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오'
정승화 총장은 수도경비사령관에게 청와대를 외곽에서 포위하라고 지시한 뒤 이재전 경호실차장을 전화로 불렀다. 정 총장은 자신이 취 한 조치를 이 차장에게 알려주고는 육사 동기생 사이인 수도경비사령 관과 잘 협조하여 충돌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재전 차장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기도 한데 청와대는 조용합니다'라고 했다. 정승화 총장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경호실이 가담한 조직적인 음모는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큰 소요는 일어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어 다소 여유를 갖게 되었다. 정 총장은 자신의 회고록('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에서 이렇게 썼다.
<이렇게 긴급한 조치를 끝내고나서 나는 지하 벙커내의 총장집무 실 옆에 붙은 나의 거실로 들어서니 노재현 장관, 김재규 부장, 합참 의장, 연합사부사령관,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차장 등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다들 일어나 '수고합니다'며 주 인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박 대통령이 서거하여 권력 의 공백이 생긴 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물리력을 장악하고 있는 육군 참모총장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노재현 장관과 여러 사람들은 김재규 부장에게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있었다. 김부장은 '상황은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몰라도 각하가 돌아가신 것은 확실하다. 빨리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초비상사태이다. 적이 알면 큰 일 난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밤 김재규는 줄곧 '계엄령 선포'와 '보안'이란 두 단어만 반 복한다.
자신의 대통령 살해가 보안된 상태에서 계엄령만 선포되면 계엄사 령관을 설득하거나 협박해서 사태를 장악한다는 막연한 쿠데타 구상 을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상은 보안에 실패하면 파국을 맞게 되 어 있었다. 즉, 성패는 진실을 알고 있는 김계원 실장의 입에 달려있 었다.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는 부장을 벙커내 총장실로 안내하여 놓고 부속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김정섭 제2차장보는 문간에서 왔 다 갔다 하고 있었다. 밤8시20분쯤 김 부장이 박대령을 부르더니 '청 와대비서실장 댁에 전화를 걸어 나오면 바꿔 주게'라고 했다. 상황실 로 가서 전화를 걸었으나 실장은 댁에 없었다. 그대로 보고했더니 김 부장은 계속해서 전화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박 대령은 무선전화로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의 승용차를 찾았으나 응답이 없었다.
밤8시30분쯤 벙커 안 총장실로 들어온 노재현 국방장관이 박흥주 에게 청와대 비서실장한테 전화를 걸어보라고 지시했다. 박 대령은 총장실에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가 작동하지 않았다. 상황실로 옮겨 서 청와대 비서실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김계원실장은 '이리로 오라 고 해'하고 그냥 전화기를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박흥주는 노장관과 함께 있던 김재규 부장에게 '김계원 실장님께서 그쪽으로 오시랍니다' 고 보고했다.
장관과 부장 총장, 그리고 다른 장성들도 '그쪽 상황도 모르는데 국방장관과 각군 총장이 청와대로 가는 것은 좋지 않으니 김 실장에게 다시 전화하여 이리로 오시도록 하라'고 김정섭 차장보 에게 지시했다. 김 차장보가 전화를 걸어 그런 뜻을 김계원 실장에게 전했더니 '알았어. 내가 거기로 가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통화내 용을 김재규 부장과 노재현 장관에게 보고한 지 몇분 되지 않아 상황 실의한 중령이 총장실로 뛰어왔다.
'합참의 상황실을 통해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 실장님이 여기로 못오시겠다고 합니다.'.
김재규 부장은 '그럼 내가 전화하지'라고 하면서 옆방인 상황실로 갔다. 따라간 김 차장보가 전화번호를 돌려 비서실장이 나오자 부장 에게 바꾸어주었다.
'형님이오...'하는 김 부장의 말을 듣고 한 자리 물러나 있었다.
'형님 이리로 오시오. 다 끝났는데 거기는 뭣하러 갑니까. 여기 다 모였으니 총리 모시고 오시오.'.
김재규 정보부장은 '그렇게 말하니까 김계원 실장은 약간 전화를 멈추었습니다. 본인이 육군총장을 인질로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생 각하고 이를 응낙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통화를 끝냈습니다' (합수부1차진술서).
똑같은 전화에 대해서 김계원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서 이런진 술을 했다.
[밤9시경 본인의 집무실에서 김재규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은 즉 '실장님 여기로 오십시오. 육군총장도 여기 있습니다. 여기는 B-2 벙커입니다'하기에 본인은 '육군총장과 같이 이리로 오시오'라고 하 니 김재규는 '안됩니다'라고 하기에 본인은 육군참모총장도 감금된 것으로 생각하고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하고 나서 군을 장악하여 혁 명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김계원은 전화를 끊고서 'B-1벙커가 어디냐'고 물었다. 누군가가 '관악산에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이 다시 'B-2는 어디냐'고 물었다.
'육군본부에 있습니다.' '그러면 B-3는 어딥니까.' '중앙청입니다.'.
밤9시10분경 김계원 실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실에서 다시 김재 규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오늘 각하 가족 모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근혜도 오늘 일을 알 고 있습니까.' '나한테 어디 계시냐고 묻지도 않았으니 알 턱이 없지.'.
'국방장관도 여기 계십니다. 이리로 오시오.' '국무총리도 여기 계시니 국방장관과 육군총장과 같이 이리로 오시오.' '안됩니다. 지금은 못갑니다. 총리를 모시고 실장께서 이리로 오시오.'.
김재규는 '김 실장에게 존칭을 생략하고 강경하게 명령조로 이 야기하였다'(군검찰 신문조서)고 했다. 그랬더니 김 실장은 잠깐 멈칫 하더니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알겠소.'.
전화를 끊은 뒤에 김계원 실장은 최규하 총리에게 보고했다.
'김 부장이 경호실이 무서워서 못오는 모양입니다. 총리께서 거 기로 가시면 어떨까요.'.
총리는 '갑시다'하면서 일어났다. 김치열, 구자춘, 박동진 장관 도 동의했다. 밤9시15분쯤 이들이 비서실장실을 나설 때 김계원 실 장은 부속실에 있던 유혁인 수석을 보더니 '유 수석도 따라오시오' 라고 했다. 총리 차에 김실장과 유수석, 다른 차에 내무 법무 외무 장관이 타고 육군본부로 향했다.
김계원 실장은 '김재규가 군을 장악하고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판단한 상태'에서 김재규 쪽으로 총리를 모시고 갔다. 최규하 총리 는 김재규가 대통령을 죽인 범인이란 점을 알면서도 따라갔다. 이 로 인해서 두 사람은 김재규에 의한 유혈쿠데타가 성공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이에 순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의심을 그 뒤에 받게 되는 것이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