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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다 공항
 하네다 공항
 
 1961년 8월16일 박정희와 가족들은 신당동 집을 그대로 둔 채 장충 동 외무장관 공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사할 때 육영수는 '얼마안 있 어 다시 올텐데 무얼 그리 소란스럽게 이사를 하려고 그래요'라며 자 신이 사용하던 작은 집기들까지 종이에 싸서 짐을 꾸렸다. 넓은 2층 집으로 이사하게 된 육영수는 신당동 시절의 가구들을 가져와 요령있 게 배치해 두었다. 두 식모가 주방에 근무하고 있었고 마당 한 편에는 헌병 1개소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육영수는 외국 대사 부인 등 손님들 을 영접하는 일로 바빴다. 매일 아침 육영수는 일찍 일어나 단정하게 몸가짐을 한 뒤 남편의 아침을 준비했다. 박정희도 아내처럼 소식이어 서 아침은 주로 계란 노른자를 띄운 우유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전날 숙취가 심할 때면 육영수는 콩나물국과 따뜻한 밥을 준비했다. 박정희가 공관을 출발해 최고회의로 출근하는 시각은 대략오전 8시. 아침운동을 할 틈이 없었다. 남편을 출근시킨 육영수는 근혜, 근영이를 학교에 보냈다.
 
 박정희 의장의 방미에 육영수가 준비해야 했던 것은 케네디 미국 대 통령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육영수의 조카 홍소자를 개인 비서로 일하게 했던 육영수는 조카와 고민을 함께 했다. 홍소자의 회고. '그때 우리 나라엔 아무것도 없을 때여서 국가원수에게 선물로 무얼 사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모(육영수)는 제게 '너도 뭔가 생각좀 해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야. 내놔봐, 얘'라며 독촉했지요. 외무부 직원들을 통해 한국 전통 자개 가구를 취급하던 종로 보신각 부근의 '민예사'를 소개받았어 요. 제가 가서 여러 모양의 자개함과 칠목기를 들고 와 보여드렸지요.' 육영수는 자개함과 칠기를 선물로 결정했다. 옻칠이 된 칠기는 냄새가 심했다. 육영수는 쌀을 담아 두면 옻 냄새가 사라진다며 칠기를 쌀통속 에 파묻었다. 미국 대통령에게 줄 선물은 마련되었지만 담을 상자와 포 장지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육영수는 오동나무 상자를 생각해 내고는 목공소 에 부탁했다. 육영수가 가장 애를 먹은 것은 포장지 마련이었다. 재생 지에 울긋 불긋한 줄을 그려 만든 '색동지'와 시멘트 포대로 사용하던 포대지가 주류였던 시절, 미국 대통령에게 줄 선물을 포장할만한 종이 가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육영수는 생각다 못해 꽃무늬가 인쇄된 도배 지로 포장해 보았다. 손에 잉크와 회분이 묻어나고 무늬가 지워져 포 기했다. 미국 출발을 사흘 앞 둔 11월8일, 육영수는 남편이 피우고 버 린 담배갑 속의 은박지를 꺼내 보더니 '요 만한 것을 만들면 큰 포장지 도만들 수 있을 거야'라며 전매청에 부탁을 했다. 전매청에서 가져다 준 큰 은박지로 선물을 포장하자 너무 번들거렸다.
 
 '어떡허니. 누가 봐도 담배 껍질로 싼 줄 알텐데….'.
 
 옆에서 지켜 보던 전매청 직원이 은박지에 완자문(만자문)을 찍어 다시 가져와 포장지로 사용하게 됐다.
 
 박정희 의장의 방일이 결정되자 대한민국 주일 대표부의 최영택참사 관은 일본 경시청과 경호문제를 의논했다. 최고회의 경호실에서도 경호 과장 정인형 해병 대위를 선발대로 보내 일본의 최참사관과 합류케 했 다. 정인형 대위는 그 후 1979년 10·26때까지 박정희 대통령을 경호하 다가 중정의 박선호과장이 쏜 총에맞아 숨진다.
 
 박의장의 방일 소식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자 조총련은 전일본적인 한 일회담 반대시위를 계획하고 있었고 일본 사회당도 공개적으로 한일회담 을 비난하고 나섰다. 1960년 6월 미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방일하려 했을 때 일본 좌익들은 미일 안보조약체결 반대시위를 일으켜 아이젠하워의 방문을 취소시킨 사례가 있었다. 일본 경시청은 조총련과 사회당의 한일 회담 반대시위가 박의장의 방일을 취소시키게 되지는 않을까 무척 신경 을 썼다. 일본의 극우파 청년단체인 '아이고쿠단(애국단)'은 한국의 혁 명정부가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는 점을 들어 박의장의 방일을 열렬히 환영하고 일본 좌익 세력들의 난동을 저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1월10일, 현지 경호를 책임진 최영택 참사관은 일본 경시청 및 공안 위원회 간부들과 경호업무와 관련된 최종협의를 마친 뒤 중앙정보부로 암호전문을 보냈다.
 
 <다음 사항을 부장님 열람후에 - 1. 의장실의 박종규 중령에게 다음 사항을 통보바람.
 
 2. 박의장 경호요원 정인형대위 무사히 도착하였음.
 
 3. 박의장 일행의 체일 기간에 있어서 안전 대책은 만전을 기하고 있 으니 안심하고 출발해도 좋습니다.
 
 4. 출발전 탑승할 전용기에 폭발장치 유무의 점검을 철저히 해주기를 바랍니다.
 
 5. 경비대책은 최참사관이 직접 일본 공안청, 경시청, 관할 경찰서와 정보교환 및 관계자 회의를 통해서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6. 제반 행사 및 진행은 최참사관이 외무성 당국과 직접 협의하여 계 획을 세워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7.일본 경찰에서는 조총련 계통은 공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강력 대 응할 대책입니다.
 
 8.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자위대의 헬리콥터를 준비하였습니다. 끝.>.
 
 11월11일 오후 4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일행은 하네다 공항에 도 착했다. 수행원 일행은 최고회의 외무-국방위원장 유양수장군, 최덕신외 무장관, 천병규재무장관, 박병권국방장관, 송정범경제기획원 부원장, 원 충연공보실장, 김영원보좌관, 박종규경호실장과주치의 지홍창박사등이었 다.
 
 일본측에서는 이케다(지전)수상, 고사카(소판)외상, 스기(삼)수석대 표, 이세키(이관)아시아국장 등이 비행장에 출영했다. 하네다 공항 2층 옥상에서는 약 5천명의 재일교포 민단측 환영객들과 1천명 가량의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플래카드를 흔들면서 박의장의 도착을 환영했다.
 
 양복에 검은 코트를 걸친 박정희 의장은 선글라스를 낀 채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간단한 도착 성명이 발표되던 무렵, 공항 외곽에서는 일본 경찰들이 약 2천명 조총련계 시위대를 막기 위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공 항에서 영빈관에 이르는 도로에도 경찰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시위대 를 골목으로 밀어 넣은 경찰들은 스크럼을 짜고 이들의 도로 점령을 저지하고 있었다.
 ( 계속 ).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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