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성의 고백
황태성은 동향 친지의 아들인 김민하(전 중앙대 총장·현 교원단체 총연합회 회장)에게 박정희와의 관계를 계속 설명해 갔다. 어린 박정 희는 황태성을 '선생님'이라 불렀으며 문경 교사시절에는 자신에게까지 찾아와 '선생님, 제가 뭘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그 때 황태성은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무엇을 하든 우리한테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자네가 하던 일이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니 주저말고하고 싶은 일을 하라'면서 충고도 해 주었다는 것이다. 황태성 은 김민하의 확신을 얻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민족감정에 호소했다.
'우리가 이 기회를 놓치면 분단은 오래 갈 거다. 나는 그때문에 민 족적 사명감을 갖고 내려 왔다. 지금 자네는 모르겠지만 북쪽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박의장은 이미 영관급 장교들을 보내 서해안에서 회담중이 라고 한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기왕 하는 것, 구체적으로 하자 이 말이다. 체제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고. 민족이 중요 하제.'.
황태성의 이 말에서 우리는 당시 북한 지도부가 남한 첩보부대의 대북공작에 넘어가 하급 비밀 접촉을 정치적 회담으로 오판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황태성은 김민하에게 '박정희 의장은 철저한 민족주의자야. 어떤 방 법으로든 대화의 길을 모색해보려 하는 것은 민족주의자인 박의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김민하는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한다.
'민족적인 감정에 호소하니 그때까지 내가 알던 간첩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으로 보였습니다. 순박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황태성은 김민하에게 이런 말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5·16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정권이 들어서니까 김일성 은 남한에서 올라 간 사람들 가운데 박정희 의장과 잘 아는 사람들을 찾 기시작했지. 내가 자진해서 김일성을 찾아가 내가 박정희 소장을 잘 안 다고 말했던 거야. 그러니까 김일성이가 나보고 '당신이 가서 대화 의사 를 타진해 보라'고 해서 이렇게 내려 온 거다.'.
육본 검찰관 양헌대위는 옥중의 황태성이 남파된 경위에 대해서 '대 남연락부장 이효순을 찾아가 건의해서 내려왔다'고 진술했다며 황태성이 직접 김일성을 찾아가 면담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 '황태성은 형장에서까지 민족주의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었 으며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지극히 감상적으로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당 시 혁명정부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국민학생 수준도 안될 만큼 무 지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어느 정도 김민하로부터 의심을 지웠다고 판단한 황태성은 이 런 부탁을 했다.
'그러니 수고스럽지만 자네가 좀 나서서 박정희 의장이나 그 분의 조 카 사위되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내가 내려왔다는 말만 전해주겠 나.'.
'유엔(UN) 감시하의 총선거'를 통한 통일방안 이외에는 어떤 통일방안도 금기시되던 당시 김민하는 고민을 거듭했다. 황태성은 또 다른 부탁 하나를 더 했다.
'서울에 내 조카딸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를 만나게 해 줄 수 없겠 나?' '이름이 뭡니까?' '임00이라네'.
김민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임00은 자신의 처남 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황태성의 조카딸이란 것을 그때까지 잘 모 르고 있었다. 알고보니 황태성은 친딸보다 더 정들여 키웠던 조카딸이라 고 하지 않는가.
그날 밤 김민하의 전화를 받고 남편 권씨와 함께 달려 온 임씨는 외 삼촌황태성을 보자 대성통곡을 했다. 황태성은 함께 월북했다가 전쟁중 에 인민군 선무공작대로 내려간 조카딸과 10년만에 상봉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눈물젖은 포옹을 지켜 본 김민하는 '분단의 기구함이 이런 것인 가'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겨우 눈물을 멈추고 그간의 사정과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 한 뒤부터 조카딸도 경계하는 눈빛이 서리기 시작했지만 황태성은 '걱정 마라. 나는 간첩으로 내려 온 것이 아니고 밀사로 내려왔다'고 안심시켰 다. 휴전선을 넘으며 고생했던 말도 해 주면서 퉁퉁 부은 발을 권씨 부부에게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황태성은 그 며칠 뒤 조카딸에게 '내 손녀딸도 좀 찾아 다오'라고 부 탁했다. 대구 10·1폭동때 잃은 장남 황경옥의 딸 황유경을 말함이었다. 황태성은 '그 아이에게는 나를 말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데려와 주면 나 는 멀치감치서 그 아이를 보기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뒤 창덕여고 를 다니던 황유경은 영문도 모른 채 흑석동의 김민하 집으로 안내되었다. 황태성은 문 틈으로 손녀 딸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면서 소리죽여 흐 느끼고 있었다. 김민하는 이 모습이 그렇게 가슴을 저밀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루를 오가던 김민하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고 그의 부인도 침 울한 표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황유경은 집안에 머물던 노인이 자신의 할아버지인줄 몰랐다고 한다. 그녀가 이 날 본 노인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훗날 재판정에서 황태성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직후였다.
한편, 김민하는 감상에서 깨어나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법적으로 곰 곰히 따져 보았다. 간첩이라 함은 적국에 침투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정보수집을 하는 사람인데, 황태성의 경우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고, 남파 목적 또한 정보수집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란 점 또한 분명히 밝혔다. 간첩이라면 파출소에 신고를 해야 옳지만 밀사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고려대학교에 재직중이던 왕학수(부산일보 사장 역임)교수를 떠 올렸다. 박정희와 동기이자 자신에겐 대구 사범 선배인 왕교수를 찾아간 김민하는 황태성의 출현을 알렸다. 왕교수도 처음엔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황태성이 주장하는 말을 찬찬히 전해 들은 그는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김종필중앙정보부장에게 말을 전해 놓겠노라고 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