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극찬
미국이 박정희 정부를 압박하는 데 써먹은 가장 중요한 수단은 '빨리 민정이양 일정을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1961년8월11일 딘 러스크 국무 장관은 정일권 주미대사를 초치하여 이 문제를 논의했다.
'우리는 친구 사이니까 며칠 안으로 귀국의 정부에서 결정할 문제에 대하여 몇 마디 하고자 합니다. 지난 6월에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의 흐 루시초프 의장과 회담을 가졌을 때 흐루시초프는 이런 위협을 했습니 다. '소련은 전세계의 인민정권들을 지원할 것이다. 공산주의가 이런 나 라들에서 정권을 잡는 것은 역사적으로 필연이다.' 이에 대해서 케네디 대통령은 이런 반박을 했습니다. '자유선거를 통해서 공산정권이 성립된 나라가 없지 않는가.' 흐루시초프는 한국을 지칭하면서 현정부의 군사적 인 경향때문에 밑으로부터의 압력과 침투에 취약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은 유엔을 구성하는 나라들의 여론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나는 귀국 정 부가 (민정이양으로 가는) 선거날짜를 1963년으로 멀리 잡아놓을까 우려 합니다. 1962년 가을의 유엔총회 직전으로 선거날짜를 앞당기는 것이 어떨까요.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선거일정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것 이 낫겠습니다. 왜냐하면 1963년에 선거를 하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한 국정부는 선거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할 것이니까요.'.
이 대목에서 배석하고 있던 매카나기 차관보가 반대 의견을 냈다.
'한국인들은 분명한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단히 실망할 것입니다.'.
러스크 장관은 즉시 자신의 제의를 취소했다. 그 대신 정일권 대사에 게 '1963년에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발표하면 한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 일까요'라고 물었다. 정일권은 '나는 4년간 고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러스크는 거듭해서 '선거일정 을 결정할 때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처할 상황을 감안해주었으면 한다.많 은 나라들이 한국이 헌정질서로 복귀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8월12일 박정희 의장은 '1963년3월 이전에 헌 법을 개정하고 5월에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헌법은 대통령중심제에 단원제로 한다'는 민정이양 시간표를 발표했다. 미국은 다소 불만이 있 었으나 어쨌든 민정이양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에 한미 관 계는 정상화된 셈이었다. 박정희-케네디 정상회담도 이 무렵 확정된 다. 이와 함께 박정희 정부를 보는 미국의 평가도 개선된다. 1961년10월 28일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가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은 혁명정부에 대한 극찬으로 변해 있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지 다섯 달이 되었다. 이 정권은 권위적이고 군 사적인 면에서 대외적인 인상이 다소 나쁜 면이 있긴 하지만 정열적이고 성실하며 상상력과 의지력으로 꽉 차 있다. 이 정권은 일반 국민들로부 터는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고 대중적 지지 기반도 없지만 진 정한 의미의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작하여 전면적이고 본질적인 개혁을 하고 있다. 전정부하에서 토의되었거나 구상되었던 개혁 프로젝트들 은 행·신용정책,무역, 실업자들을 위한 공공 공사의 확충, 탈세대책, 농업 과 노조 대책, 교육 및 행정부문, 복지(교도소의 개혁, 윤락녀 재활대책, 가족계획사업, 상이군경과 유자녀 지원)등이 실천되고 있다. 많은 개혁 은 긍정적이고 상당수는 미국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들이다.
몇몇 개혁들은 뜻은 좋았지만 너무 급히 서두는 바람에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혁명정부는 그런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매점매석행위, 뇌물, 정경유착, 밀수, 군사물자 횡류, 깡패, 경찰 과 기자들의 공갈 행위에 대한 군사정부의 단속은 이미 효과를 내고 있 다.공산당의 침투공작에 대한 사찰활동과 반공선전의 질과 양이 모두 증 가 했다. 군인출신 장관들은 행정을 유능하고 효율적으로 지휘함으로써 우리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과로로 인하여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 아 문제이다. 송요찬 내각수반은 근 한 달간 건강이 좋지 않았다. 가장 유능한 장관중의 한 사람인 정래혁 상공부장관은 내각회의중 쓰러졌다가 2주간의 휴식을 끝내고 현업에 복귀했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두 달간 휴식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박정희 의장 도 과로로 인해 피로한 상태이다. 유능한 장관들의 효율성은 그러나 최 고회의와 내각 사이에 기능과 책임의 분명한 구분이 잘 안되어 있어 다 소 약화되고 있다. 몇몇 최고회의 위원들은 내각의 결정을 뒤집고 간섭 하며 군인출신 장관들 가운데는 내각수반을 젖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 다. 송요찬 내각수반은 최고회의의 기능을 입법활동에 한정시키고 내각 이 행정을 전담하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쿠데타에 처음부터 가 담한 사람이 아닌데다가 이정권 때의 경력과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 때문에 명령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의 태도는 방관자적 이다. 이런 태도는 비관적인 태도와 구별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한국사 람들이, 특히 지배층이 장기간에 걸쳐서 유능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뿌 리깊은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다. 이 혁명이 어느 길로 갈 지를 예측하기 는 너무 이르다.
최고회의 안에서 고질적인 분파주의가 생기고 있다는 증거 도있다.지 난 9월에 가장 심각한 사건이 있었다. 즉, 김종필정보부장과 대령급들이 함경도 출신 장성들을 거세하려고 했던 것이다. 박정희 의장은 그런 내 부권력투쟁을 막겠다는 뜻이 확고하여 상황은 안정을 되찾았다. 부정부 패가 상부층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조짐도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 서도 박정희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 부정사례를 공개하여 무자비하게 처리하겠다는 자세이다. 박의장에게 많은 것들이 달려 있 다. 그는 가장 냉정하고 믿음직하며 안정되어 있는 지도자이기 때문이 다.>.
사뮤엘 버거 대사는 진로를 확실하게 잡은 혁명정부의 두가지위험 요 소는 내년도의 물가폭등 가능성과 김종필 정보부장의 독주라고 분석했다.
<정보부는 정부의 파숫꾼으로서 광범위한 조직을 갖고서 감청, 정보 망 운영, 우편 검열, 영장없는 구금, 자백 강요을 일삼고 있다. 정부, 군부대, 우리 대사관, 그리고 최고회의와 내각 요인들도 정보부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박정희도 이런 부작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나 모반을 탐지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서 김종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