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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결심
 박정희의 결심
 
 11월1일, 한일 회담 일본측 수석대표인 스기 미치스케는 박정희 의장 을 공식 초청하는 이케다수상의 친서를 들고 한국에 입국했다.이케다 수 상-김종필 정보부장과의 요담 결과였다. 이날 최고회의는 일본에 머물던 배의환 수석대표에게 급히 귀국하라는 지시 전문을 보냈다. 다음날 배 수석대표는 정일영(74·외무부차관,국민대 총장 역임·현 백상재단이사 장)대표를 대동하고 서울에 도착했다.
 
 11월3일, 배수석대표는 스기수석대표를 최고회의 의장실로 안내했 다. 도중에 송요찬 내각수반의 방에 들렀다. 송수반은 스기가 지참한 이케다의 친서에 난색을 표명했다.
 
 '친서에는 회담진전을 위한 아무런 구체적 제안이 없다지요. 그렇다 면 박의장이 초청을 받아 들이지 않을텐데….'.
 
 이날 오후 스기 대표를 맞이한 박정희 의장은 친서를 받아 읽고 조금 도 실망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박의장은 즉석에서 이 초청을 수락하겠 다는 의사를 밝혔다. 스기 대표는 친서를 전달한 뒤 이날 오후 3시 25분 발 노스웨스트 여객기편으로 귀국했다. 약 두 시간 후에는 미 국무장관 딘러스크가 김포에 도착했다. 일본에 들러 미일 무역경제회담을 마치고 온 길이었다. 한국측은 한일회담과 관련해서 미국측 입장에 신경이 곤두 서있었다. 딘 러스크는 이런 사실을 감지한 듯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은 한일 양국간의 관계 정상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양국간에 해결할 문제이며 미국은 조정자의 입장에 서 있지 않다'고 분 명히 밝혔다.
 
 이날은 박정희 의장이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된 사실이 송요찬 수반 에 의해 공표된 날이기도 했다. 박정희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한 것은 최 고회의 의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 여 뒤인 8월10일이었다. 7월3일에 의 장이된 박소장은 중장 계급장을 단 김종오 육군참모총장 등 군 선임자들 로부터 경례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변에서 모양이좋지 않다고 승진을 건의해도 박정희는 '나로서도 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연구해 봅시다'고 미뤘다. 8월10일 최창언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고 혁 명 유공자 50여명이 특진할 때 박소장도 중장이 되었다. 대장 진급은 송 요찬 내각수반이 박의장의 방미를 앞두고 권했다고 한다.
 
 '의장 각하께서는 이 나라의 실권자로서 미국을 방문하는 것이니 나 라의 체면을 생각해서 대장 계급장을 달아야 합니다.'.
 
 박중장은 11월1일자로 대장으로 승진되었다. 윤보선대통령이 청와대 에 들어온 박의장의 양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박정희 의장은 배수석대표와 정일영 대표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일행은 두 대의 지프에 나눠타고 남대문로 근처 한국은행 뒤편에 있 던 '한국관'이란 요릿집으로 향했다. 배수석은 박의장과 함께 앞차에 탔 고 뒷차에는 정대표와 김종필 부장이 타고 있었다. 딘 러스크가 묵고 있 는 반도 호텔의 위치가 마침 가까운 곳이어서 부근에는 엄중한 경계가 펴지고 있었다.
 
 의장차가 소공동 근처를 지날 때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경찰관 한 명이 차의 진행을 막았다. 외빈을 경호하기 위한 교통통제에 이 나라 최고 실 권자의 차가 저지당한 셈이었다. 비서관 한 명이 내려가 교통순경과 몇 마디 주고 받고 나서 차량은 곧 이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박의장은 '우리가 교통법을 위반했나?'라고 했다.
 
 배의환의 기억에 따르면 복요리로 식사를 하는 동안 박의장이 보여준 태도는 소박하고 꾸밈이 없었다고 한다. 말도 별로 없고 쉴새없이 담배 를 피우는 데 한 마디씩 하는 말 속에는 거드름이나 구차한 격식이 들어 있지 않았다. 누가 말할 때는 신중히 귀를 기울여 주는 태도가 고맙고도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박의장은 술잔을 나르는 접대부 아가씨들에게 '거 앞치마는 벗어두고 오지 그래'라고 했다. 당시 최고회의는 요리집의 접대부들에게 모두 앞 치마를 두르도록 지시해 놓고 있었다.
 
 배수석은 이 자리에서 5·16 직후 자신이 미대사관으로부터 동조자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았던 사실과 미국 의원들이나 언론기관들에 혁명 지지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냈던 일을 처음으로 세세히 설명하였다.
 
 '혁명주체들이 이런 사실을 탐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박의장은 예의 무게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벙긋 웃음을 보일 따름이었다고 한다.
 
 11월6일, 배의환 수석대표는 박의장의 답신을 가지고 다시 일본으로 행했다. 도쿄에 도착한 배수석은 오후 8시에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가 졌다. 이 회견은 박의장의 친서때문에 내외신 기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 으켰다.
 
 다음날 배수석 대표는 이케다 수상을 찾아가 박의장의 친서를 전달하 고 약 20분간 대화했다. 이케다는 친서를 전달받아 읽어 본 뒤 한일 문 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박의장의 친서요 지는 다음과 같았다.
 
 <지난 11월3일 제6차 한일회담의 귀국측 수석대표 스기 미치스케를 통하여 보내주신 각하의 친서를 감사히 받아 보았사오며, 아울러 본인의 답서를 아국측 수석대표 배의환씨를 통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각하에게 보내드림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 나라의 국민과 정부는 다같이 극동의 평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는 자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두 나라가 긴밀히 제휴를 하여야 한다는 높은 이념과 커다란 견지에서 양국의 관계를 하루속히 정상한 것 으로 만들고, 호혜적인 토대위에서 두 나라의 명랑하고 굳건한 관계를 세우기 위하여 모든 성의와 열의로써 한일회담에 임하고 있음은 여기에 서 본인이 새삼스레 밝힐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본인이 11월 중순경 미국 대통령 케네디 씨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하는 도중이라도 일본에 들러 우리 두 나라의 친선관계를 확립하는 데 관하여 흉금을 터놓고 간담할 기회를 갖도록 본인을 초청하여 주신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본인은 11월11일 귀국을 방문할 예정이오며, 기타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서는 귀국에 주재하고 있는 우리 외교경로를 통하여 연락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끝으로 각하의 건강하심과 귀국의 번영을 비오며, 가까운 장래에 만 나 뵈올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면서 이만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단기 4294년11월6일 대한민국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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