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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매도에서 남북비밀접촉
 용매도에서 남북비밀접촉
 
 육군첩보부대에 의해서 남북비밀접촉의 우리측 대표로 선발된 강성국, 김석순 두 사람은 공산주의 사상과 전술 및 북한체제에 대해 약 삼개월 가량 집중교육을 받았다. 첩보부대에선 '만약 북 한에서 당신들을 억류하거든 김일성 만세를 부르고 복종하라. 우 리는 특공대를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을 구출하고 가족은 책임지겠다'고 안심을 시켰다. 1961년 9월 28일 새벽 1시 인천항을 출발한 두 척의 배는 서북서로 방향을 잡았다. 모선에는 강성 국, 김석순, 속기사, 카메라맨이 타고 있었다.
 
 자선은 선장 채광희와 기관장 김창식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 선은 바다낚시꾼들이 흔히 이용하는 작은 발동선인데 선체가 하얗게 칠해져있었다. 북한측이 식별을 위하여 그렇게 요구했던 것 이다. 네시간이 넘게 항해한 두 배는 해상의 휴전선 바로 남쪽에 있는 우도에 닿았다.
 
 새벽에 우도에 도착한 두배는 물때를 기다리면서 몇시간을 머 물렀다. 강성국과 김석순은 배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강성국 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깊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일찍 아침을 먹고 섬에 올라갔다. 초조한 시간을 잊으려고 산책도 하고 해안 가 바위에 붙은 굴을 따먹기도 했다. 오전 10시경 두 대표와 카 메라맨 및 속기사는 자선으로 옮겨탔다. 첩보부대에서 나온 장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후 4시까지는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 했다. 그래야 물때에 맞춰 인천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해주를 지향하여 출발한 자선이 한 시간쯤 달렸을 때 기관사 가 '지금 우리는 휴전선을 넘고 있는 중입니다'고 했다.
 
 황해도가 고향인 강성국은 '아무 표시도 없는 이 바다를 같은 민족이 어째서 왕래하지 못하는가'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 지더라고 했다. 휴전선을 넘어 북상하기를 한 시간, 우리 배는 해주항 입구에 있는 용매도 앞에 있는 아치섬 남방 3해리 해상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북한측 배가 마중나오게 되어 있었다. 강성 국은 배를 멈추게 하고 쌍안경으로 아치섬 쪽을 살폈다. 하얀 선체에 하얀 깃발을 단 작은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강성국은 기관사에게 신호탄 세 발을 쏘게 했다. 북측도 신호 탄 세발을 올렸다. 약 10분 뒤 북측 배가 10m 앞까지 접근해왔다.
 
 군관, 사병들이 갑판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선도하는데 로 우리측 자선은 다시 북상했다. 얼마후 옆으로 길게 누운 용매 도가 나타났다. 용매도에 상륙한 강성국 일행은 의외의 환영에 깜짝 놀랐다. 항상 인사 없이 마주 앉는 판문점 회의장의 분위기 와는 달랐다. 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정-부 대 표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가 하면 어깨에 중좌 계급장을 단 장교는 강성국을 와락 끌어안고 '동무, 반갑소, 반갑소'를 연발하면 서 눈물을 글썽거리기조차 했다. 강성국이 한마디 다.
 
 '내가 배를 타고 인천을 떠나올 때는 어디 먼 낯선 나라를 찾 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여기에 와서 여러분을 만 나보니 피부색깔도 같고 말씨도 같아 우리가 조상을 같이 하고 있는 형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이 만남을 계기로 하여 우리 문제는 우리가 풀어갈 수 있게끔 슬기를 다하도록 합시다.'.
 
 북한 대표들은 언덕 위로 우리 대표단을 안내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하얀 조개껍데기가 깔려 있었다. 일부러 단장한 느낌을 주었다. 언덕 위에는 400∼500평의 넓은 공터에 크고 작 은 네동의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큰 천막은 회담장이고 작은 천막들은 공동휴게소와 남북 대표들의 개별휴게소라는 설명이었 다. 양쪽대표들은 공동휴게소에서 차를 마시면서 날씨 이야기 등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북한 대표는 40대 전반으로 보이는 깡 마른 중키의 중좌였다. 이름은 김모라고 했는데 군인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부대표는 이기춘이라고 했다. 키가 크고 혈색도 좋았으며 말도 세련되었다. 점심을 끝내고 양쪽은 회담장에서 마주앉았다. 우리가 북한측에 제시한 의제가 있었다.
 
 '서울과 평양에 비공식 대표부를 설치하여 요원을 상주시킨 다. 문화교류, 경제교류, 인사교류, 즉 남북간의 자유 왕래.'.
 
 이기춘 부대표는 우리의 이런 제의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더니 '좋습네다. 의제는 이 네 가지로 국한시키도록 합시다'고 말했 다. 우리측 김석순 부대표가 '그러면 토의 순서를 정합시다'고 했다. 이기춘이 잘라서 말했다.
 
 '토의순서는 필요없을 것 같습네다. 시간도 절약할겸 의제 네 개를 모두 한 덩어리로 묶어서 이야기합시다.' '의제를 하나로 묶어서야 어떻게 진지한 토의를 할 수 있습니 까. 졸속이 될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토의해야 합니다.'.
 
 '충분히 토의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세월에 우리들의 과업을 완수하겠습네까. 남북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하 나로 묶어서 빨리 진행합시다.'.
 
 이런 말씨름이 지리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김석순은 공동휴 게소에 머물러 있던 대표 강성국을 찾아와서 의논했다. 강성국대 표는 김석순에게 '의제의 분리는 절대로 안됩니다. 오늘 의제에 합의가 안되면 다음에 와서 다시 토의하도록 합시다'고 했다. 우 리의 강경한 입장을 확인한 북측 이기춘 부대표는 어디론가 전화 를 걸고 오더니 '의제를 분리, 개별적으로 토의하는 데 동의한다' 고 했다. 의제에 합의한 직후 양쪽 수석 대표들끼리 만났다. 강 성국은 준비해간 선물보따리를 내어놓았다. 북측은 선물을 생각 해두지 못했던 듯 당황했다. 양쪽은 헤어질 때 기념사진을 찍었 다. 우리측 대표단이 배로 돌아오는데 북측의 수석대표 김모가 급히 준비한 선물보따리를 건네주었다. 담배와 과자류였다.
 
 2차 회담은 10월중에 역시 용매도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신임장을 새로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강성국이 '신임장은 이미 교환했는데 무슨 신임장을 새로 교환하잔 말입니까'라고 했 다.
 
 '대동강상사나 국제문화협회의 신임장으로는 약합네다. 나는 김일성 수상의 신임장을 가져올테니 강 선생은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신임장을 가져오도록 하십시오.'.
 
 강성국의 증언에 따르면 북측수석대표 김모는 이 자리에서 '기관 대 기관의 회담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 김일성-박정희 두 분이 만나는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으로 격상시키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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