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국교정상화
1961년7월18일 미CIA가 작성한 '한국에 대한 특별정보판단서'는 농촌 에서 혁명정부의 지지도가 높은 반면 지식층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강압 적인 정책 때문에 이승만 정부보다도 나을 게 없다는 식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 보고서는 또 '학생들이 주동이 된 봉기가 일어나도 군사정권은 신속하게 폭력적으로 이를 진압하고 탄압을 가중시킬 것이다' 고 전망했다.
8월3일 주한 미국대사 사뮤엘 버거는 국무부에 이런 요지의 건의를 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한일 양국의 수상에게 친서를 보내 가장 강력한 표 현으로써 국교정상화 회담에 임하도록 촉구해주었으면 함. 이 친서엔'한 일 양국의 우호관계는 공산세력에 대한 우리의 공동방어전략에 필수적이 다. 한국이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데도 한일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해주기 바람.>.
버거 대사는 또 '국회와 언론으로부터 견제를 받지 않는 군사정권은 국교정상화 문제에 대하여 신속하고 결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장점 이있다'고 분석했다. 이즈음부터 미국은 한국에서 군사정권이 등장한 것 이 동아시아의 대소방어선 강화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기 시작한다. 6월5일에 워싱턴의 '대한긴급대책반'이 작성한 한국 사태 관련 보고서에 부속문서로 붙어 있는 '한국의 군사정세에 대한 미 국방부의 평가'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와 한일 국교정상화가 미국의 대소 전략에 왜 중요한지를 이런 요지로 상세히 설명했다.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의 안보는 큰 위협을 받게 된다. 강력한 한국은 일본을 중공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소련의 위협에 대해 서도 어느 정도 균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동북 아시아의 강력한 반공 보루로서 중공의 영향권 안에 있는 다른 곳(특히 동남아시아) 에서 적의 위협이 발생할 경우 미군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신축성을 보장해주고 있다.
한국군의 가장 큰 자원은 전투경험이 있고 임금이 낮 으면서도 사기충천한 인력이다. 한국군 병력을 지금 수준 이하로 줄이면 적의 침략을 받았을 때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핵무기 사용을 검토할 수 있게 하는 시간적 여유를 빼앗아 갈 것이다. 더구나 한국군의 상당한 감 축으로 초래된 군사력 균형의 상실을 보전하기 위해서 비무장지대 가까 이에 전술핵무기를 추가로 배치해야 할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전술핵의 추가배치'란 말로써 1961년 이전에 한국에 전 술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기습을 받았을때 '적군을 압도하고 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동맹관계를 유지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 다. 미 국방부의이 보고서는 한일 국교정상화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 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한국과 일본 기지에 있는 한국군과 미 군의 항공기들은 적의 공격에 노출될 것이다. 일본정부는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의 사용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사전 협의를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있는 미 공군기지를 전시에 사용할 수 없다면 효과적인 공군 지원은 어려워질 것이다. 왜냐 하면 한국기지, 오키나와, 항공모함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화해는 한국의 방어 에 일본의 국익이 걸려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게 될 것이다.>.
소련-중공-북한의 3각 동맹체제에 대한 미국-한국-일본의 대응체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한일 국교정상화가 필수적이란 전략적 판단에 기 초하여 미국은 한일 양국의 등을 떼민다. 1961년 6월20일 워싱턴에서 열 린 케네디 대통령과 일본 이케다 수상의 정상회담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한일국교정상화를 촉구한다. 최근에 비밀이 해제된 두 정상 사이의 대화 록에는 또 이케다가 한국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 다.먼저 이케다 수상이 말한다.
'40년간 한국을 통치해본 경험에 의하여 일본은 한국인들이 멋대로이 고 배타적이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국과의 국교정 상화에 대해서 일본으로서는 최근의 쿠데타 때문에 할 일이 별로 없다. 우리는 한국의 내정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므로 미국이 민간정부로의 복 귀를 위해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우리도 민정으로 복귀할 것을 희망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 상당한 원조를 해주었지만 심각한 경제위기로 해서 내세 울것이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등장한 군사정부의 민족주의적인 열정과 일본 국민들의 거부감으로 해서 한일 국교정상화가 어렵다는 것은 잘 알 고 있지만 양국사이의 그런 정상화는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미 국이 가진 대한정책의 한 요점은 두 나라가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한국의 전력개발을 지원해주면 도움이 많이 되겠 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에도 매우 불리한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수상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일본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볼 때 한국의 안보문제는 사실상 일본의 국내문제이다. 일본은 한국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현 정부가 반공주의라는 이유만으로써도 이 정부를 지지하고 싶 을 정도이다. 현재의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은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 것이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대공방어망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일 국교정상화 를 갈망했지만 이승만정권 시절엔 이대통령의 반대로,장면정부 시절엔 정권의 조기붕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처음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였다. 쿠데타를 모의할 때부터 박정희는 만 약 미국이 원조를 끊으면 일본의 지원을 받아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생각 을 갖고 있었다. 미국이 한일 국교정상화를 갈망하는 만큼 박정희는 미 국에 대해서 하나의 카드를 쥐게 되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머지 않아 월남파병이란 또 다른 카드를 쥐게 된다. 미국이 절실하게 원하는 한국군의 월남파병과 한일 국교정상화가 한미간의 외교 상 주제가 되어 있던 1960년대의 두 나라 관계는 안정되었다. 한미 상호 방위조약이란 우산과 외교적인 안정을 기반으로 하여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면서 경제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