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구모(남운) 교장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에서 박정희와 함께 생활했던 일본 동기생들(만주군관2기, 일본육사 유학생대 57기)에게 박정희의 방일은 뉴스였다. 자위대의 간부로 있던 오리구치는 5월16일 아 침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쿠데타의 지도자로 소개된 박정희 소장의 사진을 보고 동기생을 알아보았던 사람이다. 그는 박 의 장이 도쿄에 도착한 11월11일 토요일엔 친구와 함께 바둑을 두 고 있었다. 만군시대의 선배인, 한 국회의원 비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정희 의장이 메구로에 있는 영빈관에 든다고하니 우리 같 이가서 만나보자. 외무성에서도 양해했다'는 것이었다. 오리구 치가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선배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면회가 어렵게 되었다'면서 '비행기 안에서 읽어볼 수 있도록 편지를 한장 써주면 외무성을 통해서 전달하겠다'고 했 다. 오리구치는 간단한 편지를 써 보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하네다 공항에 내린 귀하의 원기왕성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국민의 기대를 짊어지고 떠난 이번 여행 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박정희로부터 답신이 온 것은 방미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였다. 12월2일자로 된 편지에서 박정희는 친필로써 이렇게 썼다.
'도쿄에서 만나지 못해 유감이었습니다. 자마(좌간-일본육사 가 있던 곳의 지명)시대의 에가미 중대장을 비롯하여 다카야마, 마루야마 구대장, 그리고 동기생 제위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오리구치는 에가미에게 이 편지 이야기를 하면서 '박정희 의 장에게 편지를 보내시면 좋아할 겁니다'라고 했다.에가미는 '고 맙네. 그러나 이제는 나 같은 사람이 나설 때가 아니야. 이제는 자네들의 시대야'라면서 사양했다고 한다. 에가미 중대장은 박 정희가 2년간 일본육사 유학생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때 매주 한번씩 정신훈화를 했다. 박정희는 야외훈련때는 연습 소대장으 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여 에가미 당시 중대장도 그를 기 억하고 있었다.
도쿄에 도착하여 영빈관에 들었던 박정희 일행은 이날 밤 이 케다 수상이 관저에서 주최한 만찬회에 참석차 떠났다. 저녁 7 시부터 시작된 만찬회에는 이케다 수상, 고사카 외상을 비롯하 여 사토 에이사쿠(뒤에 수상 역임) 통산상, 미키 다케오(뒤에 수상 역임) 국무상, 가와지마 쇼지로 국무상,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 일본 경단련 부회장,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 등 정재계 거 물들이 참석했다. 우리쪽에선 박의장, 유양수 최고회의 외교국 방위원장, 최덕신 외무장관, 박병권 국방장관, 천병규 재무장관, 배의환 한일회담 수석대표들이 참석했다.
이케다 수상은 만찬인사말에서 맹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면서 '양국간의 영속적인 선린우호는 인화와 상호이해로써 이룩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 의장은 답사에서 '날씨가 좋으면 부산에서 대마도 가 보일정도로 가깝다'면서 '한일회담은 사소한 문제로 논란을 되풀이하지 말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만찬이 시작되자 고사카 외상이 일어나 양국 대 표들을 소개한 뒤 좌석 끝에 앉아 있던 촌로를 가리키면서 말했 다.
'오늘 이 자리에는 박정희 의장께서 요청하신 바에 따라서 특별한 손님 한 분을 모셨습니다. 박 의장께서 만주군관학교에 재학중일 때 교장으로 계셨던 나구모(남운)선생입니다'.
열흘 전, 정보부 소속이던 최영택 참사관은 중앙정보부로부 터 '박 의장께서 체일도중 만주군관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하시니 일본 정부와 협조하여 주선할 것'이란 암호전문을 받았다. 최 참사관은 고사카 외상과 협의하여 조치를 취한 것이 다.
소개받은 나구모 장군이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하자 박수가 터졌다. 사회자 고사카 외상의 제의에 따라 참석자들은 축배를 들고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박정희 의장이 슬그 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석자들은 순간 식사를 중단하고 박 의장의 행동을 주목했다. 박 의장은 조용히 식탁의 끝으로 걸어 갔다. 나구모는 당황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정희는 만 주군관학교생도 시절의 교장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절을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 한 모습을 뵈니 대단히 기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장수하 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박군이 이렇게 국가 지도자가 되셔서 기쁩니다. 그렇게 과찬의 말씀을 해주시니 저 생애의 영광입니다.' '잔을 받으십시오.'.
박정희는 빈 잔을 내밀고 나구모에게 술을 따랐다. 이 광경 을 지켜보던 일동은 박수를 보냈다. 박정희의 체일기간 내내 밀 착 수행을 했던 최영택 참사관은 그 자리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 다고 한다.
'좌중을 둘러보니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감격하는 듯했습니 다. 저는 속으로 '아, 일이 앞으로 잘 풀리겠구나'하는 안도감 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정계를 이끌던 세대는 박정희-김종필 그룹보다는 20세 위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배일의식이 강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나 유약해 보이던 장면정부 사람들보다 박정희, 김종필 같은 젊고 패기있는 군인들을 대하는 것이 문화적으로나 정서적 으로 더 편했을 것이다. 다음날 기시 전 수상이 주최한 오찬에 서 박정희 의장은 '우리는 한국군을 훈련할 때 옛날 일본제국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훈련하듯이 하고 있다'고 자랑한 것으로 외신을 통해서 국내에 보도되었다. 이에 대해서 조선일보 칼럼 만물상은 '일제 침략의 쓰라림을 받았던 우리로서는 다른 면에 서는 몰라도 군대면에서는 일제의 답습소리는 듣기 싫다. 박 의 장의 그 발언은 아무래도 오문에 기인하든지 일본 통신의 고의 적인 왜곡일것이다'고 썼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