종현기자가 '박의장님은 주량이 어느 정도입니까'하고 물었다.
'내 주량은 여기 있는 이용상 동지에게 물어보시오.'.
윤기자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이용상 과장의 주량은 우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묻는 것은 의장님의 주량입니다.' '아마, 이용상 동지 주량은 여러분들도 잘 모르실 겁니다. 이 분은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가는데 일주일이 걸리는 사람이에요. 중간, 중간에 있는 술집을 다 들러야 하거든요.'.
5·16혁명 직후 박정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는 홍득만 중사가 있다. 현재 69세인 그는 5·16이 났을 때는 육군참모차장 실 선임하사관이었다. 그는 1952년 박정희가 대구에서 육본 작전국 차장 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그 밑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했다. 어느 날 일직사 령 박정희 대령이 사병들을 집합시켰다. 홍중사가 '집합 완료'를 보고하 자 박정희는 '전원 모자 벗어!'라고 명령했다. 사병들의 두발상태가 불 량함을 확인한 박대령은 '가서 가위 가져와'라고 했다.
박정희는 두발 상태가 가장 단정한 홍중사의 머리칼을 싹둑 자른 뒤 '해산시켜'라고 하고는 아무 말도 없이 들어가버렸다. 홍중사는 박대령 에게 찾아가서 '명색이 제가 하사관인데 이렇게 하시면 부하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하고 하소연을 했다. 박정희는 웃으면서 '그럴 거 야. 지금 사병들이 뭘 하고 있는지 한번 보고와'라고 했다. 홍중사가 막 사로 내려가보니 텅 비어 있었다. 사병들이 모두 이발하러 갔다는 것이 었다.
하사관이 억울하게 혼이 나는 것을 본 사병들이 알아서 한 것이었다.
홍 중사가 '이것도 지휘통솔법입니까'라고 하니 박정희는 '바로 그거 야'라면서 씩 웃었다. 5·16이 터지자 홍 중사는 바로 곁에서 박정희를 시중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박정희는 최고회의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잠을 언제 자는가 싶을 정도로 항상 깨어 있고 일하고 있었다. 박 정희는 야전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면 아침 신문부터 꼼꼼히 읽었다. 그 다음엔 중앙정보부, 육해공군 정보부대에서 올라온 각종 보고서들을 뜯 어 밑줄을 쳐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진정서와 건의서들을 읽 었다. 보고서를 읽느라고 아침을 생략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육영수가 신당동 근무 박환영 중사를 시켜 꿀 한 병과 잣 한 봉지, 그리고 양주 한병을 보냈다. 박정희는 홍중사가 있을 때만 잣 몇 알을 입에 털어넣은 뒤 양주 한 잔을 얼른 마시곤 했다. 꿀은 가끔 한 숟갈씩 퍼먹었다.
혁명의 성공으로 박정희의 신당동 생활은 곧 끝나게 되고 육영수의 생활도 많이 바뀐다. 육영수의 사촌동생인 송재관(전 어린이회관관장· 64세)은 그때 평화일보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부 쿠데타 소식을 듣 고 사촌매형이 앞장을 섰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한 반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육영수가 송재관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 회사 끝나고 우리 집에 들려줄테야?'라고 했다.
'무슨 일이죠?' '나, 지난 번에 돈 탄 것 가지고 집 수리했어.'.
그날 퇴근길에 신당동에 들렀더니 육영수는 처마 끝에 플라스틱 차양 을 덧대어 놓고 자랑하고 있었다. 곗돈을 타서 마음먹고 만든 것이었다.
그런 평범한 주부이던 육영수에게 송재관은 5월17일 전화를 걸었다.
'아니, 매형은 왜 앞장 서서 그런 일을 했어요?'.
송재관은 사촌누님으로부터 '그러게 말이다…'란 말을 기대하면서 위 로의 말을 준비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육영수는 정치나 시국같은 데에는 무관심하던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육영수는 정색 을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동생 무슨 소리야?' '아니, 매형이 위험한 일에 가담하셨기에…'.
송재관은 순간적으로 '내가 말을 잘못 했나'라고 생각했다. 육영수의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상이 온통 부정부패로 물들고 혼란에 빠진 채로 국민들이 어떻게 살겠어? 그냥 그대로 간다면 나라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송재관은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이상하다. 저 누님이 언제 저렇게 변했나'라고 중얼거렸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