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강성국 대표는 기습적인 제안에 속으로는 당황했다.그리고 나름 대로 계산을 해보았다고 한다.
<오는 11월에는 박정희 의장이 미국을 방문하여 케네디 대통령 과 정상회담을 갖기로 되어 있다. 이런 시점에서 북한은 한미간을 이간질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상적인 의심 을 받고 있는 박정희 의장이 미국 몰래 북한과 정치적인 접촉을 하 고 있다는 것이 폭로되면 미국은 혁명정부를 의심할 것이고 모처럼 마련된 한미간의 관계정상화 기회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절대로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으로의 격상에 동의해서도, 박정희 의장 명의의 신임장을 약속해서도 안된다.>.
생각을 정리한 강성국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당신네들은 어쩌자고 이렇게 성급합니까. 십리길도 첫 걸음부 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만나서 네 가지 의제를 해결한 다음에야 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선 쉬운 문제부터 풀어나갑시다.' '우리들의 회담을 정상회담으로 끌어올리게 되면 시간도 단축되 고 남북 인민의 여망에도 부응하는 길이 될텐데 반대하는 까닭을 모르겠습네다.' '정상회담이 소득이 없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 또 옛날로 돌아가자는 얘기입니까.'.
이런 말씨름 끝에 양쪽은 지금대로 회담을 계속하기로 했다. 북 한이 박정희 의장의 신임장을 가져오라고 한 이유는 남한 대표단의 성격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첩보 부대에서 이 공작을 지휘했던 한 인사는 이 남북비밀 접촉기간중 북한은 간첩을 내려보내 이 회담에 임하는 한국측의 의도를 알아내려 했다고 증언했다.
이 간첩은 위장자수한 뒤 남북간에 비밀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흘려 우리측의 반응을 떠보려 했다고 한다. 우리 정보기관에선 이 간첩을 잘 대우한 뒤 북한으로 돌려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이 접촉기간에 북한은 또 황태성을 밀사로 내려보내 김종필-박정희와 직접 접촉하려고 시도한다. 미국이 박정 희의 사상과 정책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었듯이 김일성도 한때의 좌익 박정희에 대해 기대와 의문을 품고서 여러 갈래의 타진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김종필 총리는 최근 '그 남북접촉은 첩보부대에서 독자적으로 정보수집 차원에서 한 것이지 아무런 정치적 목적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첩보부대의 공작에 말려든 북한은 미심쩍어 하면 서도 회담은 계속했다.
제3차 회담은 강화도 건너편에 있는 불당포에서 있었다. 강화도 에서 직선거리로 4km 남짓한 포구였다. 이날도 북한측은 남한측 두 대표의 신분확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북측 수석대 표 김모는 '나는 사실은 김일성 대학 교수요. 그런데 당신의 진짜 신분은 뭐요'라고 강성국에게 일침을 놓았다. 강성국이 반격했다.
'기관 대 기관끼리의 대화에 왜 교수가 나옵니까. 그런 식으로 회담을 진행하니 이 회담이 질질 시간만 끌고 있는 게 아닙니까.' '강 선생, 이제 내 진짜 신분을 밝혔으니 강 선생도 진짜 신분을 밝히시오.'.
'도대체 내 진짜 신분을 알아서 어쩌겠다는 겁니까.' '남반부에 있는 우리 동지로 하여금 강선생 댁을 한번 방문케 하려고 그럽네다.' '그럼 잘 됐군요. 내 신분이 의심나거든 그 남반부에 있다는 동지더러 육군본부에 가서 내 인사기록 카드를 뒤져보라고 하시오.'.
이런 말씨름 가운데 부대표 이기춘이 남한측 부대표 김석순에게 아주 묘한 말을 했다고 한다.
'김 대위, 통일을 이루는 데는 지금이 절호의 기횝니다. 박정희 의장도 만군출신이 아닙네까. 우리 인민군 가운데도 만군 출신이 많습네다. 그래서 우리 연락부에서 특사를 내려보내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네까.' '그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요. 그런데 우리 연락부라고 하셨는데 노동당 연락부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네다. 나는 노동당 연락부 소속입니다. 우리가 특사로 보내려는 사람은 부상급입네다. 거물급에 속하지요.'.
이 회담에서 양쪽은 영화 필름을 교환하기로 했다. 우리쪽에서 는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 북측에서는 '꽃피는 평 양'을 주었다. 이 회담은 12월 초순에 열린 네번째 만남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이때쯤이면 우리로선 필요한 정보를 거의 수집한 단계이고 북측 에선 남한측의 공작에 말려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박정희가 방미하여 케네디 대통령과 성공적인 회담을 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마지막 회담중 이기춘은 호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김석 순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김 대위, 왜 지난 번에 내가 우리 쪽에서 특사를 보내려 하고 있다 하지 않았소? 특사로 보내려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오.이름은 황태성이라고 하는데 김 대위가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사진을 가지고 왔소.'.
김석순은 모르고 있었지만 황태성은 이때 중앙정보부에 붙들려 조사를 받고 있었다. 김천사람 황태성은 월북한 후 무역부 부상을 지냈다. 그는 1946년 10월 폭동 때 구미에서 군정경찰에 피살된 박 정희의 형 박상희의 친구였다.
박정희 의장은 첩보부대에서 가져온 북한 영화 '꽃피는 평양'을 장관들과 함께 보고는 '우리도 빨리 저 이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하면서 부러워했다고 한다. 이상에 소개한 남북 비밀 접촉이 세상 에 알려진 것은 1992년 월간조선 7월호에 기고한 러시아 과학아카 데미 극동연구소 한국과장 바딤 투가첸코의 '한반도와 러시아 정치 의 우선적 방향'이란 글을 통해서였다. 평양주재 소련 대사관의 영 사과장, 구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한국 과장직을 역임했던 그는 이렇게 썼다.
<1961년8월에 남한 군부정찰(주:첩보부대)을 통하여 북측에 편 지가 전달되었는데 편지에는 '평화통일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교 섭하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회담은 황해의 한 섬에서 각측 장교 2명과 서기로 구성된 대표단 사이에 진행할 것이 제의되었다.
군사정변 결과 방금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의 인물에 대해서 평 양에서는 관심이 많았다. 평양에선 박정희를 수완있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1945년 조선 해방(광복)후 박정희는 남로당에 입당했었다. 그의 맏형은 공산당 관계 때문에 미군정에 의해 사형 당하였다. 박정희 역시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 후 군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할 때 자주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성격을 발휘하여 미군과 마찰을 빚었다. 평양에서는 민족의 이익을 헤아릴 줄 아는 이런 인물과 한반도 긴장상태 완화 및 주둔 미군의 감축에 관해 대 화를 할수 있겠다는 의견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