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의 다짐
일본 외무성의 이세키(伊關) 아시아 국장은 한일회담의 재개를 찬성 하면서 주일 한국 무역대표부 소속의 최영택참사관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 이세키 국장의 인상적인 설명을 최영택은 이렇게 기억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내각제이기 때문에 모든 장관이 국회의원들로 구성됩니다. 장관을 보좌하는 차관은 두 명으로, 국회의원인 정무차관 과 직업 공무원인 사무차관으로 이루어지지요. 사무차관은 장관에게 실무적인 지원을 합니다. 정치인들은 선거때마다 바뀔 수 있지만 직업 공 무원인 사무차관들은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에 정책에 큰 흔들 림이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행정부는 과장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직 과장들이 비토를 하면 일본 정치인들은 함부로 압력을 가하지 못합니다. 사무관 출신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일본정치인들은 한국과 달리 이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한일회담을 재 개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는 또 일본 막후의 실력자들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도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외교적으로 교환된 친서나 각서가 실현되려면 막후 실력자들의 찬성 이 필수적입니다. 막후 실력자들이 자신의 휘하에 있는 의원들에게는 물론 이고총리대신에게도 건의와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독선적일 수가 없는 총리는 '모두가 그런 의견이면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라는 식 으로 매듭지어집니다.'.
중정국장 출신으로서 육사 동기 김종필부장의 뒷받침을 받고 있던 최영택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일본 정계 거물들과 접촉하기 시작 했다. 유태하의 진술만 밑고 찾아 간 최영택은 과연 유태하 전대사의 로비망 구축이 성공적이었음을 확인했다. 유대사의 이름을 대고 연락을 하면 일본 정계의 거물들이 거절하는 법이 없이 최참사관을 만나 주었다.
맨 처음 접촉한 기시 노부스케는 전 일본 수상이면서 보수파의 거 두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2차대전 당시 각료로 일했던 기시는 패전후 전범 재판을 받았다. 그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경영 에 중심 역할을 한 관계로 만주 인맥의 상징이기도 했다. 박정희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주를 체험하여 박, 기시 두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통하 게된다. 1960년 기시는 미일안보조약을 채결한 뒤 여론에 밀려 사표를 내면서 수상직을 이케다(지전)에게 물려주었다.
최참사관이 뉴 재팬 호텔 식당에 도착한 때는 약속시간이 조금 지나 서였다. 미안하기도 해서 겸연쩍게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버지뻘 되 는 노인이 정좌한 채 앉아 있다가 일어나더니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절 을 했다. 당황한 최참사관이 맞절을 한 뒤 말문을 열었다.
'저는 외교관이 아닌 한일회담 타결을 위해 왔습니다. 우리는 한일 회담을 재개하고 싶습니다. 박정희 의장의 의중도 너무 철저합니다. 영 향력있는 기시(안)선생께서 도와주십시오.'.
'나는 원래 한일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해 온 사람입니다. 경제발 전을 위해 한일회담을 타결하겠다는 박(박)의장의 의지에 나로서는 감 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케다 수상을 만나 그 뜻을 전해 주겠습 니다.'.
최참사관이 다음으로 만난 거물은 기시(안)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좌 등영작) 통산상이었다. 그 역시 좋은 반응을 보였다. 최 참사관은 중앙 정보부로 1일보고를 하면서 상황의 진행을 알리고 있었다.
10월 초, 양국은 한일회담을 재개하기로 결정하고 10월20일로 날짜 를 정했다. 최고회의는 대표단장으로 이동환 주일공사를 할것인지 허정 전 한일회담 대표를 다시 기용할 것인지를 두고 최영택 참사관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최영택은 '스기 미치스케(삼도조) 상공회의소 회두(회장)가 대표단 장으로나설 것 같으며, 어느 파벌에도 치우치지 않는 경제통임'이란 답신을 보냈다. 10월12일, 최고회의는 경제에 밝은 사람을 물색하던 중 일제시대에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군정때 재무장관 특보를 거쳐 극동무역사장과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한 배의환(94세)을 수석대표로 임 명했다.
배의환은 5·16 직후 미국 국회의원들과 해외언론기관들에게 혁명지 지를 요청하는 사신을 보낸 사람이다. 배의환은 회고록 '보릿고개는 넘 었지만'에서 자신이 회담 대표로 임명된 데는 이런 사정이 감안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배의환 수석 대표는 샤무엘 버거 대사를 찾아 가미국의 태도부터 알아보았다. 버거 대사는 '우리 미국은 이번 한일 회담을 적극 후원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이 경제부흥을 위하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를 성공시키려면 당연히 외국의 선진기술이나 기계를 들여와야 할 것 이고, 돈도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본을 보십시오. 패전국이긴 하지 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나라니까 금방 다른 나라들과 통상을 맺고 발 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국교 정상화는 시급합니다.'.
박정희 의장에게 인사를 하러 간 날, 배의환은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며칠 뒤 나는 우리측 대표로 뽑힌 사람들과 함께 박의장 앞에 나가 인사를 드렸다. 박의장의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에서 강인한 의지를 읽 을 수 있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피로의 기색이 보였다. 그 만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혁명 과업에 전력을 쏟고 있었던 모양이 다. 박의장 앞에서 선서를 하는 동안 우리는 한일회담의 성패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절감할 수 있었다.>.
제6차 한일회담 대표로 선발된 사람들은 모두 22명이었다. 수석 대 표-배의환, 차석 대표-이동환(주일공사), 고문-이한기(서울대 법대교수· 최고회의의장 고문)를 포함, 각부 국장들로 구성되었다. 출발하기 전 이들은 주요 의제가 될 청구권문제와 어업문제에 관한 입장을 정리했다.
10월 18일 오후 3시. 한일회담 대표들이 일본으로 출국하여 도쿄 히 비야 파크 호텔에 들었다. 다음날 배의환 수석 대표는 일본측 수석 대 표 스기(삼)를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외무성에서 고사카(소판)외상을 만 났다. 배수석은 양측 정치 지도자들이 한일회담이 연내에 타결되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나 실무자 입장에서는 두 달 남짓한 시간으로는 역부족임을 느끼고 있었다. 10월20일 한일 양국의 첫 대표회담이 열 리기 직전에 배의환 수석대표는 이케다 수상을 예방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