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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분의 고민
 조귀분의 고민
 
 황태성이 서울에 머물던 약 50일간 그의 측근에서 행동을 거의 같이 한 사람은 동향 친지의 아들 김민하와 조카사위 권씨였다.
 
 최근 기자에게 증언을 해준 권씨는 처외삼촌이던 황태성과 많 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황태성은 권씨에게 '6월30일쯤 남쪽 의 국제문화교류협회라는 단체명으로 이모란 자가 북한에 들어와 서부전선에서 영관급 장교들을 중심으로 한 남북협상을 제의해 왔 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증언했다. 황은 '남쪽에서 교섭이 왔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한 사실확인을 하기 위해 내려 온 것이고, 북한 에서는 여기에 대한 문제로 토의를 여러번 거쳤다'고 말했다는 것 이다.
 
 권씨의 증언--.
 '외삼촌은 이런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때까지 상호 비방만을 계 속하던 남북관계를 종식시키고 이산가족도 만나게 하기 위해 정상 회담도 해야 한다며 먼저 서로 체제를 인정하자고 했습니다. 남파 되기 전,외삼촌은 북한 당국의 이 방안에 적극 찬성하면서 자신이 자진해서 남한으로 나가 보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저와 김민하는 그런 외삼촌의 말에 주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당시 우리 남한 입 장에서는 모든 것이 열세였습니다. 경제력도, 군사력도 열세였지 만 사회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을 뿐더러 남침을 겪었기 때문에 더 더욱 통일에 관한 논의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권씨는 황태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외삼촌. 이거 안됩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지금 혁명정부 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고 있습니다. 게다가 통일 얘기만 나와도 용공으로 몰리고 생명도 위험하게 됩니다.'.
 
 황태성은 조카사위의 반대에 이렇게 응수했다.
 
 '이건 내가 죽든지 살든지 상관없이 민족을 위한 마지막 봉사 라고 생각한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연락이 닿기를 기다리면서도 두 사람 은 틈만 나면 황태성을 설득하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게다가 왕 학수 교수를 통해서 김부장 쪽으로 연락을 취한 지 일주일이 지났 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김민하는 '참으로 이상했다'고 회 고한다. 간첩으로 몰아 잡으러 오든지 그게 아니면 밀사대접을 하 여 모셔가야 하는데 도통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왕 교수를 다시 찾아가니 그도 의아해 하면서 김종필 부장의 직통 전화번호 까지 적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통화도 되지 않았다. 이무렵 김종 필 부장은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대만의 쌍십절 행사에 첨석한 뒤 10월14일 귀국한다.
 
 아무런 소득이 없자 황태성은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조카딸과 그녀의 남편 권씨편으로 구미에 살고 있던 박상희의 처 조귀분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로 한 것이다. 중앙정보부장인 김 종필의 장모가 움직이면 일이 성사될 것으로 믿었던 황태성은 권- 임 부부를 앉혀놓고 자신과 조귀분 여사와의 관계, 그리고 김종필 과의 관계를 설명해나갔다. 그리고 '이 편지를 들고 구미로 내려 가 조여사에게 전해주고 가능한 모시고올라 오너라'라고 했다.
 
 '함께 올라올 수 없다면 회답을 받아와야 합니까?' '회답은 필요 없다. 편지를 받아 보고 나면 당사자가 알아서 처리해 줄 거다. 한 가지 당부할 것은 반드시 본인에게 편지를 전 해주라는 점이다.'.
 
 두 사람이 다음날 열차편으로 구미로 내려가 편지를 전해 주었 다. 최근 기자를 만난 권씨는 당시 편지를 받아 본 조귀분이 자신 들을 향해 '시국이 이런데 내가 어찌 갈 수 있겠나. 두 사람은 즉시 돌아가 주게'라고 매정하게 말했다고 한다. 권씨 부부는 조여 사에게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일입니다. 그러니 꼭 연락을 전해 주십시오'라며 돈암동에 살고 있던 권씨 부부의 집주소를 적어 주곤 서울로 올라왔다.
 
 이날 구미에서 권씨 부부를 돌려 보낸 조귀분의 심정은 그녀의 친척 조길수(76)로부터 들을 수 있다. 조길수는 조귀분의 조카로 박상희와 결혼할 때 화동으로 들러리를 섰으며 이 무렵엔 이웃에 살고 있었다. 조귀분은 권씨 부부가 떠나자 그 길로 조카딸 조길 수를 찾아가 놀란 심정을 털어 놓았다.
 
 '아이고, 우짜꼬. 황태성이가 왔단다. 우짜꼬…'.
 
 조귀분의 담배 피우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권씨는 '아마도 그날 저녁으로 서울로 올라간 것으로 봅니 다. 그리고 사위 김종필을 만났겠지요. 이 사건 이후로 조귀분씨 는 우리에게 못내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라고 말했다.
 
 편지사건으로부터 또 다시 일주일 가량 지났다. 그때까지 아무 런 진척이 없자 권씨는 황태성에게 '외삼촌, 이거 안되는 일입니다. 아예 다시 올라가시죠'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 무렵 귄씨는 김민하의 집에서 황태성과 거의 침식을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일주일간의 공백에 대해 권씨는 다음과 같은 추측을 했다.
 
 '조귀분씨가 김종필씨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김종필씨는 박정 희 의장에게 전달한 뒤 방침을 받았겠지요. 그리고 수사관을 경북 상주로 보내 제 아내의 집을 찾아 가 황태성과의 관계를 역추적하 다가 저의 존재를 파악한 듯 싶습니다.'.
 
 1961년 10월20일 아침, 김민하의 집에 지프 한 대가 멈춰섰 다. 세 명의 사나이가 대문을 두드렸다. 김민하가 나가 보니 권씨 의 집 주소를 묻는 것이었다. 김민하가 다시 들어와 권씨에게 '밖 에서 왔는데…'라고 했다. 나가보니 '권00의 집이 어딥니까'라고 물었다.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데 김민하가 '그러지 말 고 오후에 다시 만납시다'라며 광화문 종각 뒷 골목의 '금란다방' 에서 오후 2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수사관들을 돌려보낸 김민하와 권씨가 다시 방으로 들어 와 황태성과 마주 앉았다. 권씨가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예 돌아가십시오. 이 일은 애당초 안 될 일이었습니다.'.
 
 황태성은 요지부동이 되어 이런 말을 했다.
 
 '오늘 가서 만나보고, 확실히 김종필이 보낸 사람이라면 내 있 는 곳을 알려주게.'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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