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반대 시위
1961년11월11일 오후 박정희 의장이 김포에서 도쿄까지 타고온 비행기 는 대한항공(KNA)의 컨스틀레이션 4발기였다. 최고회의에서 도쿄까지만 전세낸 이 여객기엔 박정희 의장과 15명의 수행원, 그리고 10여명의 기자 들이 탔다. 기수쪽에 앉아 있던 박 의장은 기자석으로 찾아오더니 기자들 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돌아갔다. 특별기가 순항고도를 잡았을 때 우리 공군의 F-86세이버 전투기 4대가 나타나 양쪽에서 엄호하면서 따라갔다.
특별기에서 전투기 조종사의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수행원들이 손을 흔들자 조종사가 손을 마주 흔드는 것이 보였다. 빠 른 전투기는 느린 여객기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고도를 높혔다가 내렸 다가 하고 있었다. 우리 공군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이 끝나는 데까지 호 위 임무를 마친 전투기는 박 의장이 보라는 듯 기수 앞을 가로지르며 작 별인사 비행을 한 뒤 사라졌다. 눈덮인 후지산을 지난 KNA기는 하네다 공 항에 접근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예정시간보다 한 20분 빨리 도착했기 때 문이었다.
박 의장은 기내로 올라온 주일대표부 이동환 공사와 일본 외무성 의전 실장의 안내를 받으면서 승강계단을 내려갔다. 박 의장이 바닥에 깔린 빨 간 양탄자를 밟자 경시청 소속의 경호원 수십 명이 둘러쌌고 그 속에서 이케다 수상이 다가오더니 악수를 했다. 이날 이케다 수상은 도쿄 시내의 교통체증으로 출영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하마터면 10분 먼저 착륙한 박 의장을 기다리게 할 뻔했다. 수상은 박정희 의장 방일 반대 데모가 벌 어지는 간선도로를 피하고 샛길로 달려온 것이었다.
박 의장과 이케다 수상이 악수하는 사진을 찍으려던 한 기자가 촬영선 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오자 한 건장한 경호원이 일격을 가했다. 사진기자 는 카메라를 안고 쓰러져 신음했다. 경호원은 사진기자를 밀면서 가라데 를 한 방 먹인 듯했다.
박 의장은 검은 양복, 회색 코트, 짙은 색의 넥타이, 그리고 암갈색의 안경에 중절모를 들고 내렸다. 모두가 국산이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취재 하던 한 도쿄 특파원은 박 의장의 그런 옷차림에서 '아주 촌스럽다'는 느 낌을 받았다고 한다. 박정희 의장은 미리 준비해온 도착 성명서를 우리말 로 낭독했다. 외무부 엄영달 아주과장이 통역했다. 성명서를 든 굳은 표 정의 박 의장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엄 과장의 손도 떨렸다. 나중에 기 자들은 엄 과장에게 '당신은 손 떨리는 것도 통역하더군'이라고 농담을 했다.
박 의장은 성명서에서 '시급한 것은 공산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자유진 영의 우호와 단결이다. 우리는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대립하지 말고 상호 이해로써 굳은 제휴를 해야 한다. 일본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서 솔직한 의견교환을 함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6차 한일회담이 빨리 타결되 도록 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왔다'는 요지의 인사를 했다. 성명서 낭 독을 마친 박 의장은 공항 송영대에 나와 있던 재일교포들을 향하여 인사 하기 위해 행렬에서 몇 걸음 앞으로 나가 손을 흔들었다.
박정희 의장은 배의환 한일회담 수석대표의 관용차인 링컨 컨티넨탈에 올랐다. 배수석과 함께 박 의장은 뒷 자리에 탔다. 앞자리엔 최영택 참사 관과 박종규경호관이 탔다. 차가 도쿄 메구로의 영빈관을 향해서 달리는 동안 박 의장은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배 수석대표가 회담의 경과보고를 계속했고 최 참사관이 간간이 보충설명을 했다. 연도 엔 박 의장의 방일을 환영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 다. 가끔 조총련이 조직한 시위자들이 경찰저지선을 뚫고 나와 박 의장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거나 한국어와 일본어로 쓴 플래카드를 흔들곤했다.
박 의장 일행이 도착한 영빈관은 약1만 평의 공원 같은 대지 위에 세 워진 2층 양옥이었다. 소화천황의 당숙되는 사람이 지은 것인데 패전 후 에는 점령군 사령관 관저나 요시다 수상관저로 쓰인 적도 있었다. 오후 5 시 40분경에 박 의장은 영빈관에 도착했다. 정문 두 기둥엔 태극기와 일 장기가 노을을 받으며 서 있었다. 박정희 의장의 방은 2층에 있었다. 박 의장을 뒤따르던 박종규경호관은 의장이 방에 들어가자 최영택에게 '형님, 요코하마에 친구가 있는데 나 좀 갔다올테니까 각하가 찾으면 잘 좀 말씀 해 주세요'라고 하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방에 들어선 박정희가 웃옷을 벗으면서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종규는 어디 갔어?' '아, 예, 해방전 일본에서 사귄 친구가 연락을 해와서 잠깐 만나러 갔 습니다.' '그래? 벌써 무슨 연락이 와서 만나러 갔어?' '예.'.
박정희는 씩 웃더니 이내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까 그것들 뭐야. 거 주먹질하고 그런 것들 말이야.' '아, 그것 말씀입니까. 차중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전부가 조총련 계의 시위대입니다. 경찰에서 일체 공항에 못나오게 하고 골목으로 밀어 넣었는데 일부가 빠져나와 주먹질하고 플래카드를 흔들어댄 것입니다.' '그래, 뭐라 그랬어? 뭐라고 떠든 거야?' '살인마 돌아가라, 군사정권 타도하자, 한일회담 결사반대 등등 그런 말들입니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은 민족일보 조용수를 석방하라고 했 습니다.' '그래?'.
박정희는 의자에 걸터 앉아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냉랭하게 말했 다.
'내 돌아가면 빨갱이들을 더 철저하게 잡아들여야겠어.'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