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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장도영의 마지막의 대좌
 박정희-장도영의 마지막의 대좌
 
 6월28일 사무엘 D 버거 신임 주한미국대사는 오후 2시 박정희 최고 회의 부의장을 방문한 후 오후 4시엔 중앙청으로 장도영 내각수반을 찾아 환담했다. 이날 이 면담을 전하는 신문기사는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 이란 호칭을 빼고 내각수반이라고만 썼다. 사실상 박정희를 1인자로 대 우한 보도태도였다.
 
 이 무렵 장도영은 '주체세력내의 갈등이 위험한 단계로 치닫고 있다' 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박정희 부의장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여 부관을 보내 중앙청의 총리실로 와 달라고 했다. 저 녁 8시경 두 사람은 장도영의 집무실과 붙은 부속실에서 대좌했다. 장 도영이 먼저 입을 뗐다.
 
 '공수단 병력이 서울시내에서 철수하고 중앙청 주변도 이제는 평온 을 되찾아 좋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이제는 병력을 서울에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 다.'.
 
 '지금 혁명세력 안에 틈이 생겨 알력이 점점 심해진다고 하는데 박 장군이 잘 장악해야 할 것이고 박 장군을 중심으로 잘 단결해야 혁명과 업을 성취할 수 있을 거요.'.
 
 '그 문제는 저도 많이 듣고 있는데 그 내용을 알고보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이 과장해서 유포시키고 있는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지금 혁명과업이 너무 광범위하고 과격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가 최초에 결정하기로는 이 비상기간을 가급적 단축시키 고 그럼으로써 개혁업무도 축소하여 명확한 성과를 거두자는 것이 아니 었소?'.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소위 혁명인데 손을 안댈 수 없는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박 장군은 이 혁명기간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지금 그런 것을 정해놓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혁명과업의 진척 에 따라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군사혁명을 애국적이고 명예롭게 성취하려면 기간도 짧아야 할 것이고 또 단시일내에 할 수 있는 과업들을 잘 선택하여 명확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중요해요.'.
 
 '그럼 혁명기간이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생각으로는 6개월 정도가 어떨까 하나 만일 질서를 바로 잡기에 너무 짧다면 1년 정도에 종결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현재 혁명주체라 는 사람들은 일선에 나가서 사단장이나 연대장을 잘 해주어야 할 사람 들인데 그들이 이 나라의 최고 권좌에서 1년 이상이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면 나중에 비록 그들이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가 없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들의 식견으로 봐서도 장기간 집권하여 정치를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오.'.
 
 이 대목에서 박정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고 한다.(장도영 '회고록').
 
 '1년간에 무슨 혁명을 합니까. 우리가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한 것은 이 나라를 바로잡고 청신한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상으로는 그렇게 빨리 개혁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장도영도 정색을 하고 따졌다고 한다.
 
 '그럼 여지껏 우리가 결정하고 추진해온 기본방침인, 조기민정복귀는 어떻게 되는 것이고 박 장군 자신이 언명한 행동부대의 조속한 복귀와 조기선거는 허언이었단 말이오.'.
 
 박정희는 말문을 닫았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장도영이 이 침묵을 깼다.
 
 '한 2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소?' '5년이고 10년이고 일을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지 도중에 중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참 있다가 장도영이 말했다.
 
 '나는 5·16 후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비상사태 수습에 전력을 다했고 6월6일로서 나의 임무도 사실상 끝났으니 나는 이제 뒤로 물러나겠소.'.
 
 '이제부터는 행정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더 많이 해 주셔야 할 단계에서 자꾸만 물러나신다는 말씀을 하시니 이해할 수가 없 습니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가 없어요.'.
 
 두 사람의 대화는 이로써 끝났다. 장도영의 기억에 따르면 대화의 시 작은 부드러웠는데 나중엔 의견이 상충된 가운데 냉랭하게 헤어졌다고 한다. 밤10시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작은 방에서 얼굴을 맞댄 채 주고받은 대화였지만 이 군사혁명의 역 사적 의의와 기본방침, 그리고 과업수행에 있어서 나와 박 장군의 상이 점은 너무도 많았고 또 컸다.>마지막이 된 박정희-장도영 두 사람의 대 화가 있었던 날은 6월30일이었다.
 
 7월2일 저녁 무렵 내각수반실이 있는 중앙청 주변은 심상치 않은 분 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내각수반 비서실장 이회영대령은 김종필 부장을 붙들어가서 혼내 주려던 헌병감 문재준과 공수단장 박치옥의 계획이 탄 로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중앙청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오가는 것 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이회영은 계산을 해보았다.
 
 '나는 신분이 내각수반 비서실장이고 문, 박 대령을 말렸으니 붙들려 가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인데 이희영은 곤란할 걸.'.
 
 이회영과는 육사5기 동기생인 전 육군방첩대 서울지구대장 이희영은 5월15일 밤 박정희를 감시, 미행하도록 지시했던 인물이다. 이회영은 신 문지를 찢어 '오늘밤은 집에서 자지 말게'라고 쓴 다음 그것을 또르르 말아 운전병을 시켜 이희영의 집으로 보냈다. 이 쪽지를 받은 이희영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피해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희영은 내각수반실로 나가보았다. 아직 장 도영은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장도영, 이회영, 이희영 세 사람은 수반실에서 두 시간가량 얘기를 나누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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