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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수난
 기자들의 수난
 
 박정희는 생래적으로 기자를 싫어했다. 2군 부사령관 시절에 이런 일 이 있었다. 대구 주둔 공병부대 대대장 장동운 중령이 모 신문사 기자가 기름 유출과 관련된 약점을 잡고 따지고 들자 구타를 하여 중상을 입혔다. 당시 2군 사령부 CID대장은 방자명 중령. 기자들이 단체로 몰려가서 방 대장에게 항의했다. 방 중령은 이주일 참모장에게 찾아가서 사건을 보고했다. 이 참모장은 '기자를 때렸으니 큰 일이 아니오. 어떻게든 수 습을 해야지'라고 걱정했다. 방 중령은, 박정희 부사령관에게도 보고를 올렸다. 박정희의 표정은 딴판이었다. 평소 과묵하던 그의 표정은 동감과 통쾌감까지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거 잘했어! 젊은 장교들은 그런 기백이 있어야 해. 요즈음 신문기 자놈들 정말 안하무인이거든. 잘했어, 정말 잘했어!'.
 박정희는 '잘했어!'를 연발하면서 껄껄 웃어댔다. 박정희는 혁명 성 공 직후 부산을 방문하여 재부장성급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여기서도 그는 사이비 기자들을 척결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부산일보 김종신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후죽순식으로 쏟아져 나와 민정을 어지럽히는 사이비 언론기관도 차제에 정리되어야 하겠습니다. 부산에서만 하더라도 기지창 철조망근방 에 얼씬거리며 군인들의 등을 쳐먹고 사는 치들이 많은데 그게 무슨 기자란 말이오. 당무자는 그러한 자들을 가차없이 처벌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다가 김종신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박정희는 미안한 듯이 '김 기 자는 제외야. 김 기자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마!'라고 말하면서 눈웃음을 보냈다. 이런 박정희 치하에서 기자들 이 당하기 시작했다.
 
 6월초 윤보선 대통령의 '조기 민정 이양'을 희망하는 기자회견을 보 도했다가 구속된 동아일보 정치부 이만섭(국회의장 역임), 이진희(문공 부장관 역임) 기자에 대해서 윤 대통령은 부담을 갖고 있었다. 7월초 서 울 외곽지역을 도는 교외선 개통식과 시승식이 있는 날이었다. 김준하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귀띔했다.
 
 '각하께서 오늘 박 의장을 만나시면 꼭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를 석방 해달라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박 의장 및 관계관들과 같은 칸을 탔다. 그는 박정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만섭 기자 석방건을 넌지시 꺼냈다. 그러 자 박정희는 옆 칸에 타고 있던 김종필 정보부장을 불렀다.
 
 '김 부장, 동아일보 기자를 구속한 일이 있는가?'.
 
 김 부장이 '예, 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이 지난번 청와대 기자회견 때…'라고 말을 흐리자 박 의장은 즉시 지시를 내렸다.
 
 '그랬던가? 윤 대통령의 부탁 말씀이니까 곧 석방하도록 해.'.
 
 7월 15일 아침 서빙고동에 있던 육군 형무소로 최고회의 원충연 공보 실장이 지프를 몰고 나타났다. 이만섭, 이진희 기자를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면서 그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 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고 위 로했다. 이만섭 기자는 2년 뒤 대통령 선거 직전엔 공화당에 입당, 박정 희편에 서서 윤보선을 공격하는 입장이 된다.
 
 6월 18일에 민국일보 정치부장 조세형(국민회의 대표)이 혁명정부에 구속되었다. 혁명공약 제6항 때문이었다. 6항은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 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 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슬 며시 바뀐 것이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운운'이 빠지고 '민주공화국 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경주한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민국일보가 보도하자 최고 회의 에선 '그것은 민간인용'이라면서 조 부장을 구속했다. 조세형 부장이 중 부경찰서 유치장 감방에 들어가보니 김대중 민주당 선전부장, 혁신계 민 족일보 조용수 사장, 고려대 이건호 교수 등 8, 9명이 붙들려 와서 방이 비좁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서대문 형무소로 옮겨진 조세형은 뒤에 붙들려온 민주당 시절의 내무 장관 신현돈, 자유당 때 농림부장관 정재설과 같은 방을쓰게 되었다. 신 현돈은 조세형을 상대로 장면 정부를 무자비하게 난타한 언론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신 장관의 설명에 의하면 언론이 도를 지나쳐 모처럼 민주적으로 수 립된 제2공화국 정부까지도 자유당 독재정권을 대하듯 사뭇 부정적이고 사사건건 반대론으로 매질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 언론문제가 민주 당 각의에서까지 여러번 이야기 대상이 되었으나 그때마다 장면 총리가 맨앞장을 서서 '정부가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 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신 장관은 정치적인 후진상태에서 민주주의 하 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미처 몰랐다며 앞으로 한국이, 진짜 민주주의, 진짜 자유를 누릴 때 국민과 언론이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인지 한 번 심각히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조세형은 언론계 대표는 아니었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조세형은 1985년 12월호 월간 조선에 기고한 회고담을 이렇게 끝맺었다.
 
 <자유당과 민주당과 신문기자가 모인 감방 안에서는 연일 시국토론이 벌어졌다. 네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신문이 잘했느니 하다가도 결 국 결론은 모두가 잘못해서 군사 쿠데타를 만나 이 꼴이 되었다고 탄식 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이승만 박사가 조금만 더 잘해서 민주주의의 기틀만 잡아주었어도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 하였고, 민주당이 조 금만 더 줏대 있게 정치를 했어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든 가,신문이 조금 책임있게 모처럼 만난 민주주의의 기회를 잘 살려주었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자성론으로 기울어지기도 했다.
 
 7월 20일이었으니깐만 31일 만에 나는 풀려났다. 최고회의 공보실장 원충연 대령이 직접 차를 가지고 와서 나를 태우고 신문사까지 데려다주었다.담 요를 싸들고 감방을 나서는 이 신문기자를,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한 자유당 장관과 한 민주당 장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그들은 나보다 몇달씩 더 고생한 뒤 풀려났지만 그들이 속했던 자유당과 민 주당의 민간정치는 역사의 허공 속으로 흩날려버린 것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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